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권정생 문학 그림책 6
권정생 지음, 정순희 그림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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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권정생님께서 쓰시고 그림은 정순희 화가께서 공들여 그리셨다. 정감있는 그림과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감이 어우러져서 이야기를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 아기자기한 동심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어쩌지? 그림책까지 좋아지면...ㅎㅎ

만구 아저씨는 기분이 썩 좋았다. 장날에 고추 한 부대를 팔아 막거리를 한잔 마셨기 때문이다. 허름한 잠바 주머니에 들어 있는 낡은 지갑에 고추 판 돈이 두툼하게 남았으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얼큰하니 뒤늦게 올라오는 막걸리의 취기를 얼굴 표정에 그대로 잘 살려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미소가 얼굴에 퍼지는 기분이다. 산길에서 볼일 보다가 흘린 돈지갑은 밤에 나타난 톳제비들을 불러 모은다.

이 종이 쪽은 뭐야?
그것, 코 푸는 휴지가 아니냐?

정말 돈이라는 지폐가 코나 풀어버리는 휴지 조각이면 얼마나 좋을까?^^
여름내 땀 흘려 거둔 고추 한 부대가 그깟 종이 쪽에 비길까.

톳제비*경상도에서 '도깨비'를 이르는 말'​

새로운 말을 동화 속에 넣어 안동 톳제비를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게 한다. 경상도 중에서도 안동에서 도깨비를 '톳제비'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 가까이에 살며 전래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장난꾸러기 톳제비들.

다시 지갑을 찾은 할아버지의 해맑은 모습과 박수치는 할머니의 환한 얼굴이 인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듯하다.

이제는 돈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동화를 보면 잠시라도 마음이 깨끗해진다. 그까짓 종이쪽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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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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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고 알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가 아니었다. 19세기초 원작의 거친 표현과 풍자 등을 삭제하고 아동문학으로 발행되었는데 이런 판본들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아마 내가 읽은 것 역시 이런 문학으로서의 걸리버 여행기였을 뿐이었다. 아동용 <걸리버 여행기>를 접한 사람은 원작의 풍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와 닿는다. 좀체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전혀 색다른 느낌의 책이었다.
완역본으로 풍자문학의 진수를 느끼며 즐거움과 깨달음을 만끽하려면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와 역사도 알아야 할 것 같다.

두 제국의 언어는 유럽 나라들의 언어가 서로 다른 것처럼 아주 달랐다. 두 제국은 그들 언어의 유수한 전통, 아름다움, 활기찬 표현 능력 등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상대 제국의 언어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경멸을 표시했다.
p.64

기질과 운명에 의하여 활동적이고 분주한 인생을 영위하게 되어 있는 나는 귀국한 지 두 달만에 또 다시 조국을 떠났다.
p.99

소인국에서 고생하고 다시 항해를 떠나 모험을 즐기는 걸리버를 이해하기 힘들다. 위험을 감수하고 가족과의 이별은 물론 본인의 생사를 내던지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 모험심이라니!!
결국 거인국에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른다.

나의 작은 친구, 자네는 자네 조국에 대하여 아주 그럴듯한 찬양의 말을 했지. 하지만 자네는 무지, 나태, 악덕이 입법자 자격을 얻기 위한 필수 요소임을 아주 명확하게 입증했어. 법률은 그 법률을 왜곡하고 혼란을 주고 회피하려는 자들의 개인적 이익과 능력에 의하여, 임의로 설명되고 해석되고 적용되었지.

자네 나라의 국민들 대부분은 가장 해로운 자그마한 벌레 같은 족속일세. 자연이 일찍이 땅 위에 기어 다니도록 허용한 벌레들 중에서 말이야.
p.162

1부 소인국과 2부 거인국의 이야기만이 기존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3부와 4부로 가는 깊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풍자문학을 제대로 된 완역본이 아니고서는 접해볼 수 없는 기회였다.
그래서인지 3부(날아다니는 섬)와 4부(말의 나라)가 흥미로웠다.

