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
쑤퉁 지음, 김지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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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날개가 없다. 중국의 상징중 하나라는 용이야 하늘을 날 수 있지만, 용에 버금가는 이무기 조차도 하늘을 날수는 없다. 하물며 일반 뱀들은 겨우 몸을 비틀어 낮고 낮은 땅위를 비천하게 기어갈 뿐이다. 비천하게... 꿈틀꿈틀...

밟으면 밟혀죽는 것이 뱀이다. 뱀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는다. 곡굉이에 맞아서, 삽에 찢혀서, 심지어는 여자가 휘두르는 하이힐에 찢겨서 죽기도 한다.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수많은 뱀들의 집단 탈출이 결국은 그런 허망한 죽음으로 끝이 나고 말았지 않는가.

그러나 희망은 있다. 기차를 타고 먼곳으로 옮겨온 뱀들이 자유를 얻는데는 실패를 했지만, 그들 뱀들중 몇 마리는 자신들을 끔찍하게 여기고, 아무런 고의도 없이 오로지 살기만을 바랬던 자신들을 사정없이 죽이려 드는 인간들을 물어뜯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었다.

바야흐로 2000년 중반. 이 책은 그때부터 그해의 마지막 날까지를 기술하는 책이다. 2001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거대한 종탑을 짓고,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 그 높다란 종탑에서 울려나오는 2001번의 멋진 종소리를 듣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종탑의 용도는 멋진 새 시대를 자랑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 종탑은 빛에 쫒기고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용도로 먼저 사용된다. 그 종탑은 가난에 쫒겨 몸을 파는 사람들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 종탑은 무망한 희망을 쫒아 희미한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욕망과 그 좌절의 증표가 되기도 한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책이다. 세상에는 잘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돈을 버는 사업가도, 새로운 시기를 잘 타서 엄청난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이 책의 표지에 보이는 검은 점처럼 보통사람들의 모습은 그저 흔들리고 움직이는 힘없는 잡티에 불과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잘 나가는 사람들을 다루지 않는다. 세상의 밑바닥에서, 저마다의 삶의 목표를 향해서 살아가지만, 저마다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허망한 몸부림들의 모음집 같은 책이다. 저마다 아픈 삶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은 서로를 보듬기는 커녕 서로의 아픔을 더욱 키우고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힐 뿐이다.

마치 가래침과 온갖 오물로 덮인 땅바닥을 비실비실 기어가는 비천한 뱀들처럼 날개가 없는 그들에 세상은 온갖 힘을 다해 끊임없이 기어가야 하는 아픈 세상일 뿐이다. 권투선수가 링위에서 날리는 멋진 펀치같이 조명을 받지도 못하고, 그저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 새 밀레니엄을 맞는 전날에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날개 없는 뱀과 같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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