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저절로 떠졌다. 살짝 고개를 돌려 창문쪽을 보니 새벽이다- 물론 뱀파이어에게만 새벽이고 인간에게는 황혼녁 정도의 시간을 뜻한다-몸이 무겁고 삭신이 쑤셔서 일어나기 싫지만 허기가 목까지 올라와 별 수 없이 이불을 박차고 침대를 빠져나왔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하품을 하며 첫 번째 계단에서 거실로 뛰어내렸더니 주방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부지런한 가정부 아줌마. 분명 내게 피를 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일 것이다. 그런데..남은게 있던가?
[피...이제 없죠?]
아줌마는 오른쪽 입술 끝만 살짝 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대답하기 민망하다는..그런 포즈로 해석하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제꺼라도 드릴까요?]
감사하긴 하지만, 그녀는 반인반뱀파이어라 나처럼 생혈액을 먹지 않는다. 약간의 양념을 친 밥이라고 할까. 하여간 맛없다.
[괜찮아요. 오늘 월급 나올거니까]
[아가씨, 그런 일은 사람이 하는 건데..할 만하세요?]
[뭐..그럭저럭]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여전히 가난한 1급 장애 뱀파이어니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주인어르신께 말씀드리시면..]
나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으러 현관 앞으로 걸어갔다. 아줌마는 이제 내가 스승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으니 그에게 돈을 좀 부탁해도 괜찮지 않겠냐는 의도지만, 그건 스승님과 나를 모르는 제 3자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나는 처음에 이집에 왔을 때, 그의 엄격함과 냉정함을 경험했다, 정말 땡전 한 푼 없는 걸 알면서도 알아서 피를 구하라고 등을 돌린...물론 머리로는 이해한다. 나를 이 험하고 비정한 세상에서 좀 더 강하고 굳건한 뱀파이어로 개조하고 싶기 때문이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반쪽짜리라는 사실이다. 막 뱀파이어가 된지 1일째의 새내기 보다도 힘이 약하고, 평소에는 아예 송곳니가 없으며, 그나마 어쩌다가 삼차신경통이 재발해야 송곳니 한 개가 달랑 나오는 상황인데도 그는 가차없다. 그래서 결국 선언했다! 돈 벌어 오겠다고.
[후...쑤신다..쑤셔]
듣는 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지만 현관문을 소리나게 닫고 정원을 지나 길거리로 나섰다. 겨우 3일 정도 일을 했지만 몸으로 떼우는 게 이리도 힘들다는 걸 눈뜨면 느끼는 중이다. 저녁 7시까지 가서 출근도장을 찍고 새벽 3시까지 매장에 서서 움직이는 건데, 침대에서 일어날 때면 목도 결리고 팔은 무거우며 다리는 쇠고랑을 찬 듯 흐느적 거린다. 이렇게 달빛이 아예 없는 밤이 아니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춤추는 미친 여자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아프고 결린다.
[다음 손님, 주문해주세요!]
주황색에 검정 치마로 이루어진 유니폼을 입고 계산대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치고 있자니 뒤에서 속 뒤집어 지는 기름 냄새가 뭉실뭉실 밀려왔다. 안 그래도 배고파 후들거리는데 그런 느끼한 냄새를 맡자니 너무 괴롭다. 뱀파이어가 되면서 예민해진 감각이 또다시 죽음을 격은 후에는 완벽하게 업그레이드가 되버려 반경 1킬로 안에 떠도는 미세한 냄새까지 감지를 하니, 바로 뒤에서 달려드는 이런 냄새는 아주 고역이다.
[어니언링 세트 하나와 소고기 버거요]
내 앞에 선 남자가 천장에 달린 메뉴판을 보느라 얼굴을 바짝 쳐들었다.
[네?]
[소고기 버거랑 어니언링 세트!]
[아...네...소고기..버거..어니언링 세트]
한국인 특유의 노리끼리한 목덜미 안에서 팔딱이는 새파란 핏줄에 정신을 파느라 그가 주문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덕분에 두 번 말하게 된 남자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