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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은 누구나 현실을 산다. 살아간다. 그러나 그 현실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현실(reality)라는 것은 객관성을 상징하는 단어가 아닌가. 그러나 그 객관적인 현실을 받아들이는 각 사람들의 주관은 서로 다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우리는 같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그 현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자신들만의 세상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청춘이라는 피끓는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 개밥바라기 별은 그 뜨거운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회고담이다. 자전적인 기록이라고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가공인지 알수는 없다. 하긴 작자 자신도 자신의 과거를 그토록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자신의 실제 과거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모습일 뿐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것은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미학적 아름다움과, 책이 간직한 이야기가 우리들의 가슴에서 어떻게 공명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에게는 중요하였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하등의 울림이 없는 이야기는 그저 흘러간 옛 노랫가락일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책은 상당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그보다는 한 세대를 늦게 살았던 나이지만, 내가 보낸 청춘에서는 아직도 그가 살았던 낭만적 청춘의 시절의 흔적들을 찾을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누구에게나 청춘이라는 시간대는 존재하는 법이지만, 나에게 찾아온 청춘은 이 책에 나타난 청춘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만만하지도 않았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청춘도 보석처럼 아름답기야 하겠지만, 아마 그들의 청춘이 나의 청춘만큼 여유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고 모든 것은 여유를 잃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속에 나타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먼 그리움에 대한 향수에 빠져들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등학생들. 남들과 무언가 다른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 문학이니... 시시껍절한 것에 관심을 가진척하는 것을 경멸하는 척하면서 스스로는 집에 숨어서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며 나름 상당한 수준에 올랐던 명문 고등학교의 비범한 머리를 가진 청춘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천재는 박복하다고 했는가. 그토록 멋진 지성의 싹을 지닌 사람들이 좌절하고 추락해 가는 과정은 아름답긴 하지만 가슴 아프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친구의 아픔과 고민이 어떻든, 학교생활의 비정함에 눈을 감은 채, 오로지 홀로 앞을 향해 책만 파는 청춘들이 성공이라는 희소한 재화를 차지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경제성의 법칙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그 효율성이라는 것에서 어긋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만끽한다고 할지, 명문고등학교라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에 대해 반발을 한다고 할지... 그렇게 청춘의 아름다움을 향해서 달려나간다.
그 질주는 아름답다. 청춘이야 무엇을 하든 숨막히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청춘이라는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든지 빛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책은 아프면서 저릿하고 동시에 무척 아름다운 글들로 가득차 있다. 황석영이라는 대작가의 노작답게 글들이 무척 시적이다. 짧은 글들이든, 길죽한 길이를 달고 있는 글들이든 반짝 반짝 빛나는 영롱한 색채로 채색된 듯한 느낌을 준다.
가난. 지성. 반항. 여행. 가출. 산행. 이성과의 만남. 글쓰기. 음악다방. 그림. 화실. 비루함. 노동. 떠돌아다님. 무전여행. 퇴학과 자퇴.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런 소재들 또한 청춘들이 마주하기에 충분한 매력과 가치를 준다. 책을 읽으면서 아련한 과거의 자신들의 청춘을. 이제는 다시 찾아보기 힘든 그 아련한 옛 기억들의 편린을 다시금 마주하면서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젠 떠나야 한다. 영원히 되돌릴수 없는 그 시간대를 이제는 풀어주어야 한다. 우리들 앞에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