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를 학대하라
조이 고블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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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속에서 화자는 말한다. 자신은 유머와 페이소스, 코미디와 드라마 그리고 고급취향과 저금취향이 모두 함꼐 섞여 있는 책을 발간 하려고 한다고. 그리고 그는 그 책의 제목으로 "예술가를 학대하라."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이 책의 말미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 이 독특한 재미를 주는 책은 유머러서 하지만 페이소스로 가득찬 책이다. 인생의 우스움을 부각시키는 듯하지만, 삶이란 것의 아픔과 어려움에 관한 배려로 충만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말하는 내용은 우리의 삶과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무척 심오하기도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무척 흥미로운 스토리 라인을 따라서 그냥 읽어내려 가기에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의도를 가지고 그런 방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무척 흥미롭다. 마치 범죄수사물이나 추리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한 사람을 곤경에 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우스광스러운 주말 코미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아름과, 우리가 살아가는 주위를 온통 뒤덮고 있는 대중문화 혹은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오락성과 생각할 거리를 함께 같춘 드문 수작이다.

 

책은 첫 페이지를 읽는 처음부터 사람을 흡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책이 자신의 본 고장인 미국에선 환대를 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독일에서 인정을 받는 바람에 다시 미국으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러니한 이야기다. 미국문화에 푹 빠져서 살아가는 미국인들에게는 미국대중문화에 대해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점이 그렇게 와닿지가 않았는가 보다. 그래서 미국과는 다른 문화를 향유하며 살아가는 독일인들의 감성에서 먼저 호응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다.

 

한 소년을 학대하겠다는 계약서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영재성을 보이지만 몸시도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 그 어머니는 돈을 받고 소년을 불행한 삶의 조건으로 파는 노예문서에 서명을 한다. 그리고 소년은 그를 담당하는 메지저의 손으로 넘어간다. 매니저는 자신이 받는 상당한 대우만큼 충실하게 소년을 불행하게 성장하도록 온갖 책임을 다한다. 그 결과 그 명민한 지성과 예리한 감성을 지닌 소년은 충분히 고독해져서, 지난 세기의 모든 고독하고 우울했던 예술가처럼 현대 미국문화를 질타하는 수준높은 문화적 산물을 만들어 낸다는 스토리다.

 

간단할 것 같은 이 이야기는 꼼꼼하게 읽어보면 그러나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들이 비판하려는 미국의 대중문화에 그들이 만든 작품이 흡수되어 대중문화를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에 수혈을 하게 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좋은 뜻으로 장기간에 걸쳐 큰 프로젝트를 기획한 엔터테인먼트의 제왕은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힘을 잃게 되고 그 프로젝트는 원래의 계획에서 동떨어진 것이 된다. 터무니없게도 엄중한 비밀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그 문화 프로젝트 자체가 문화상품으로 기획되기도 한다.

 

이 책이 미국인들에게 쉽게 받아들여 지지 못했던 것은 혹사 너무 정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오늘날 미국 대중문화에 대해 너무나 노골적인 정면 비판을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책이 이런 흥미로운 스토리 라인으로 재미있게 읽히게 쓰여졌다는 것은 미국문학의 수준을 높이는 것일까, 아니면 그 책 역시 미국문화를 비판하는 미국대중문화라는 한 하위 부분에 속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늘 그런 생각을 하게되는 것 또한 흥미로운 책이다.

 

내가 제기하는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나 스스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는 점이다.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으이든,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는 사람이든,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상당한 악감을 가진 사람이든, 그 문화를 좀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이든, 모든 사람이 다 흥미롭게 읽어볼만한 대단한 읽을 거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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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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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이라는 뜻쯤되는 책일 것이다. 이 책의 이름은. 그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은 시종일관 책에 관한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책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그런 것들이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유명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었으며, 나도 어떤 책을 읽으면 소위 유명이라는 것에 가까워질까에 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책들도 있다. 또 여러가지 책들을 다이제스트하여 한권으로 두루 풍부한 독서경험을 한듯한 대리체험을 하게 하는 책들도 있다.

