절름발이, 병신, 애꾸눈, 반쪼가리는 위그노들이 우리 외삼촌을 부를 때 쓰는 몇가지 별명이다. -55쪽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 버릴 수 있지" (....)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거야. 나는 완전해. 그리고 내게는 모든 것들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막연하고 어리석어 보여.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껍질에 지나지 않았어.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되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꺼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속에만 있으니까."-60쪽
두 존재가 세상에서 만나면 언제든지 한 사람은 부서져 버리게 마련이다.-65쪽
"아,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듣ㄹ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 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88쪽
"반쪽을 사형하기 위한 교수대다"(....)
"처벌을 내리고 또 처벌을 받을 단 한사람을 위한 거란다. 반쪽머리 머리로 바로 자기 자신에게 극형을 언도해서 다른 반쪽이 흔들거리는 끈의 고리 속으로 들어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이지. 나는 그 둘이 섞이길 원한단다." -104쪽
"그래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119쪽
현실을 기록하고 고발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비슷한 작품들을 썼지만 칼비노는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러한 그의 고민은 <반쪼가리자작><나무 위의 남작><존재하지 않는 기사> 3부작으로 이뤄진 '우리의 선조들'에서 해결된다.
칼비노는 환상적인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 역사적인 현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긴장은 곧 풀리게 된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죽은 물위에서 항해를 하고 있다. 우리들이 맨 처음 현실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신뢰성이나 그 현실의 표정, 책임감, 에너지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려고 애썼지만 점점 더 힘을 잃어 가기만 했다. 환상적인 소설을 통해 나는 현실의 표정, 에너지, 곧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에 활기를 주고 싶었다. -124쪽
"극단적인 '악'처럼 극단적인 '선'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125쪽
자신이 만드는 도구들이 살인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피에트로키오도, 탐미적이며 무책임하고 하루하루의 삶을 쾌락에 바치며 방탕한 행복을 추구하는 문둥이들, 진정한 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종교 윤리만을 강조하는 위그노들, 이들은 겉모습으로는 완전하지만 자작처럼 반쪼가리 인간들에 불과하다. -126쪽
칼비노는 문학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을 '즐거움'에 두었다. 동화라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의 한 비평가는 칼비노의 작품은 겉으로 보기에는 밝게 빛나는 따뜻한 남빛 바다 같지만 한번 그 속에 뛰어든 사람은 금방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 검은 협곡들과 어두운 동굴과 괴물 같은 물고기들과 해초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다양하고 깊이 있고 변화무쌍한 칼비노의 작품을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읽는다면 그건 정말 반쪽짜리 독서가 되고 말 것이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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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강렬한 임팩트로 나를 끌고 가더니 한 순간도 딴 짓을 할수 없게 만들만큼 매력적이었다.
내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해 있는데, 만약 그 육체를 선과 악으로 정확하게 쪼개서 나눴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는 질문에서 이 작품은 출발한다. 참신하지 않은가.
마을에서 주인공 자작의 반쪼가리는 악을 행하고, 반쪼가리는 선을 행한다.
이야기는 과연 선과 악을 극단적으로 행했을 때, 말하자면 최고의 악과 최고의 선을 각각 행했을 때
어떤 기준에서 그것이 악이고 선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소 난해한 탐구를 시작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악마와 천사가 공존한다.
불쑥 튀어나오는 악마때문에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때론 한없이 착한 천사가 왕림하기도 한다.
속에 악마를 숨기고, 천사의 모습을 지닌 채로 살기도 한다.
반대로 속은 천사같은데, 악마같이 살 수 밖에 없는 처지로 살아지.기.도 한다.
한 사람의 선함이 자신의 악함을 미워하고, 악함이 선함을 괴롭히는 묘사는
우리 마음속에서 수백번, 수만번 반복되는 자아와의 싸움을 그린 것이리라.
반쪼가리가 되어 비틀거리는 삶을 살아온 자작이 서로의 결투에 의해 단 하나의 온전한 육체로 합쳐지고 완전한 정신을 갖게 되는데..이렇게 온전히 합쳐진 하나의 몸뚱아리가 바로 인간의 불완전한 존재를 더욱 더 뚜렷이 나타내는 기이한 결말로 가고 있었다.
우린 불완전한 존재다.
선과 악이 대립하는 세계라 생각하지만 그 어떤 선도, 그 어떤 악도 서로의 존재가 없다면 빛을 잃어버린다.
내가 악을 행했더라도 그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내가 선을 행했더라도 본의 아니게 고통을 안겨다 주는 일도 더러 있다.
선과 악은 공존한다. 그 무질서속에서 때론 섞이기도 하고 선악에 대해 여러가지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그 판단의 마법봉을 쥐고 있는 것도 불완전한 인간이다.
악만이 지배하는 세상이거나, 선만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도
상대적으로 그 속엔 선악이 공존해 있으리라.
이 책은 나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준다.
내 삶속에서
"나의 생각, 나의 행동,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반쪼가리였지는 않은가."
* 이탈로 칼비노 전집(11권)
연대순으로도, 또는 난이도 순으로 읽어보면 무난하지 않을까.
* 레지옹 도뇌르 훈장
1981년에 칼비노는 이 훈장을 수상한다.
취소되어야 할 인간들이 좀 있지 않은가? 반쪼가리 인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