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약간 에로틱한 면이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화려한 표지와 함께 약간의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기대 이상의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선입견과는 달리 전혀 애로틱하지 않은 책이다. 그렇다고 제목을 엉뚱하게 붙인 것은 아니다. 애무라고 하는 단어에 대해서 우리들이 느끼는 오늘날의 감성들이 너무 편협하다는 것을 깨닿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 가정이라고 하는 것.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 이 책은 바로 그런 것에 대해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물론 지루한 논증을 시시콜콜 늘어놓는 책은 아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 군더더기 하나없이 완벽하게 전개되는 깔끔한 내용. 절제된 언어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제기하는 주제에 깊이 빠져드는데 어려움을 없애주는 역활을 한다.

처음에는 무슨 탐정소설처럼 시작되는 이 책은 결국은 상처입은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에 내가 우연히 읽게되는 책들은 왜 모두 이렇게 아픈 내용들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붉은애무라는 책의 이름과 표지에서 전혀 아픔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는데도 말이다. 아마 요즘의 어려운 시류에 맞는 책들이 출간되어 나오다보니 내가 마주치는 책들마다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 시리고, 또 그렇게 삶이란 것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있게 천작하게 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가보다.

이 책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지 않고서는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쓸수가 없다. 또 줄거리를 다 소개하고 나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흥미를 반감시킬 가능성이 있다. 상당히 눈치가 빠른 편인 나도 이 책의 절반을 훨씬 넘긴 다음에야 비로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요즘의 가벼운 장르소설들이 택하는 반전의 묘미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야기의 전개가 그렇게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성공. 명예. 편안한 삶. 그런 것이 삶의 의미일까. 어차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일까. 아니면 삶에는 지고지순한 해답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찾아가는 구도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아니면 삶에는 선험적인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어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고, 힘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서 더 나은 스코어를 받는 일종의 선행게임같은 것일까.

이 책은 삶이란 사랑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이 책이 사랑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내세우는 것은 상실이다. 그렇다. 이 책은 사랑의 상실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사랑의 상실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 또 다시 사랑의 상실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사람의 생을 바라본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과연 사람의 삶은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의 탁월한 이야기와 삶의 대한 식견에 깊이 동의를 한다. 좋은 독서였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물한살의 프라하
박아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프라하. 도시의 이름이다. 동유럽 어딘가에 있다는... 가보지 못한 그 도시는 유럽의 그 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왠지 모를 독특함을 풍긴다. 물론 서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이런저런 이유들로 나와 친근하다. 동유럽에도 많은 도시들 중 유독 프라하만이 나의 감성을 잡아끄는 것은 왜일까. 프라하의 봄. 프라하를 대상으로 한 드라마... 그런 것들 외에도 프라하를 여행한 사람들이 쓴 책이나 글들. 프라하를 찍은 사진이 소개된 신문들... 아마 그런 것들이 만들어 낸 산물일 것이다. 나의 인식의 지평에 들어오는 느낌은 나도 알지 못하는 정보들의 조합에 의해 감성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라하라는 도시의 이미지와 스무한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묘한 느낌이 이 책의 제목을 강하게 만든다. 물론 책의 표지에 있는 생기발랄한 사람의 사진도 매력적일 것이다. 그렇다. 그 나이의 삶을 사는 사람이 프라하에서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그 나이의 사람이 책을 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알수 없는 이상한 힘이 많은 책들중에서 주말인 오늘의 소중한 나의 몇 시간을 이 책에 쏫아붓게 만들었다.

 

작고 앙증맞은 크기의 책이다. 페이지도 부담이 없다. 감성을 자극하는 낡은 듯한 느낌을 주는 어두운 톤의 사진들과 프라하라는 도시에 관한 적당하면서도 짤막한 정보들, 그리고 그런 정보와 사진을 하나로 꿰둘으며 이 책을 잡다한 정보의 조합이 아니라, 하나의 책이라는 것으로 유기적으로 통합시켜주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바로 저자 자신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솔직함의 힘일 것이다. 서점에 넘쳐나는 많은 여행 정보책자 중 이 책을 구별짖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솔직히 처음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라하로 음악유학을 떠난다니 아마도 복받은 사람인것 같고, 연습을 편하게 할 목적으로 방이 7개인 집을 통으로 빌렸다니 부잣집 따님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독자대중들에게 별로 곱게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자신의 핸디캡을 솔직히 털어 놓는 바로 그 점이 저자를 보는 시선에서 곱지 않은 점을 점점 무디게 만들어가는 것 같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당차고, 사랑스럽고, 재치가 많은 사람이다.

