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눈을 떴다. 눈꺼풀 사이로 누군가가 보인다. 천천히 깜박이는 순간마다 그 누군가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입을 벌려 나에게 말을 하는데 들리지 않는다. 마치 유리박스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기분이다. 얼굴의 유곽만이 느껴질 뿐 눈, 코, 입이 제대로 박혀있지 않다. 뭉개지고 변형되어 그저 그 곳에, 그 자리에 있다는 걸 혼자 상상했다. 입 안으로 액체가 흘러들어왔다. 시큼한 피맛과 함께 쿨렁거리는 느낌이 위에서 머리로 전달되며 위가 바쁘게 조이고 풀어주는 운동을 한다. 폐도 영향을 받았는지 공기를 빨아들였다. 들이쉬고 내쉬며 나의 감각들에게 힘을 보낸다.  

[시영아..] 

마치 범죄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의 목소리를 묘하게 바꾸어 놓은 것처럼 비꼬여 들어오지만 나를 부르는 그 음절은 스승님이 맞다. 그 누군가의 윤곽도 그다. 눈을 수십 번 깜빡이자 점차 시력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내 상반신이 들어 올려지더니 스승님의 가슴에 닿았다. 내 목 근처에서 느껴지는 그의 거친 숨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렸다.  

[나..살았나요?] 

내 어깨에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그가 우는 것 같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스승님의 목을 감쌌다.  

[처음부터 날 사랑했죠?] 

그의 귀에 속삭였다. 스승님은 아무 말 없이 갈비뼈가 부러질까 걱정될 정도로 껴안았다.  

[아가씨! 아가씨!] 

뒤에서 호들갑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빼고 돌아보았다. 아줌마와 기웅이가 문가에 서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 뜬지 감은지 알 수 없는 아줌마는 무릎을 털썩 꿇으며 다시 통곡을 시작했다. 기웅이는 화가 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스승님의 품에서 벗어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기웅아, 미안해] 

그는 찰싹 소리 나게 내 뺨을 때렸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쿵쾅거리며 멀어져갔다. 나는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 서 있었다. 그가 다시 고양이로 변했는지 미친 듯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머리 속에서 울려퍼졌다. 그도 스승님처럼 울고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의 반응을 견딜 수 없어 무너지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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