1부와 2부는 영국과 프랑스 정부의 고위직 정치인들이 벌이는 음모와 비방 그리고 권력 투쟁 등을 다루고 3부와 4부를 거쳐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 절정을 이룬다. 여러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잘못된 점을 고치고 바른 도덕성을 갖추어가는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책이다.
부패한 사회의 모습이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행태들은 권력이 행해지는 곳에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모습일까 씁쓸해졌다.

나는 16년 7개월을 넘게 여행했고 이것이 바로 여행에 관한 진실한 기록임을 독자께 알린다. 나는 화려한 글이 아니라 진실을 보여주고자 무척 신경썼다. 나는 기이하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독자를 놀라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가장 간결한 방식과 문체로 명백한 사실을 전하기로 했다. 내 주된 의도는 독자를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p.355

나의 여행기는 내 머리에서 만들어 낸 순전한 허구이다.
후이늠과 야후는 유토피아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는 존재들이다.

풍자문학에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무엇일까? 독자가 그것을 믿어주면 진실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거짓이 된다. 걸리버 여행기 속에서 소인국과 거인국의 이야기는 있음직한 이야기로서 어릴 때부터 거짓인 줄 알면서도 진실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3부와 4부의 내용은 유토피아적인 이야기 속에서 인간은 과연 이성적인 존재인가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흥미롭지만 처음 완역본으로 읽으니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이 책은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으며
다른 모든 책들을 파괴하고
오로지 여섯 권만골라야 한다면
그 중의 하나로
이 책을 고를 것이다.
조지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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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돌봅니다 (반양장) - 십 대를 위한 자기 자비 연습
박진영 지음 / 우리학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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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를 위한 자기 자비 연습"​

내가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고민이 많은 십대의 내 딸아이와 그 친구들에게 읽도록 하고 싶었다. 십대는 몸과 마음이 자라며 가장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시기이다. 남과의 외모 비교와 성적 스트레스 등으로 자기 감정울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위로를 전해준다.

아이들이 가장 관심있고,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공부나 외모에 대한 생각들을 강요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들을 편하게 적었다. 여드름이 나서, 팔뚝이 굵거나 다리가 뚱뚱해서, 수학을 못해서, 화를 못 참아서 자신을 미워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면서 또 그렇게 미워하는 자신을 싫어하게 된다. 이 책은 지금의 내 모습을 미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려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고민이 많아도
매일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유독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들이 있다. 친구들이 실수하면 괜찮다고, 다 잘 될거라고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보낼 줄 알면서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 앞에서 자신을 매정하게 몰아부치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에게 대하듯이 누구보다 더 힘들고 애쓰는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보자는 응원의 메시지가 한껏 들어있다. 순간순간 힘들 때마다 나와 제일 오래 함께하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가장 좋은 지지자가 되어 주는 것!!!

감정은 내 마음이 보낸 '톡'과도 같습니다. 마음이 보낸 메시지를 무시하지 말기로 해요. 하나도 슬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지도 말고요.
그냥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내가 지금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내 마음이 알려주는 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p.26

자기 감정을 마주하고 슬픔이나 화, 그리고 불안과 행복이나 무기력과 같은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평가하거나 부풀려서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들을 차근차근 쉽게 설명해 준다. 감정은 다그치거나 평가받는게 아니라 이해해 주는 것이다. 자기 감정의 기복이 큰 십대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자기 사랑법을 가르쳐 준다.

십대들을 위한 마음 챙김과 자기 자비에 대한 책인데 나에게도 마음의 안정을 주었던 책이었다.

가수 보아 씨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예전에는 항상 더 잘해야 한다고, 아직도 이것 밖에 안되냐고 스스로 다그쳤다고 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나 또한 부족함 많은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해 보니까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내가 인간인 걸 까먹었었나봐요.
p.97 보아씨 인터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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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꾸리는 법 - 골고루 읽고 다르게 생각하기 위하여 땅콩문고
원하나 지음 / 유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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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루 읽고
다르게 생각하기 위하여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원하나 작가는 책 만드는 일만큼 독서모임 꾸리는 일을 좋아하는 출판사 대표이자 독서모임 기획자이다.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나의 경험과 견주어 가며 읽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새롭게 알게 되는 점은 배우고 적어본다. 우리 늘품 독서모임도 6년차로 접어들면서 자리를 잡아가며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좀 더 해보고 싶은 여러가지 방법들에 대해서도 의논해 보고 싶어진다.

