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네버랜드>를 읽고 투덜대다가가 글 마지막에 와서 "참 다행스러운 건, <네버랜드>는 2000년 작이고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2004년 작이란 겁니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인 게죠." 라며 자기 위안 삼아 덧붙인 적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작가의 필력이란, 날이 갈수록 훌륭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분명 저런 식으로 섣불리 일반화시킬 수 있는 현상은 아니죠. 저 말대로라면 <황혼녘 백합의 뼈> 역시 2004년 작이니, 최소한 <네버랜드>보다는 더 대단해야 마땅하잖아요. 제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군요. 그래도 온다 리쿠가 장르에 빠삭한 사람이라는 건 여전히 인정합니다. 다만, 그 결과가 <굽이치는 강가에서>처럼 좋을 수도 있고, <황혼녘 백합의 뼈>처럼 나쁠 수도 있는 거죠.
 
기본적인 설정과 도입부는 나쁘지 않아요. 부모보다 더 가까웠던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미즈노 리세 앞에 던져진 수수께끼 같은 유언. 여기에 할머니를 죽일만한 이유가 충분했던 두 고모 -  리나코, 리야코 자매 - 와 리세 사이의 미묘한 알력 다툼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할머니 대신 리세의 뒤를 봐주고 있는 리나코가 요조숙녀인지, 아니면 냉철한 독살마인지 쉽사리 알려 주지 않을 뿐더러, 몇 번에 걸쳐 독자의 판단이 뒤집힐만한 장치를 구사하기 때문에 좀처럼 긴장의 끈을 놓기가 힘들 겁니다. 물론, 온다 리쿠 소설이 늘 그렇듯, 새롭게 소개되는 캐릭터들의 비주얼은 여전히 막강해요. 팬들은 전작에서 중학생이었던 미즈노 리세가 어느 새 고등학생이 된 모습만으로도 즐겁고요.
 
그러나 제각각 맡은 바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던 장르들이 결말부에 와서는 제자리를 잃은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결말 전까지만 해도 훌륭히 제 역할을 해 주고 있던 리나코의 복잡한 이미지를 마지막에 와서 다시 한 번 뒤집은 건 지나친 욕심이었어요. 덕택에, "어둠의 세계가 얼마나 비열하고 잔혹한지 느껴보라"는 식의 몹시 갑작스럽고 진부한 느와르적 결말은, <황혼녘 백합의 뼈>에서 장르적 장치가 이야기에 봉사하는 게 아니라, 되려 이야기 전체가 장르적 장치의 다양함을 뽐내는 데 봉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게 만들더군요. 조금 더 불평을 하자면, 이 역시 <식스센스> 이후 미스터리물을 휩쓴 반전 강박증의 연장선상이라 봐도 심하진 않을 거예요.
 
또 고등학생이 된 미즈노 리세는 전작에 비해 꽤나 심심합니다. 전작에서 온다 리쿠가 리세의 (어두운) 정체성을 너무 확고하게 굳혀 놓으며 마무리 지은 게 문제가 아니었나 해요. 지나치게 고민하는 캐릭터는 짜증나지만, 그렇다고 별 내적 갈등 없는 캐릭터는 더더욱 매력 없어요.
 
*뱀다리*
 
1. 앞에서 <굽이치는 강가에서>가 <황혼녘 백합의 뼈>보다 낫다고 한 건, '장치가 이야기에 봉사하느냐', 아니면 되려 '이야기가 장치에 봉사하느냐'의 차이 때문이었어요.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황혼녘 백합의 뼈>보다 다양한 장르를 담고 있으면서도 훨씬 더 유기적으로 작동하거든요.
 
2. 83p 여덟 번째 줄, '리나코가 칭찬과 질투를 섞어 말하며~"로 시작되는 문장에서 '리나코'는 명백한 오역(아니면 오타)입니다. 문맥상 '리야코'가 옳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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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9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shaGreen 2010-02-1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고 감동(!)했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들었던 묘한 불편함의 정체를 그야말로 시원하게 콕 긁어주신 리뷰라서.. 반전에 대한 압박감이라든가, 장치를 위해 봉사하는 이야기라는 지적이 와 닿는군요. 추천 꾹 누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