 

곱게 큰 사람들이 온실속의 약한 호화로움이나, 향기나는 가시만 가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상큼함과 세상을 대담하게 바라보는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책의 색다름인것 같다. 젊고 어린 나이게 솔직하면서도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호감을 가지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가 담아놓은 이 책의 이야기와 정보와 사진들은 그녀가 살아간 프라하라는 도시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실 프라하에 관한 책은 제법 많이 나와 있고, 나도 그 중 몇권을 본적이 있었다. 소장하고 있는 책도 두어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정보와 사진의 풍부함과 함께, 책을 꿰고 있는 저자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이다. 책이 너무 많아져 주체할수 없을때마다 책을 정리하지만, 아마도 이 책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나의 서재에 자리를 지킬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주말에 일기에 알맞았고, 좋은 느낌을 받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켄슈타인의 일상 - 생명공학시대의 건강과 의료
백영경.박연규 지음 / 밈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켄쉬타인. 사람이 사람을 만든 이야기이다. 생명이 없던 것에 생명을 불어 넣어서 일어난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하는 일... 바로 그런 일들이 요즘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살과 살을 모아서 꽤메는 원시적인 방법이 아니라, 고도로 첨단화되고 진보니 혁신이니 산업이니 공학이니 벤쳐니 하는 온갖 찬사를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꼭 유전자 공학이나 생명공학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흔하기 일어나는 일이다. 복제양 돌리가 우리나라에서 복제개를 만드는 것으로까지 진행되기 전에도 시험관아이 같은 것들은 이젠 더 이상 이상한 일이라고 하기도 힘들 정도의 일상이 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것을 다룬다. 우리들 곁에 일상처럼 존재하자만 사실은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 우리가 관성에 젖어서 별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의문제기. 바로 그 색다름이 이 책이 가지는 힘이다. 우리가 평범한 것으로 바라보던, 혹은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적응해서 덤덤하게 받아들이던 일에 관해 원래적인 시각을 가지고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 우리의 삶이 어느듯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프랑켄쉬타인같은 것이 되지 않았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이제까지 많은 찬성들이 있었다. 진보와 발전과 그것이 약속하는 무한한 희망에 관한 부푼 기대감. 그런 것들이 생명을 다루는 기술의 발달에 관한 의구심과 불안을 넘어서서 우리사회의 프랑켄쉬타인화를 더욱 진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관 아기, 대리모, 성장클리닉, 체세포복제... 성장 클리닉에서 키가 더욱 크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관용적이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바로 그런 우리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낮설고, 낮설기에 힘이 있는 책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괴리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는 책들이 많다. 오늘날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자연과학에 대해 인문학은 그 내용을 파악하기도 힘들고, 따라서 인문학의 본연인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기능이 거의 정지할 수 밖에 없었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비판을 하겠는가. 그래서 오늘날의 세상에는 이런 말이 진실아닌 진실이 되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수요가 있는 모든 일은 가능하다." 현재 인간복제는 금지되고 있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그것을 위해 충분한 돈을 제공할 의사가 있는 사람만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적인 감시가 지금처럼 느슨하다면...



이 책은 바로 그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괴리를 메꾸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의학적 기술의 발달이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행동에 대해 사회적인 맥락에서 접근한다. 충분한 돈만 제공할 수 있다면 오늘날 한 사람의 키를 다른 사람보다 더욱 크게 하는 그런 기술은 더 이상 새로운 진전도 아니다. 이미 범용기술이 된지 오래이고, 첨단연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어지간간 의사면 모두가 가능하게 할 수가 있다. 단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돈이 없는 사람은 ?



바로 여기가 자연과학의 발달에 대한 인문학적인 비평이 필요하게 되는 지점이다. 생명을 다루는 기술이 결국은 소수자의 수중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돈에 의한 차별화. 지식에 의한 차별화. 정보접근에 의한 차별화 못지 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차별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간의 몸에 대한 차별화이다. 돈으로 더 큰 키를 살 수 있고, 돈으로 불임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이다. 심지어 돈만 있으면 남의 자궁을 빌려서 대리모를 통한 출산도 할 수가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단지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근본으로 돌아가서 세상의 문제를 다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오늘날 시험관 아기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부부가 아이가 없이 살아가는 것은 불행한 것이라는 공식은 도대체 어떻게 사회화가 되었는가라고 묻기 떄문이다. 돈으로 키를 키울수 있어 사람들의 전반적인 신장이 높아진다면, 정상적인 키를 가지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작은 키가 된 사람에 대한 사회윤리적인 접근은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애당초 키가 큰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은 왜 일반적인 것이 되었는가라고 묻고 있다.



규제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충분한 돈이 있으면" 어떤 규제를 가하더라도 세상의 한 부분에서는 얼마든지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리모 출산을 법으로 금지하면, 그런 법이 없는 나라로 대리모가 이동을 하면 쉽게 규정을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규제에는 회피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가치관의 변화가 아닐까.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것, 키가 커야 한다는 것, 남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것... 그런 검증받지 못하고, 인문학적으로 걸러지지 못한 사회현상이 우리들을 프랑켄쉬타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 섬의 아이
이네스 카냐티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음악을 듣는다. 부드러운 선율이 느껴진다. 섬세하고 끊어질듯하면서도 이어지는,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슬픈 느낌을 주는 그런 음악. 나는 그런 음악을 들으면 때로 감동을 하기도 하였다. 예전 음악감상실이라는 곳이 있을때는 그곳에서 책을 보기도, 그곳에서 넋을 놓고 음악에 내 시간을 맡기기도 하였었다.

