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황산벌 청년 문학상 수상작꺼지지 않는 구로 디지털단지의 불빛 이 시대 프로 야근러가 보여주는시원한 한방!구디 얀다르크-염기원책장을 덮고 나니 소설의 서사 속에 초대되어 한사람의 일생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기분에 잠시 혼곤해졌다. 늘 그렇둣이 읽는 동안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함께 걸어간다.염기원이라는 작가의 약력을 보니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IT 업계에서 일하다가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구로 디지털단지와 가산 디지털단지를 오가며 IT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속내들을 훤히 꿰뚫고 대변해주는 것이 마치 자기 일처럼 자연스럽다.난 엄마를 잘 몰랐다. 원래부터 가정주부였던게 아니라 내가 생기면서 잘 다니던 직장을 포기했다는 것을 몰랐다. 아빠의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나를 키우며 아파트를 장만했고 시동생 둘까지 대학에 보낸 줄 몰랐다. 물오른 봄철 버들강아지같던 딸이 젊음을 소비하며 새내기 생활을 만끽할 때 대화 상대도 없이 강소주로 갱년기를 버텼다는 걸 몰랐다. 내가 세상을 배울 때 그녀는 세상을 버렸고, 내가 물이 오를 때 그녀는 시들어갔다.p.48구구절절 남이야기같지 않았다. 내 아이가 세상을 배우고 물이 오를 때면 나도 시들어 갈 것 같은 예감이.. 힘든 취업 전선에서 힘들 것 같은 저 길이..<구디 얀다르크>라는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한다. 구로 디지털 단지내 노조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쟌다르크와 이름 이안을 붙여서 사람들이 합성어로 만들었다. 주요 무대로 설정한 구로 디지털단지에서 고군분투하는 갑과 을. 어쩌면 병과 정이 되는 사람들의 짠내나는 이야기. 크고 작은 회사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이 일상의 반복인 그 곳의 소리없는 전쟁. 급변하는 21세기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전의 물질노동이 아닌 '정보기술'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비물질 노동은 현대인의 삶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쉴새없이 주인공 주변에 사건들을 만들어 낸다. 있을 법한 뻔한 이야기같기도 하고 또 현실 속에 없을 것같은 일들이 한사람의 가족사와 연애, 그리고 직장의 인간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누구나 꿈은 꾼다. 중학교 때는 서울대를 꿈꾸며 공부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SKY를 꿈꾼다. 2학년이 되면 인서울을, 3학년이 되면 수도권 4년제 대학을 꿈꾼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기를 꿈꾸고 늙으면 더 오래 살기를 꿈꾼다. 부모의 장수를 자식의 성공을 꿈꾼다. 부자도 거지도 더 많은 돈을 꿈꾼다. 누군가는 불멸을 꿈꾼다. 하지만 모두의 꿈이 다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p.109불멸을 꿈꾸던 이들은 모두 영멸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을 버리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 하나씩 차근차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이 꼭 들어야 하는 걸까?현실적인 목표를 이루는 것이 꿈을 접는 것일까?투명한 어항 속 한가득 담은 깨끗한 물도 검은 잉크 한 방울에 더러워진다. 그 더러워진 물을 정화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물 한 방울이 뛰어 들어가봤자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 물 한방울도 금세 수많은 검은 물방울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그 어항을 깨끗하게 하려면 정말 많은 물이 필요하다. 차라리 물방울이 아닌 작고 뾰족한 망치가 필요하다. 어항을 깨뜨려 더러워진 물을 모두 빼낸 후 새 어항에 깨끗한 물을 붓는게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은 뾰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뾰족한 것보다는 부드럽고 쉬운 것에 끌린다. 어항을 깨자는 과격한 사람보다 더러운 물을 한 숟갈씩 떠내고 깨끗한 물을 한 숟갈씩 넣자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던 사람에게 권한을 이양해 주었다. 그렇게 권한을 얻은 이가 더러운 물을 떠낸 적도, 깨끗한 물을 넣은 적도 없다. 물이 더럽다고 하는 이의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갈겨 조용히 시킨 후 깨끗해지고 있다고 소리칠 뿐이다.p.12990년대의 일들을 되짚어가는 이야기와 IT강국이라고 하지만 아이폰으로 미국 시장이 들썩일 때 한국은 뒤늦게 발달하며 겪는 앱스토어 시장의 흥망성쇠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진주가 결국 가난한 결혼 생활을 선택했다는 것에 나는 실망했다. 하지만 단칸방이라도 좋으니 말 잘 통하고 막걸리 먹고도 트림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서 밤새워 마시며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삶, 그게 스무 살 무렵 나와 그녀가 꿈꾸던 행복한 삶이었다. 진주 신랑은 막걸리 안주로 잘 익은 깍두기를 먹고서도 트림을 하지 않았다."즐거움의 계절, 슬픔의 계절,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스팅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p.176이 문장에 뭔지 모를 꿈이 깃들어 있는 느낌이 든다. 여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냈을까?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꿈을 향해 가고 있을까?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도태되고 있으며 현실에 타협하며 하나씩 잃어가는 것일까?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경쟁을 시작하고 비교를 당하며 살아간다. 무언가를 남들보다 빨리 그리고 좋은 성과를 올리기 위한 속력전은 대학을 가서 졸업하고 취업해서 직장 생활에까지 줄기차게 이어진다. 몸은 망가지고 힘들어도 경쟁의 대열에서 이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관성에서 벗어나는 일은 힘든 일이고 규격에서 벗어난 삶은 불안을 감수해야한다. 사회에서 약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고생하며 눌러담은 흔적이 보이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