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고 알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가 아니었다. 19세기초 원작의 거친 표현과 풍자 등을 삭제하고 아동문학으로 발행되었는데 이런 판본들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아마 내가 읽은 것 역시 이런 문학으로서의 걸리버 여행기였을 뿐이었다. 아동용 <걸리버 여행기>를 접한 사람은 원작의 풍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와 닿는다. 좀체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전혀 색다른 느낌의 책이었다.완역본으로 풍자문학의 진수를 느끼며 즐거움과 깨달음을 만끽하려면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와 역사도 알아야 할 것 같다.두 제국의 언어는 유럽 나라들의 언어가 서로 다른 것처럼 아주 달랐다. 두 제국은 그들 언어의 유수한 전통, 아름다움, 활기찬 표현 능력 등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상대 제국의 언어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경멸을 표시했다.p.64기질과 운명에 의하여 활동적이고 분주한 인생을 영위하게 되어 있는 나는 귀국한 지 두 달만에 또 다시 조국을 떠났다.p.99소인국에서 고생하고 다시 항해를 떠나 모험을 즐기는 걸리버를 이해하기 힘들다. 위험을 감수하고 가족과의 이별은 물론 본인의 생사를 내던지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 모험심이라니!! 결국 거인국에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른다. 나의 작은 친구, 자네는 자네 조국에 대하여 아주 그럴듯한 찬양의 말을 했지. 하지만 자네는 무지, 나태, 악덕이 입법자 자격을 얻기 위한 필수 요소임을 아주 명확하게 입증했어. 법률은 그 법률을 왜곡하고 혼란을 주고 회피하려는 자들의 개인적 이익과 능력에 의하여, 임의로 설명되고 해석되고 적용되었지.자네 나라의 국민들 대부분은 가장 해로운 자그마한 벌레 같은 족속일세. 자연이 일찍이 땅 위에 기어 다니도록 허용한 벌레들 중에서 말이야.p.1621부 소인국과 2부 거인국의 이야기만이 기존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3부와 4부로 가는 깊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풍자문학을 제대로 된 완역본이 아니고서는 접해볼 수 없는 기회였다.그래서인지 3부(날아다니는 섬)와 4부(말의 나라)가 흥미로웠다. 1부와 2부는 영국과 프랑스 정부의 고위직 정치인들이 벌이는 음모와 비방 그리고 권력 투쟁 등을 다루고 3부와 4부를 거쳐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 절정을 이룬다. 여러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잘못된 점을 고치고 바른 도덕성을 갖추어가는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책이다. 부패한 사회의 모습이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행태들은 권력이 행해지는 곳에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모습일까 씁쓸해졌다.나는 16년 7개월을 넘게 여행했고 이것이 바로 여행에 관한 진실한 기록임을 독자께 알린다. 나는 화려한 글이 아니라 진실을 보여주고자 무척 신경썼다. 나는 기이하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독자를 놀라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가장 간결한 방식과 문체로 명백한 사실을 전하기로 했다. 내 주된 의도는 독자를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p.355나의 여행기는 내 머리에서 만들어 낸 순전한 허구이다.후이늠과 야후는 유토피아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는 존재들이다.풍자문학에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무엇일까? 독자가 그것을 믿어주면 진실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거짓이 된다. 걸리버 여행기 속에서 소인국과 거인국의 이야기는 있음직한 이야기로서 어릴 때부터 거짓인 줄 알면서도 진실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3부와 4부의 내용은 유토피아적인 이야기 속에서 인간은 과연 이성적인 존재인가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흥미롭지만 처음 완역본으로 읽으니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이 책은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으며다른 모든 책들을 파괴하고 오로지 여섯 권만골라야 한다면그 중의 하나로 이 책을 고를 것이다.조지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