이 책은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읽혀진다. 세상에는 읽는 음악도 있을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루하고 구차하여도 세상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한번씩 든다. 바로 이런 책을 만날때가 그런 순간들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슬프면서도 너무 너무 행복했었다. 슬프지만 아름다웠으므로 충분히 즐거웠노라... 그렇게 말하고 싶은 책이다.

책의 표지를 보고 처음에는 여성취향이나 아이들 위주의 서정적인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조금 유치해보이는 표지가 감상적인 최루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유려한 문체는 일단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 마자 읽는 사람의 마음을 쏙 잡아 빼 놓았다. 책을 읽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귀찮아질 정도로,,, 밥벌이를 위해서 꼭 해야 하는 일마저도...

제목도 번호도 없는 짧은 장들이 연속된다. 대부분의 장들에서 앞의 장에서 나왔던 문장들이 되풀이된다. 지루하지 않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음악을 들을때 주제가 되풀이될때마다 더욱 깊은 감상에 빠져들듯이, 이 책도 같은 말이 되풀이 될때마다 더욱 깊은 감동을 빠지게 된다. 오묘한 필법이다. 나는 이제껏 이런 방식으로 쓰여진 책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책의 내용만 좋은 것이 아니라. 책을 구성하고 이루어가는 방식 또한 무척 특색있고 힘이있다.

참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한숨을 쉬어가면서, 가끔 허공을 바라보아 가면서 그렇게 책을 읽었다. 음악처럼 반복되는 아름다운 문체에 실린 그 강하면서 절제된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고 스며들면서... 그렇게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아름다웠고 이 책은 아쉽게도 너무 빨리 읽혀져 버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 뒤의 번역자의 해설을 읽었다. 이 책은 강한 시사성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삶의 야만성과 폭력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고... 그런 생각으로 내가 읽었던 내용을 되돌아본다. 분명히 그렇다. 이 책에는 삶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분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책을 읽는 시간이 있기에 삶이 의미가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위안을 주는 그런 책이다...  참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숨결
로맹 가리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리'의 문학의 역사는 곧 프랑스 문학의 역사라고 하는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로맹가리라는 사람의 이름과 그가 남긴 작품이 거대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가 남긴 단편들을 모으고, 미발표 원고를 찾아서 만든 이 책은 그의 여러시기의 작품들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긴 세월 많은 활동을 한 작가의 여러시기의 작품을 한권으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한숨을 내쉽니다. 무언가 가슴속에 저릿한 것이 느껴질때마다 내가 하는 일종의 버릇인 셈입니다. 좋은 책 잘 읽었다... 라는 그리 흔치 않은 느낌이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속을 흐르는 한줄기의 끈끈한 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죽음'이라는 소재입니다. 폭풍우라는 단 한편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들이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재라는 호칭은 가장 멋있는 순간에 가장 멋있는 방법으로 퇴장하는 사람이 차지하는 영예인지도 모릅니다. 로맹가리가 우리들의 가슴에 그토록 강인한 인상으로 남는 것은 그가 생애 최고의 순간에 극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을 등지고 자신만의 길로 영원히 떠나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죽음은 그의 청춘시절부터 늘 그와 함께 있어온 그림자와 같은 존재라는 느낌이 듭니다.

문학의 깊이를 이야기 하자면 그가 느낀 삶의 무게를 갸늠해보아야 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그다지 무겁지 않습니다. 예상외로 쉽게 술술 읽혀져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때마다 무언가 가슴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의 표제작품인 마지막숨결과 함께, 제일 마지막에 제일 큰 부피로 실려 있는 그리스 사람이라는 작품이 특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그리스 사람'에는 마치 영화 그랑블루에서 보는 것과 같은 죽음의 미학이 깊은 바닷속의 검푸른 색깔처럼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바닷속, 어머니의 숨결처럼 따스한 곳을 찾아 인생을 보내는 것이 결국 대 문호가 죽음을 맞기까지 살았던 인생의 진실이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럴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코드로 그의 작품들을 꾀어보면 모든 작품들이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문학평론이야 저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좋은 작품을 읽고 난 후의 가슴 뻐근한 느낌이 이런 저런 잘 모르는 이야기를 길게 쓰도록 만드는 모양입니다. 이 가을... 좋은 책을 만난 느낌이 무척이나 아프고, 그러면서 동시에 따사롭습니다. 날씨가 추울수록 햇살의 포근함이 더 그리운 법인가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