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쪼그려 손톱을 바짝 세우고 두 손을 문 아래쪽의 문틀 사이에 끼웠다. 지속적으로 힘을 주며 문틀을 눌렀다. 조금씩 조금씩 문과 문틀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몇 분 동안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드디어 내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가 되자 숨을 한 번 들이쉰 후 힘을 쥐어짰다. 손가락 끝의 감각은 문이 조금씩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이에 고무되어 손가락을 구부리며 당겼다. 생각보다 무거운 문이 마침내 내 한 몸 들어갈 정도로 열리며 어둠을 내뿜었다. 나를 반겨주는 빛은 전혀 없지만, 흐릿하던 소리가 좀 더 진해졌고, 익숙한 피 냄새도 다가왔다. 이 곳에는 분명 뱀파이어가 하나 혹은 그 이상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다시 한 번 침을 삼키고나서 몸을 옆으로 돌려 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문은 안 쪽에 손잡이가 있었다. 등 뒤로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이제 어둠은 더욱 짙고 음습해졌고, 나는 그 안에서 앞으로 걸어가야만 한다, 오로지 발과 몸의 감각에 의지해서. 문을 닫기 전에 본 기억으로 복도 같은 느낌의 길이 뻗어 있었다. 한 발씩 천천히 아기가 걷듯이 전진했다. 팔을 양쪽으로 쭉 뻗어 십자가에 매달린 듯한 자세로 손에 걸리는 물체가 없는지 더듬었지만, 의외로 복도벽은 벽지를 바른 듯 매끈했다. 일반적인 문이나 유리창이 전혀 없는 긴 골목길의 느낌이라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긴장감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윽! 아야!] 

드디어 삼차신경통이 끝나면서 송곳니가 튀어나왔다. 잇몸을 찟고 나오는 느낌이 몸서리치게 고약해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졌다. 메아리가 되어 퍼지는 내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떨며 자리에 멈쳤다. 혹시라도 귀밝은 뱀파이어가 들었다면, 이리로 달려올테니 침입자인 내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겠는가. 그런 이유로 검은 복도를 노려보며 벽에 바짝 붙었다.  

1분..2분..3분.. 

속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감안해보는데, 이상하게도 나를 향해 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운이 좋게 그들이 듣지 못한 듯 하다. 소리 없는 한숨을 크게 내 쉰 후, 다시 팔을 양 쪽으로 뻗어 벽을 집어가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세상에 모든 건 끝이 있듯이 깜깜하고 음습한 복도에서 마침내 문으로 추정되는 곳이 나타났다. 몸을 돌려 두 손으로 살살 더듬어 허리 정도 높이에 달린 길고 가느다란 손잡이를 찾았다. 두 손으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잡아 당겼다.  

무겁고 육중한 문이 조금씩 열리자 흰색의 빛이 복도에 길게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이 빛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침을 삼킨 후 방안을 둘러보았다. 건너편에는 창문이 있는 듯하나, 두껍고 붉은 커튼이 완벽하게 쳐져있어 외부를 볼 수 없었다. 대신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방 안을 비추어 주었다. 그 빛에 처음으로 인식된 물체는 쇼파에 누워있는 여자였다. 자고 있는지 몸은 쭉 뻗은 채, 고개가 뒤로 푹 꺽여 상당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인형을 가져다가 눕힌 느낌..  

그녀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상체를 수그렸을 때, 목에 생긴 붉은 반점 두 개가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상처는 두 개의 송곳니로 인해 만들어진 것으로 피를 흡입한 후, 독으로 잘 마무리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채 여전히 고개를 뒤로 꺽여 있어 손을 살짝 콧구멍에 가져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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