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단편집 스티븐 킹 걸작선 5
스티븐 킹 지음, 김현우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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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스티븐 킹에 입문하자니 적잖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한 장르의 대가라 불리는 사람인데, 고작 용기를 내서 읽었다가 재미없으면 나만 찌질이 취급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게 정말 무서워요. 제가 무모하게 가운데 손가락 치켜들기를 좋아하는 인간이라 해도, 이런 종류의 공포와는 평생 친해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웃기는 일이지요. 장르 소설을 읽는 데 뭐 그리 힘들 게 있다고 이렇게 엄살까지 떨어야 하는지. 어차피 한 번 신나게 놀아보자고 쓴 건데 말이에요. 하지만 이건 장르물이든, <율리시즈>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든, 여하튼 '거장 XX의 작품'이라고 하면 한 번쯤 스쳐지나갈 법한 공포라고 봐요. 요는, '한 작가가 얼마나 대단하게 평가받고 있으며, 그 작가를 씹는 게 얼마나 몰지각한 행위로 비춰질 것인가'입니다. 확실히 이런 기준이라면 스티븐 킹도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고요. 물론, 저보다 훨씬 담이 센 분들은 예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흠, 은근히 부러운데요?

한 작가를 알아가는 데도 여러 가지 접근법이 있을 수 있겠지요. 데뷔작, 대표작, 아니면 단편집. 뭐, 이런 접근법쯤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어떤 시각을 먼저 취하든, 스티븐 킹은 상당히 괜찮은 솜씨를 보여 줍니다. 예나 지금이나 생생하게 그려지는 대사와 배경묘사는 최고예요. 얼핏 약간 무질서하고 무심하게 느껴지는 문장이지만, 현장감 넘치는 리얼함 덕분에 스티븐 킹의 소설이 왜 이토록 빈번하게 영화화되는지, 그 이유도 쉽사리 납득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까지 듭니다. 전 <캐리>도,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도, 또 <스티븐 킹 단편집>도 흥미진진하게 읽었으니까요(물론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가 대표작일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모르겠습니다"지만요;).

횡설수설 쓸데없는 소리가 조금 길었지만, <스티븐 킹 단편집>은 소위 거장의 초기 단편집이라 보기에는 전반적인 완성도가 월등히 높아요. 보통 이런 건 책값이나 두둑하게 챙기려고 작품의 질은 차치하고 페이지수만 잔뜩 늘여놓는 경우가 태반인데 말이죠. 사실 18편 중 6편 내외로만 건져도 성공적인 독서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마음에 안 드는 소설을 헤아리는 게 훨씬 더 빠르더군요. 저는 '밤의 파도'와 '나는 통로이다'만 빼고 다 웬만큼 좋았습니다.

개중에서 '예루살렘 롯', '맹글러', '옥수수 밭의 아이들', '사다리의 마지막 단'은 특히나 훌륭했어요. <스티븐 킹 단편집> 본문에 앞서 모 호러 소설가가 '사다리의 마지막 단'을 최고의 소설로 꼽았던데, 후후, 이거, 굉장하신 로맨티스트?(저 스스로도 좋다고 했으니 물론 비꼬는 건 아니에요) '맹글러'는 과연 B급 상상력 냄새가 풀풀나서 그런지, 꽤 거칠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롯'과 '옥수수 밭의 아이들'은 작풍으로 본다면 같이 묶어버리긴 힘들지만, 종교적 광기라는 공통 분모가 있으니, 아주 틀린 분류는 아닐 겁니다. '예루살렘 롯'에서는 고딕 소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옥수수 밭의 아이들'은 여러 모로 다분히 현대적인 감성으로 무장됐지만, 둘 다 무섭긴 정말 무서웠어요(이딴 걸 공통점이라고 묶다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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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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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온다 리쿠에 관해서라면 북폴리오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 <밤의 피크닉>, <삼월은 붉은 구렁을>,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흑과 다의 환상>, <황혼녘 백합의 뼈>. 나야, <황혼녘 백합의 뼈>에 와서는 약간 미끌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우선 북폴리오에서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로 미즈노 리세 시리즈의 포문을 연 이상, 후속편 역시 북폴리오에서 내는 게 비교적 온당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렇게 둘을 미즈노 리세 시리즈라는 하나의 거대한 묶음으로 생각한다면, 북폴리오의 안목에는 더이상 토를 달 여지가 없다. 북폴리오가 다른 출판사들에 비해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해왔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북폴리오 : 6편, 국일미디어 : 4편, 노블마인 : 3편, 랜덤하우스 : 2편, 비채 : 1편, 북스토리 : 1편), 그야말로 접입가경이 아닌가.

