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올 생각 하지마] 

그가 뒷걸음질쳐 문을 열고 나간 후, 주인 여자는 한숨을 쉈다. 문득,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불량배 뱀파이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먹이감은 없을테니까. 

[괜찮아요?] 

예상대로 주인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으로 툭툭 턴 후,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고개를 까딱거리자 곧바로 텅 빈 냉장시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문을 닫아야겠네요. 팔 게 없으니..] 

그녀의 말에 퇴장해야할 때란 걸 느꼈다. 주머니에 있는 묵직한 돈이 이처럼 소용 없는 상황도 있구나..하며 터덜터덜 편의점을 나왔다. 내가 문을 닫자 간판을 비추며 춤추듯 반짝이던 전구의 불이 꺼졌다. 이어 편의점 안의 불빛들도 하나 둘씩 나가는 게 보였다. 왠지 쓸쓸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마지막 불까지 나가는 걸 확인한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뱀파이어가 되면 부자가 되고, 아름다워지는 줄 알았다. 나에게 은근슬쩍 다가와 뱀파이어가 되라고 부추긴 남자 때문에 생긴 오해지만, 나는 너무나 어리고, 허영심에 가득차 진심으로 그렇게 된다고 믿었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연예계에 있거나 그정도의 미모를 소유한 사람들이라, 지독히도 평범한 내 얼굴이 항상 불만이었으니까. 그걸 정확하게 꽤뚫어본 남자는 아름다워질 수 있냐는 내 질문에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아름다운가? 티비나 영화에 나온 뱀파이어들처럼 그런가? 불꺼진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인간이었을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작은 키, 마른 몸매, 낮 은 코와 한국인 특유의 작은 눈. 딱 하나 아름답다고 할만한건 사슴같은 목 선이다.  

[음?]  

쇼윈도 앞에서 고개를 조금씩 돌려가며 나 자신을 훑어보는데 그리운 피 냄새가 느껴졌다. 1킬로 안에서 나는 모든 냄새과 기척을 감지할 수 있게 된 후부터 피는 더 강하고 매력적이 되었는데, 바로 그 피맛이 코를 자극했다. 그 순간 내가 하루를 꼬박 굶었음을 깨달았고, 곧이어 주변에 걸어가는 이가 없음을 확인한 후, 몇 초 만에 500미터를 이동했다. 피 냄새가 나는 지점은 강도의 습격을 당한 편의점에서 네 번째 골목이었다. 성인 남자 두 명이 나란히 서면 약간 비좁을 듯한 작은 골목으로 바닥에 혈액팩이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먹다 버린 듯, 약간의 피가 팩 안에 들어있고 그 피의 향이 계속 느껴졌다. 나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주워서 입을 벌리고 팩 안의 혈액을 부었다. 어찌나 좋은지 목과 위가 꿀렁꿀렁 소리를 지른다. 한 방울의 피라고 더 마시고 싶은 생각에 팩을 쥐어짜며 고개를 뒤로 졌혔다. 그 때 골목의 맞은편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훑었을 때는 어둠에 감싸인 막다른 벽돌담이라고 생각했는데, 배를 약간 채운 후 밝아진 눈으로 보니 담인척 하는 문이었다. 아마 인간은 100프로 담으로 알고 가보지도 않겠지만..  

 

바닥에 버려진 과자봉지들을 밟을 때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릴 뿐, 이 순간 골목은 완벽하게 정적을 유지했다. 마치 나와 골목만 존재하는 듯한 기분에 침을 꿀꺽 삼키며 세 걸음 만에 문 앞에 당도했다. 손바닥으로 문을 훑고 건드려보았지만, 밀리거나 열릴 기미가 없었다. 안에서 밀어야만 열리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돌 껍데기로 장식된 문과 1센치도 안되는 틈을 가진 문틀 사이에서 뭔가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예전의 나라면 절대로 듣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진동이라 새삼 업그레이드 된 능력에 감탄하며, 돌아갈까 열어볼까 갈등에 휩싸였다. 항상 그렇지만, 호기심은 예측불허의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아니던가. 이거참..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호기심에 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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