 

나는 이 책도 그런 책들중 한권인줄 알았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전세계적으로 무제한적인 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닥쳐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눈썹을 씽씽휘날리면서 뛰어다니는 시대가 아닌가. 모든 것이 실용주의를 향하여 나란히 줄을 서는 이때에 실용적이지 않거나, 최소한 삶의 지루함을 도와주는 오락거리라도 되지 않는 책을 발간하는 간이 큰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책에 관한 가장 고리타분한 내용을 담은책.

 

물론 이건 칭찬으로 하는 말이다. 사실 나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기로서니 사람이 사람된 도리를 잊고 살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화를 외쳐댄다고 해도, 나처럼 책읽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이다시피하는 사람에게 독서란 물고기에게 물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런 메마른 시기에 뜻밖에도 나와 비슷한, 아니 나보다 저 멀리 나아가 있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단순히 동류로서만 아니라, 이 길이 옳은 길이라고 책한권을 통째로 외쳐대는 엄청난 용기를 가진 사람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저자는 정말 시종일관 독서의 미덕에 관해서 책 한권을 통틀어서 열변을 토한다. 독서는 중요하다.고 딱 한마디만 하고 말수도 있는 것을 책 한권의 분량거리로 열변을 토할 수 있기까지 저자는 얼마나 독서를 했으며, 자신이 독서로 인생을 메꾸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성찰을 했겠는가. 그리고 이 책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다른 독서광들과 얼마나 많는 대화를 나누었고, 독서와 시대와 삶과의 관계에 관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는가. 바로 그런 사색과 토론과 독서에 대한 독서와 독서에 대해 세상에 울부짖은 것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이 책은 독서의 미덕과 독서의 방법에 대해서, 또 과거 독서에 열을 바친 사람들의 일생에 관해, 다른 유명한 독서인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에 관해 다양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한가지 주제로 집약된 책이지만 지겹지 않게 읽힐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 책이 얼마나 대단한 가를 알아보는데 있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철저하게 원론을 지키고, 세상의 시류와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은 실용적인 책 읽기를 권하지 않는다. 교양을 위한 책읽기, 느리게 책읽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키워가기 같은 실용성과 연관되지 않는 독서를 시종 강조한다.

 

물론 그런 독서가 가장 훌륭한 독서임에 틀림이 없다. 또 당장의 필요를 위해 속독이나 짜집기 독서를 하는 사람들에 비해, 긴 안목으로 바라볼 때 이 책이 소개하는 독서법이 훨씬 우월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오늘날의 세태에서 이런 목소리를 소리높여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저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수 없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그동안 이 힘든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켜내고, 험준한 세태에 시달릴 때 위안을 삼아오고, 나의 삶의 방향을 의논하는데 늘 함께해준 내 독서에 대한 올바른 대우를 처음으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랬다. 내 친구 독서는 이렇게 훌륭한 벗이자 스승이자 삶의 동반장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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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베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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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의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 모옌의 단편 12편이 실려 있다. 작품 하나하나의 내용이나 구성이 모두 다르다. 소재뿐 아니라 등장인물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조차도 다르다. 늘 비슷한 글들을 뽑아내기 마련인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를 극복한 것은 바로 모옌 자신의 삶의 이력 때문일 것이다.

 

책갈피에 쓰여 있는 작가의 프로필을 읽어보면 놀라운 느낌이 든다. 이 작가는 정규교육이라고 할만한 것을 거의 받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화혁명이 그의 학업을 가로막을때까지 초등학교 5년의 학력이 공부의 전부이다.  그러다군에 입대한 후 가능성을 인정받아 20대 중반에서야 다시 공부를 시작한 모양이다. 바로 이런 특이한 경력이 그에게 풍부한 삶의 경험을 안겨주었고, 그런 경험들이 바로 그의 작품의 피와 살을 이루는 강한 힘의 원천이 되는 것 같다.