구관이 명관이라고, 이번에도 북폴리오의 선택은 옳았다. 얼마 전 <불안한 동화>와 <구형의 계절>에서 폭거를 저지른 바 있는 랜덤하우스를 향한 분노, 아니 그 단계를 넘어, 허탈하고 피폐한 마음은, <도서실의 바다> 한 권으로, 잠시 한수 접어둬도 괜찮을 듯 싶다.

한 권 250p에 단편이 열. 여태껏 한국에 출간된 온다 리쿠 도서 중 볼륨도 가장 얇은 주제에, 한 권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수는 가장 많다. 게다가 도코노 연작을 제외하면, 온다 리쿠의 작품이 한국에서 단편소설의 형태로 소개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의외로 잠재적 불안 요소가 꽤나 많았던 것이다. 사실, 일단 덥썩 사긴 했지만, 나도 읽기 전에는 반신반의 정도였다. 그야, 앞서 미리 결론을 말해버렸듯, 모든 게 단지 기우에 그치고 말았지만 말이다.

<도서실의 바다>에 실린 열 편 모두, 독자가 단편소설에 기대하는 기본기 정도는 가뿐하게 해치우기 때문에, 내게 개중 후진 소설을 찾으라는 요구를 한다면, 상당히 망설이게 될 것이다. 다만, '피크닉 준비' 같은 경우, <밤의 피크닉>의 주요한 갈등 구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 짧막한 글 안에 담긴 감성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밤의 피크닉>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무리이다. '수련'이나 '도서실의 바다'는 각각 미즈노 리세 시리즈와 <여섯 번째 사요코>와 연결되지만, 충분히 독립적인 단편으로 기능하므로, 굳이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물론, 예전부터 온다 리쿠를 읽어왔던 독자들에게는, 기존 세계의 새로운 연장선상에서 또 잠시나마 신나게 놀다 갈 수 있는 놀이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소설들도 각각 SF,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 등, 장르는 이질적이다만, 꽤 밀도있는 문장을 주축으로, 감성의 터치가 짙게 묻어난다는 점에서 썩 만족스러운 단편들이었다.

고작 10p 분량에 그치지만 '오디세이아'는 갖은 낭만을 매우 압축적으로 전달해 준, 그야말로 환상적인 단편이었다. 장대한 세월의 압도적 존재감을 단어 몇몇에 가볍게 묶어낸 후 막힘없이 쏟아내는데, 머릿속에 그려지는 세계는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아름답게 팽창해간다. 여전히 세 달이나 더 남아 있다만, 올해 들어 나를 가장 설레게 만든 단편 소설로 미리 뽑아둔다 하더라도, 뒷날 후회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온다 리쿠님, 앞으로도 종종 단편 소설집을 기대해도 될까 모르겠어요. 물론, 매번 '오디세이아'처럼 얼핏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소품 같으면서도, 임팩트는 웬만큼 잘쓰여진 장편소설보다도 뛰어난 수준을 기대하는 건 아니니까, 긴장하실 건 전혀 없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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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의 계절
온다 리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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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여섯 번째 사요코> 이후 두 번째로 쓴 소설이라고 들었다. 물론 <구형의 계절>과 <여섯 번째 사요코>의 세부 장르는 엄연히 다르다만, 두 편 모두 주역들이 학생인 데다가, 학교가 중요한 배경이 되며, 집단 내부의 오컬트적 사건이 주된 소재로 이용되는 등, 공통 분모도 꽤 찾을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선에서 비교도 가능하다. 또한 내게 온다 리쿠는, 소설 속 인물들의 외모, 성격, 대사를 통해 무언가 - 문화 활동 외 인생관까지 - 에 대한 취향이나 감상을 꽤 단호하고 확고하게 짚고 넘어가길 잘 한다는 인상이 짙다. 게다가 온다 리쿠는 이렇게 하나둘 쌓여가는 주관적 정보를 무용하게 낭비하는 일 없이, 작품의 방향성 외 플롯을 짜는 주요 아이디어와 밀접하게 연관시켜 싸그리 이용하길 선호하는 편이므로, 쓰여진 시기와 소설 속 배경, 주인공들이 유사하다는 것만으로 몇몇 작품을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