독서모임은 왜 하고 싶어할까?

독서모임이 좋은 점은 독서편식을 개선하고 규칙적인 독서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혼자 읽을 때와 달리 감상을 공유하며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다보면 자연스레 정리하는 훈련이 된다. 거기에 돈독한 친교는 덤이다.

독서모임에 필요란 인원은 최소 세 명, 가장 적당한 수는 일곱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원이 너무 적으면 나눌 이야기가 적어 모임이 빈약해지고 반대로 너무 많으면 산만해집니다.
p.29

우리 모임도 8명에서 10명이다. 아프거나 일이 있어서 한두명이 빠지게 되면 적당한 인원이 되는 구조인데 자발적인 독서모임이라 강제성은 없다. 장소를 정하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는 도서관 내에 강의실에서 매주 모일 수 있어서 장소 섭외의 부담감도 없이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발제는 독서모임의 뼈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곁길로 빠지는 대화의 중심을 잡고 다양한 대화를 이끌어 내 모임에 활력을 불어넣고, 모임 전반의 분위기를 돋워 모임의 지속성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p.50

처음에 우리 모임도 멘토없이 모인 모임이라 시행착오는 겪었지만 지금은 책을 선정하는 북리더가 발제를 미리 올려 밴드에 공유하고 각자 정리해서 모임에서 돌아가며 나눈다. 때로는 영화도 보고 야외로 나가기도 하는 자유로운 독서모임은 매주 모이지만 지치지 않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독서모임을 진행하는데 특별한 순서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회원 모두가 자유롭게 발언하고 의견을 고루 교환할 수 있으면 괜찮은 모임입니다. 하지만 큰 줄기도 잡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만 진행하면 꼭 언급해야 할 주제를 놓치거나 의도치 않게 동등한 발언권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p.69

독서모임 책을 선정할 때는 혼자 읽을 때 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책은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고 여러 감상을 떠올린다. 따라서 지극히 혼자하는 책을 읽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모임을 통해 함께 말하고 다양한 시선을 나누면서 공감대를 확장해 가는 장이 열려진다. 물론 처음부터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와 방식, 꾸려가는 법을 다양하게 제기하고 설명해주는 지침서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의심쩍어 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히려 습관화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튼튼하게 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중에서

평생 책만 읽는 것이
내 단 하나의 소망이었다.
앤디밀러 에세이 <위험한 독서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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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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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황산벌 청년 문학상 수상작​
꺼지지 않는 구로 디지털단지의 불빛
이 시대 프로 야근러가 보여주는
시원한 한방!

구디 얀다르크-염기원

책장을 덮고 나니 소설의 서사 속에 초대되어 한사람의 일생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기분에 잠시 혼곤해졌다. 늘 그렇둣이 읽는 동안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함께 걸어간다.

염기원이라는 작가의 약력을 보니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IT 업계에서 일하다가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구로 디지털단지와 가산 디지털단지를 오가며 IT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속내들을 훤히 꿰뚫고 대변해주는 것이 마치 자기 일처럼 자연스럽다.

난 엄마를 잘 몰랐다. 원래부터 가정주부였던게 아니라 내가 생기면서 잘 다니던 직장을 포기했다는 것을 몰랐다. 아빠의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나를 키우며 아파트를 장만했고 시동생 둘까지 대학에 보낸 줄 몰랐다. 물오른 봄철 버들강아지같던 딸이 젊음을 소비하며 새내기 생활을 만끽할 때 대화 상대도 없이 강소주로 갱년기를 버텼다는 걸 몰랐다. 내가 세상을 배울 때 그녀는 세상을 버렸고, 내가 물이 오를 때 그녀는 시들어갔다.
p.48

구구절절 남이야기같지 않았다. 내 아이가 세상을 배우고 물이 오를 때면 나도 시들어 갈 것 같은 예감이.. 힘든 취업 전선에서 힘들 것 같은 저 길이..

