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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진실 - 의사들은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
데이비드 우튼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우선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로 들린다. 의학은 환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의학에 기초한 진료와 치료행위가 환자에게 해를 끼친다면, 이는 의료와 의학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놀랍게도 적어도 1860년 이전의 의학이라고 불린 것의 대부분은, 환자에게 엄청난 해를 끼친 것으로 밝히는 내용들이 가득히 적혀 있다.
의학의 진실은 “적어도 1860년 전에는 의학이 실제로(심리적인 것 외에) 환자에게 도움을 준 것은 별로 없다.”라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그 강력한 증거로 병의 세균기인에 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현미경으로 세균을 발견하고, 그 세균이 병을 일으키는 원인일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된 것은 1600-1700년 대였다. 그러나 그것은 150년이나 지나서야 의학계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학계가 새로운 지적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기존의 전통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개념을 동원하여, 1860년대를 의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 이전의 시기는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에 근거하여 근본적인 변화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정상상태’ 즉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시기였다는 지적이다. 쿤의 이론처럼 기존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근거들이 상당히 축적되고 나서야 정상상태는 도전받기 시작하고, 그때야 비로소 그 많은 설명되지 않는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는 학문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노력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최소한 감염설에 관해서는 저자의 논리가 맞는 듯이 보인다. 사실 근대이전의 질병으로 인한 사망의 대부분은 감염에 의한 것이었다. 감염에 대한 대응능력이 전혀 없었던 서구인들은 페스트의 유해만으로도 인구의 절반을 잃곤 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부상당한 군인을 전쟁터의 막사에서 수술한 경우가, 병원에서 수술한 경우보다 생존율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바로 병원의 오염된 환경과 의료기구 때문이었다.
오늘날 인류의 수명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의료기술이 암을 완치하는 것에 도전하고,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불노의 한계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실들이다. 그러나 적어도 서양에서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모든 의료인들이나 의료이용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만한 예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다만. 쿤의 과학발전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택한다면, 1860년 이전에는 서양의학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또 반대로 쿤의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의료과학 속에는 혹시 정상상태의 맹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학은 항상 근거에 의지하여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속에서 발전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발전이라는 것이 진정한 발전이 아닌 것은 아닌지... 과학을 불신하는 입장이 아니라, 과학내부적인 입장에서의 비판적 성찰이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