한 가지 덧붙이지면, 국내에서 <밤의 피크닉> 이후 출간되는 온다 리쿠 소설들을 두고 몇몇 독자들은 "만날 그 나물에 그 밥", 아니면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1/x로 압축시킬 수 있다"라고 투덜대는 것도 앞서 내가 말한 바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분명 내가 보기에 이 작가는 애초에 이야기를 경제적으로 쓰는 데 흥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1차적인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소설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래도 일단 명색이 작가인데, 옮겨적은 단상의 파편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여 만들 필요는 있으니, 그 잡담을 포괄할 수 있도록 플롯을 좀 더 촘촘히. 또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스케일에 비해 분량은 굉장히 커지기 마련. 한마디로, 내게 온다 리쿠는 '경제적 글쓰기'를 우선하는 작가가 아니라, 자신의 로망 보따리(?) 안에 담긴 물건을 모조리 소설 안에 배치한다는 목표 하에 그나마 가장 효과적인 글쓰기를 찾는 작가이다.

이곳이 바로 온다 리쿠란 작가를 좋아하고, 또 싫어하게 되는 갈림길이 아닐까. 이렇게 소설 구석구석 빼곡하게 묻어난 온다 리쿠의 색이란, 본래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독자들이 아니고서야, 신나는 마음으로 읽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한 독자들에게 소위 온다 리쿠의 장점이나 특기라 불리는 것마저 약점으로 쉽게 전환된다. 이제 온다 리쿠 앞에 붙는 상투적 수사가 돼버린 '노스탤지어의 전령'이란 말은 온다 리쿠 - 만약 이 표현이 불편하다면, '온다 리쿠가 창조한 등장인물'로 바꿔도 무방하다 - 와 비교적 유사한 가치관을 지닌 독자들에겐 실로 높은 동조를 일으킬 만한 표현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그 모든 것은 "쓸데없이 말만 많은 군더더기"이며, 얼핏 비슷비슷해 보이는 - 사람의 가치관, 인생관이란 시간에 따라 서서히 변하므로 - 군더더기가 잔뜩한 동일 시기의 작품군을 "그 나물에 그 밥"으로 규정할 만한 근거로 쉬이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권위도 뭣도 없는 일개 독자의 철저한 사견에 불과하므로, 이를 굳이 받아들일 만한 가치는 전혀 없다)

어디까지 얘기했던가. 그래, 원래 하려던 말은 "<구형의 계절>은 <여섯 번째 사요코>에 이은 두 번째 소설이면서도 꽤 발전된 모습이 돋보인다"였다. 그러나, 이런 발언에는 장르가 엄연히 다른 두 소설을 몇몇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고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으므로, 이를 설명하지 못 한다면, 애초에 <여섯 번째 사요코>를 운운하는 것 자체부터 오류인 것이다. '아아, 이런'이라며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어느 새 본론보다 긴 분량의 '본격 삼천포' 완성(ㅠㅠ)

각설하고, 그럼 이제 <구형의 계절>을 이야기하자. 앞서 말했던 대로 <구형의 계절>은 <여섯 번째 사요코>보다 성숙해 보인다. 당장 <여섯 번째 사요코>의 마지막 부분만 해도, 과연 작가가 추구하는 바는, 작품 내적으로 완벽하게 귀결되는 '세계의 수렴'인지, 아니면 결말 외 소설의 일부분을 독자의 끝없는 상상에 맡긴 채 열어두는 '세계의 발산'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소설의 구성도 그리 탄탄하지 못 하며, 방향성 또한 일관적이지 못 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중간의 '여섯 번째 사요코'란 연극이 노린 효과가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많은 결점이 가려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에 비해 <구형의 계절>은 확고한 열린 결말을 노렸으며, 다행스럽게도 소설 속 세세한 장치들도 꽤 일관적인 쪽으로 작동한다.

