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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인간의 심리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지금 주인이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 또는 철학자의 유서에서 한 가닥 위안을 구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세상을 조롱하고 있는 것인지, 세상에 섞이고 싶은 것인지,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나 있는지, 세상에 초연한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고양이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단순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자고 싶으면 자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울 때는 죽어라 하고 운다. 게다가 일기 같은 씨잘 데 없는 것은 절대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내 보일수 없는 자신의 속내를 풀어 놓아야 하겠지만, 우리 고양이족은 먹고 자고 싸는 생활 자체가 그대로 일기이니 굳이 그렇게 성가신 일을 해가면서 자신의 진면목을 보존해야 할 것까지는 없다. 일기를 쓸 시간이 있으면 툇마루에서 잠이나 즐길 일이다. -37쪽
인간이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써 입을 움직이면서, 재미있지도 않은 일에 웃고, 시답잖은 일에 기뻐하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95쪽
돈을 벌려면 삼무(三無)전략을 사용해야 한다는군, 도리를 모르는 무도, 인정을 모르는 무정,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치, 이렇게 삼무 말일세.재밌지 않나, 하하하하 -171쪽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한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215쪽
하지만 자신의 코 높이를 스스로 알 수 없듯이 인간이 자신을 깨닫는 일이란 좀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다.-503쪽
말하자면 교제용 표정인데, 이것이 또 몹시 복잡하고 힘든 예술이다.
세상은 이 교제용 표정을 잘 짓는 사람을 예술적이고 양심이 있다 일컬으며 크게 대우한다. 그러니 남들에게 대우받는 인간일수록 수상한 것이다. 시험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점에 관한 한 우리 주인은 서투른 부류에 속한다 할 수 있다.-504쪽
바둑을 발명한 것이 인간이니 바둑판에 인간의 취향이 표현된다고 한다면, 답답한 바둑돌의 운명은 옹졸하고 좀스러운 인간의 성품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바둑돌의 운명으로 인간의 성품을 헤아려 보면 인간은 광활한 천지를 스스로 좁혀 자신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자리 밖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도록 자기 영역에 새끼줄을 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인간이란 굳이 고통을 자초하는 존재라 평해도 무방할 것이다.-518쪽
옛사람들은 자신을 잊으라고 가르쳤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잊지 말라고 가르치니, 전혀 다르지. 하루 종일 자신을 의식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러니 한시도 평안할 수가 없지. 일상이 초열지옥(焦熱地獄)이야. 천하의 명약이 무엇이냐, 자신을 잊는 것만큼 용한 약은 없지.-538쪽
사람들은 보통 문명이 발달하면서 살벌한 기운이 없어지고 개인과 개인사이가 온화해졌다고 하는데, 그건 큰 착각이야. 그렇게 자각심이 강한데 어떻게 온화해질 수 있겠나. 언뜻 보기에는 아주 조용하고 아무 탈 없는 것 같아도, 서로는 몹시 힘겹고 팽팽한 관계에 있지. 마치 씨름 선수가 모래판 한가운데에서 서로의 샅바를 잡고 꼼짝 않고 버티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옆에서 보기에는 지극히 평온하지만 당사자들의 배는 힘을 주느라 불끈불끈하지 않은가.-570쪽
인간은 영리한 듯하면서도 습관에 휘둘려 근본을 잊는 큰 약점을 갖고 있어.-579쪽
늘 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 보면 어디에선가 슬픈 소리가 난다.-5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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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늦은 나이(38세,1905년)에 출간한 이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의 데뷔작이다.
문학 모임에서 발표한 첫 1장이 호평을 얻어 문학지 <두견새>에 연작으로 11장을 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소설이 가지는 일정한 스토리가 없고 마땅한 결말이 없어 몰입도가 떨어진다.
분량도 많고 띄엄띄엄 시간날때마다 조금씩 읽다보니 더할 수 밖에.
등장인물의 끊임없는 만담과 고양이의 인간세상관람기가 작가의 탄탄한 한학과 영문학 실력에서 비롯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감탄했지만, 내용면에서 참신하다거나 가슴속을 절절하게 만든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알고 있지만, 완독한 사람들이 적은 이유가 바로 나와 같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꼽으라면 여러가지 상념에 잠기게 하는 이 소설의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연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고양이다. 나는 이름이 없다" 의 첫문장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인간의 맥주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기 위해 마셨다가 취해서 물항아리에 빠져 .
"세월을 베어 버리고, 천지를 갈가리 부수어 신비의 평온함으로 들어간다.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평온함을 얻는다.
평온함은 죽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기쁘고 기쁜지고."
이렇게 마지막 문장을 남기고 죽는다.
태어나서 죽음으로 끝나는 삶은
고양이나 인간이나, 또 다른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겐 '인생(人生)'이고 '철학(哲學)'이다.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인간도 세계(世界)에선 무명(無名)이니.
고양이에게 그토록 낯선 인간만사도, 힘겨운 삶을 짊어진 인간조차 적응하기 어려운 낯선 풍경일지니
체념하고 익숙한 듯이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죽음앞에서 평온한 기쁨을 찾는 고양이를 보고,
제발 인간은 우쭐대지 말아라~.라고 적을려다,
인간이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그 전능(全能). 제발 우쭐대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