 

그의 글들은 걸죽한 입담으로 엮여져 있다. 작가의 나라이션으로 풀어져가는 글도 있지만, 많은 작품들이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의 말에 의해서, 혹은 등장인물중 한사람이 쓴 편지에 의해서 엮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과 글쓰기가 이 작가에 의해서는 묘하게 통합되는 것이다. 글로 쓰여진 문장도 이야기의 형식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책에는 어려운 단어 같은 것은 없다,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걸죽한 입담들의 소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즉 구어체로 구현한 문학인 셈이다.

 

모옌은 이런 형식을 갖춘 책에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담았다. 그 세상은 온갖 부정과 비리, 아픔과 고통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주된 비판의 대상은 역시 문화대혁명이지다, 길고 긴 시간동안 중국이란 거대한 사회에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문화대혁명은 그 역사,사회적 평가와 경제를 후퇴시킨 원인으로만 알려졌지, 이 책에서 처럼 생생한 삶의 모습 그 자체로서 나타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모옌은 자신의 삶에서 마주친 중국인들의 모습들을 그린다. 그는 절대로 문장속에 개입하지 않는다. 단지 사건들의 배열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이 어떤 계기를 통해서 어떻게 얽혀들어가는가에 대한 표현을 통해서 그가 경험한 삶의 아름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 책은 결코 칙칙하지 않다. 사람들은 항상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 희망은 해피엔딩이라는 서양식 희망이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삶이란 살아진다는 것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다. 또 그의 글에는 인과응보가 나타난다. 권력과 재물, 사회의 변동기에 다른 사람들을 괴롭힌 존재들이 어떻게 스러져가는가가 그의 글에 잘 나타난다.

 

그는 희망을 노래하는 예언자는 아니다, 그저 삶의 모습을 묵묵히 그려내는 입이 무거운 관찰자일뿐이다. 그가 살아온 삶, 그가 느껴온 삶, 그가 바라본 삶의 모습들이 그의 속을 그치면서 다시 새로운 이야기의 형태로 구성되어 나타나, 우리들에게 중국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도 다음의 인용구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이 아닌가 한다.

 

세상에서는 넘어가지 못할 산도 있고, 건너지 못할 강도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지 못할 세월은 없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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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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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현실을 산다. 살아간다. 그러나 그 현실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현실(reality)라는 것은 객관성을 상징하는 단어가 아닌가. 그러나 그 객관적인 현실을 받아들이는 각 사람들의 주관은 서로 다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우리는 같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그 현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자신들만의 세상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청춘이라는 피끓는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 개밥바라기 별은 그 뜨거운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회고담이다. 자전적인 기록이라고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가공인지 알수는 없다. 하긴 작자 자신도 자신의 과거를 그토록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자신의 실제 과거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모습일 뿐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것은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미학적 아름다움과, 책이 간직한 이야기가 우리들의 가슴에서 어떻게 공명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에게는 중요하였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하등의 울림이 없는 이야기는 그저 흘러간 옛 노랫가락일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책은 상당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그보다는 한 세대를 늦게 살았던 나이지만, 내가 보낸 청춘에서는 아직도 그가 살았던 낭만적 청춘의 시절의 흔적들을 찾을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누구에게나 청춘이라는 시간대는 존재하는 법이지만, 나에게 찾아온 청춘은 이 책에 나타난 청춘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만만하지도 않았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청춘도 보석처럼 아름답기야 하겠지만, 아마 그들의 청춘이 나의 청춘만큼 여유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고 모든 것은 여유를 잃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속에 나타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먼 그리움에 대한 향수에 빠져들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등학생들. 남들과 무언가 다른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 문학이니... 시시껍절한 것에 관심을 가진척하는 것을 경멸하는 척하면서 스스로는 집에 숨어서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며 나름 상당한 수준에 올랐던 명문 고등학교의 비범한 머리를 가진 청춘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천재는 박복하다고 했는가. 그토록 멋진 지성의 싹을 지닌 사람들이 좌절하고 추락해 가는 과정은 아름답긴 하지만 가슴 아프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친구의 아픔과 고민이 어떻든, 학교생활의 비정함에 눈을 감은 채, 오로지 홀로 앞을 향해 책만 파는 청춘들이 성공이라는 희소한 재화를 차지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경제성의 법칙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그 효율성이라는 것에서 어긋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만끽한다고 할지, 명문고등학교라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에 대해 반발을 한다고 할지... 그렇게 청춘의 아름다움을 향해서 달려나간다.