다만, 중간중간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여타 온다 리쿠의 소설들에 비해 굉장히 많은 편이라, 소설을 한참 읽고 나서도 작품의 구심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난잡하다는 느낌이 든다. 소설 속 배경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며 작품의 구심점이 된 <유지니아>는 애초에 사건의 결말을 확연히 제시해 두고, 화자를 바꿔가며 서술하기 때문에, 작가의 노림수는 이야기의 불확실성으로 쉬이 귀결된다. 하지만 <구형의 계절>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숨기고 시작하는 미스터리의 전형적 이야기 방식을 차용하면서도, 절반이 넘어가도록 등장인물의 수와 더불어 엔트로피 역시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니, 당연히 난잡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형의 계절>을 지지하는 이유는 우습게도 일종의 오컬트적 요소 때문인데, 바로 얼마 전 <불안한 동화>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일면 점수가 깎였으니, 은근히 재밌는 일이다. 결국 이 차이는 순전히 두 소설의 장르와 오컬트를 다루는 방식 때문이다. <불안한 동화>는 어디까지나 범인을 찾는 데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본격 미스터리에 가까운데, 그 범인을 찾는 과정에 '환생'이나 '생각 읽기' 따위의 오컬트가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있다. 그러니까, 오컬트가 갈등 해소의 주된 도구로 이용되는 셈인데, <불안한 동화>에는 독자에게 오컬트의 존재를 그럴 듯하게 납득시키는 과정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애초에 오컬트를 전혀 믿지 않는 독자들에겐 "거의 빵점"이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형의 계절>은 민속학과 획일적인 교육에 찌든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불안한 심리, 판타지 등을 버무려, 오컬트 현상을 꽤 그럴 듯하게 파악하려 드는 데에 관심이 있다. 이 성과가 세밀한 감정묘사와 맞물리며, 소설 속 세계 전반에 더 짙고 더 무거운 억압으로 작용하는 마지막 장은 특히나 볼만 했다.

ps. 표지, 띠지, 인쇄, 번역, 이렇게 네 부문에 걸쳐 빼곡하게 투덜대다가, 이걸 쓰고 있는 제 자신이 몹시 피폐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모조리 지워버렸습니다. 아무리 까는 게 재미있다고 해도, 세세한 차이만 있을 뿐, 전반적으로 동어반복에 가까운 소리를 집중적으로 세 번이나 한다는 것은 전혀 반갑지 않아요. 까는 게 신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슬슬 좋은 소리도 좀 더 많이 하고 싶었고요. 분명 <구형의 계절>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얼마든지 기뻐하며 맞아줄 수 있지만, 그 일본산 소프트웨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 그리고 번역된 내용물을 담은 '하드웨어'의 저질스러운 수준이란,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차마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불안한 동화>는 표지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더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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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동화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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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이나 <유지니아>를 쓴 요즘의 온다 리쿠는 정말이지 취향을 심하게 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선뜻 추천하기가 망설여지지만, 벌써 13년 전에 쓴 <불안한 동화>는 여러 모로 무난하게 읽힌다. 이야기가 지향하는 방향도 비교적 본격 미스터리에 가깝다. 그야, 온다 리쿠는 예전부터 - 물론 국내 출간작에 한하여 - 장르가 확연한 소설을 쓴 적이 없으므로, 이 역시 어디까지나 '비교적'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맺고 끊는 게 확실한 구성이나 소설 내적으로 깔끔하게 귀결시키려는 의도가 강한 결말은 분명 본격 미스터리의 냄새가 짙다. 다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키워드가 '환생'과 '생각 읽기'라는 게 오컬트적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온다 리쿠다운 감수성의 극대화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덕분에 장단점도 명확한 편이다. 아마 강경한 본격 미스터리 독자들은 '환생'과 '생각 읽기'를 들먹일 때부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이쿠'를 되뇔 가능성이 높다. 이 두 소재가 단순히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므로, 살인이나 트릭도 주로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광경을 연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로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강한 온다 리쿠에 열광하다가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과 <유지니아>에 연타를 맞고 쓰러진 독자들은 <불안한 동화>에 다시 환호하며 좋아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온다 리쿠 소설답지 않게 주요 인물 중 눈부신 미남미녀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읽는 내내 왠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었는데, 다 읽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다. 하지만 프롤로그 이후 곧장 살해당한 (초) 미모의 여류 화가가 발산하는 압도적 존재감이란 작품 속 누구보다도 강하므로, 난 큰 불만 없다.