<구디 얀다르크>라는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한다. 구로 디지털 단지내 노조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쟌다르크와 이름 이안을 붙여서 사람들이 합성어로 만들었다. 주요 무대로 설정한 구로 디지털단지에서 고군분투하는 갑과 을. 어쩌면 병과 정이 되는 사람들의 짠내나는 이야기. 크고 작은 회사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이 일상의 반복인 그 곳의 소리없는 전쟁. 급변하는 21세기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전의 물질노동이 아닌 '정보기술'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비물질 노동은 현대인의 삶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쉴새없이 주인공 주변에 사건들을 만들어 낸다. 있을 법한 뻔한 이야기같기도 하고 또 현실 속에 없을 것같은 일들이 한사람의 가족사와 연애, 그리고 직장의 인간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누구나 꿈은 꾼다. 중학교 때는 서울대를 꿈꾸며 공부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SKY를 꿈꾼다. 2학년이 되면 인서울을, 3학년이 되면 수도권 4년제 대학을 꿈꾼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기를 꿈꾸고 늙으면 더 오래 살기를 꿈꾼다. 부모의 장수를 자식의 성공을 꿈꾼다. 부자도 거지도 더 많은 돈을 꿈꾼다. 누군가는 불멸을 꿈꾼다. 하지만 모두의 꿈이 다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p.109

불멸을 꿈꾸던 이들은 모두 영멸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을 버리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 하나씩 차근차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이 꼭 들어야 하는 걸까?
현실적인 목표를 이루는 것이 꿈을 접는 것일까?

투명한 어항 속 한가득 담은 깨끗한 물도 검은 잉크 한 방울에 더러워진다. 그 더러워진 물을 정화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물 한 방울이 뛰어 들어가봤자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 물 한방울도 금세 수많은 검은 물방울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그 어항을 깨끗하게 하려면 정말 많은 물이 필요하다. 차라리 물방울이 아닌 작고 뾰족한 망치가 필요하다. 어항을 깨뜨려 더러워진 물을 모두 빼낸 후 새 어항에 깨끗한 물을 붓는게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은 뾰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뾰족한 것보다는 부드럽고 쉬운 것에 끌린다. 어항을 깨자는 과격한 사람보다 더러운 물을 한 숟갈씩 떠내고 깨끗한 물을 한 숟갈씩 넣자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던 사람에게 권한을 이양해 주었다.

그렇게 권한을 얻은 이가 더러운 물을 떠낸 적도, 깨끗한 물을 넣은 적도 없다. 물이 더럽다고 하는 이의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갈겨 조용히 시킨 후 깨끗해지고 있다고 소리칠 뿐이다.
p.129

90년대의 일들을 되짚어가는 이야기와 IT강국이라고 하지만 아이폰으로 미국 시장이 들썩일 때 한국은 뒤늦게 발달하며 겪는 앱스토어 시장의 흥망성쇠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진주가 결국 가난한 결혼 생활을 선택했다는 것에 나는 실망했다. 하지만 단칸방이라도 좋으니 말 잘 통하고 막걸리 먹고도 트림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서 밤새워 마시며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삶, 그게 스무 살 무렵 나와 그녀가 꿈꾸던 행복한 삶이었다. 진주 신랑은 막걸리 안주로 잘 익은 깍두기를 먹고서도 트림을 하지 않았다.

"즐거움의 계절, 슬픔의 계절,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스팅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p.176

이 문장에 뭔지 모를 꿈이 깃들어 있는 느낌이 든다. 여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냈을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꿈을 향해 가고 있을까?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도태되고 있으며 현실에 타협하며 하나씩 잃어가는 것일까?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경쟁을 시작하고 비교를 당하며 살아간다. 무언가를 남들보다 빨리 그리고 좋은 성과를 올리기 위한 속력전은 대학을 가서 졸업하고 취업해서 직장 생활에까지 줄기차게 이어진다. 몸은 망가지고 힘들어도 경쟁의 대열에서 이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관성에서 벗어나는 일은 힘든 일이고 규격에서 벗어난 삶은 불안을 감수해야한다. 사회에서 약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고생하며 눌러담은 흔적이 보이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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