그 질주는 아름답다. 청춘이야 무엇을 하든 숨막히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청춘이라는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든지 빛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책은 아프면서 저릿하고 동시에 무척 아름다운 글들로 가득차 있다. 황석영이라는 대작가의 노작답게 글들이 무척 시적이다. 짧은 글들이든, 길죽한 길이를 달고 있는 글들이든 반짝 반짝 빛나는 영롱한 색채로 채색된 듯한 느낌을 준다.

가난. 지성. 반항. 여행. 가출. 산행. 이성과의 만남. 글쓰기. 음악다방. 그림. 화실. 비루함. 노동. 떠돌아다님. 무전여행. 퇴학과 자퇴.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런 소재들 또한 청춘들이 마주하기에 충분한 매력과 가치를 준다. 책을 읽으면서 아련한 과거의 자신들의 청춘을. 이제는 다시 찾아보기 힘든 그 아련한 옛 기억들의 편린을 다시금 마주하면서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젠 떠나야 한다. 영원히 되돌릴수 없는 그 시간대를 이제는 풀어주어야 한다. 우리들 앞에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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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
쑤퉁 지음, 김지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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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날개가 없다. 중국의 상징중 하나라는 용이야 하늘을 날 수 있지만, 용에 버금가는 이무기 조차도 하늘을 날수는 없다. 하물며 일반 뱀들은 겨우 몸을 비틀어 낮고 낮은 땅위를 비천하게 기어갈 뿐이다. 비천하게... 꿈틀꿈틀...

밟으면 밟혀죽는 것이 뱀이다. 뱀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는다. 곡굉이에 맞아서, 삽에 찢혀서, 심지어는 여자가 휘두르는 하이힐에 찢겨서 죽기도 한다.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수많은 뱀들의 집단 탈출이 결국은 그런 허망한 죽음으로 끝이 나고 말았지 않는가.

그러나 희망은 있다. 기차를 타고 먼곳으로 옮겨온 뱀들이 자유를 얻는데는 실패를 했지만, 그들 뱀들중 몇 마리는 자신들을 끔찍하게 여기고, 아무런 고의도 없이 오로지 살기만을 바랬던 자신들을 사정없이 죽이려 드는 인간들을 물어뜯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었다.

바야흐로 2000년 중반. 이 책은 그때부터 그해의 마지막 날까지를 기술하는 책이다. 2001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거대한 종탑을 짓고,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 그 높다란 종탑에서 울려나오는 2001번의 멋진 종소리를 듣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종탑의 용도는 멋진 새 시대를 자랑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 종탑은 빛에 쫒기고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용도로 먼저 사용된다. 그 종탑은 가난에 쫒겨 몸을 파는 사람들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 종탑은 무망한 희망을 쫒아 희미한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욕망과 그 좌절의 증표가 되기도 한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책이다. 세상에는 잘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돈을 버는 사업가도, 새로운 시기를 잘 타서 엄청난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이 책의 표지에 보이는 검은 점처럼 보통사람들의 모습은 그저 흔들리고 움직이는 힘없는 잡티에 불과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잘 나가는 사람들을 다루지 않는다. 세상의 밑바닥에서, 저마다의 삶의 목표를 향해서 살아가지만, 저마다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허망한 몸부림들의 모음집 같은 책이다. 저마다 아픈 삶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은 서로를 보듬기는 커녕 서로의 아픔을 더욱 키우고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힐 뿐이다.

마치 가래침과 온갖 오물로 덮인 땅바닥을 비실비실 기어가는 비천한 뱀들처럼 날개가 없는 그들에 세상은 온갖 힘을 다해 끊임없이 기어가야 하는 아픈 세상일 뿐이다. 권투선수가 링위에서 날리는 멋진 펀치같이 조명을 받지도 못하고, 그저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 새 밀레니엄을 맞는 전날에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날개 없는 뱀과 같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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