ps. 물론, 내가 이 책을 돈 주고 사서 읽은 이상, 별 셋 이상은 절대 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오, 세상에. 구매의욕이 73% 감소되는 저 심각하고도 불안한 표지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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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히틀러 How To Read 시리즈
닐 그레고어 지음, 안인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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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나 저급한 농담으로 시간을 죽이는 용도라면 몰라도, 간혹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사실은 히틀러가 미친놈(혹은 게이, 여자, 유대인 등등)이라서...(후략)"라는 말이 나오면 왠지 조금 씁쓸한 기분에 빠져든다. 마치 누군가가 최근 인간 관계에 얽힌 고초를 털어놓으며 "나는 XX를 정말 싫어하는데...(중략)...아, 글쎄 그 인간이 B형이거든!"라고 말하는 걸 들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마음 같아서는 소리를 꽥 지르며 "당신은 지금 몇 가지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라고 조목조목 짚고 넘어가고 싶지만, (원만하게 보이는) 인간 관계야말로 실로 중요한 것이므로, 이런 하찮은 욕망쯤은 적절히 억누를 줄 알아야 양식 있는 현대인이라 할 수 있다(님하, 정말 -_-?).

각설하고 - 그러나 헛소리는 여전히 계속된다 - 양자를 포괄하는 요는, 그러니까 한 인간을 개똥 취급하는 데에도 충분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게다. 최소한 나, 혹은 당신이 어떤 '무언가(특정 개인이나 집단 외 아무거나 좋다)'를 정신없이 씹어대는 행위는, 은근히 그 '무언가'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기 마련이다(아무런 힘도 없는 찌질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무시'이지 '분노'가 아니다). 한 인간으로부터 매우 격한 감정을 끌어낸다는 건, 그 나름대로 에너지와 상당 기간의 세월이 요구되는 일이다(물론 천부적으로 사람을 괴롭힐 줄 아는 존재들도 있다만). 따라서, 그 '무언가'가 우리 안에 심어놓은 독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다면, 또한 그에 상응하는 준비가 마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히틀러가 그냥 "미친놈이라서" 앞서 언급한 XX가 "B형이라서" 그런 거라며, 안이한 태도로 대처하고 넘어간다면, 언제가 또 다시 그 독에 당할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간의 관계에서나, 아니면 좀 더 거대한 스케일의 관계에서나, 분석적이고 체계적인 접근법이 필요한 것이다. "조국과 민족의 영광된 민주화를 위하여"나, "교양 있는 지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마디로 누가 나를 엿먹이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다. 매우 거칠고 형편없이 요약하자면, <HOW TO READ 히틀러>의 기본 전략이 이와 비슷하다.

저자 닐 그레고어도 고백하듯이 <HOW TO READ 히틀러>에서 독해 텍스트로 삼은 <나의 투쟁>과 <제2권>는 삼류 팜플렛에 불과하며, 히틀러에게는 일관되고 깊이있는 철학이나 논리가 없기 때문에, 이를 독해한다는 게 칸트나 마르크스를 읽는 것처럼 고상한 행위는 될 수 없다. 그러나, 분명 히틀러가 현대 정치사에 남긴 족적은 거대하다. 따라서, 그저 "히틀러는 정신병자"라는 빈약한 논리밖에 펴지 못 한다는 것은, 히틀러 이후의 시대를 사는 독해자로서 매우 안이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HOW TO READ 히틀러>에서 <나의 투쟁>과 <제2권>을 집요하게 파헤쳐, 주제에 따라 수많은 발췌문을 고르고 이에 꼬박꼬박 분석을 가하는 닐 그레고어의 성실한 자세는 꽤 만족스러운 결과를 떠나서라도 본받을 만하다.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에 이어 읽는다면, 의도주의자(↔구조주의자)들의 견해를 좀 더 보강하는 차원에서 썩 유익한 독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HOW TO READ 히틀러>에서 가장 볼 만한 장면은 마지막 부분에 와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독해자로서의 닐 그레고어'와 '독해자로서의 히틀러'가 충돌하는 지점이라고 본다. 히틀러 또한 상당한 양의 정보를 습득한 독서가였지만, 대중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지식을 쌓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데다가, 대부분 자신의 선입견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불명확하고 비판적 분석이 전제되지 않은 독서를 거듭했을 뿐이다. 이를 닐 그레고어가 <HOW TO READ 히틀러>에서 <나의 투쟁>과 <제2권>을 대하는 전략과 대조해 보는 작업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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