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따라 왼쪽의 나무들 사이로 걸어갔다. 이 저택의 나무들은 계절에 큰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설계했는지 잎이 뾰족한 놈들이 많아 정신차리지 않을 때면 얼굴을 심하게 찔렸다. 성가신 잎들을 손으로 걷어내며 몇 분 쯤 더 걸어 하수구로 추정되는 파이프 앞에 도착했다. 바닥에는 약 30센치 정도 깊이의 구덩이가 길게 파여 담장 너머로 이어져 있고, 그 한 가운데 작은 파이프가 몸을 드러내놓고 있어, 그 중 왼쪽으로 뚤려있는 구멍으로 들어갔을 것이라 추측했다. 

[빨리 다녀와] 

내 앞에서 에스더가 사라지자 다시 나는 혼자가 되었다. 새벽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종종 올려다보며 햇빛을 피할 곳을 찾으려 애썼다. 앞으로 1시간 정도 후면 아침 햇살이 적나라하게 내리찔테고, 여기는 나무들이 빽빽하지 않아 햇빛에 타 소멸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점점 초조해지는 마음에 손톱을 깨물며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 때 파이프 안 쪽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가가 파이프를 치면서 움직이는 소리라고 판단하자 나는 몸을 납작하게 엎드려 안을 들여다보려고 얼굴을 파이프 앞으로 가져갔다. 졸졸 흐르던 물이 갑자기 끊어져,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기웅이를 불렀다. 파이프 안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한바가지 정도 되는 물이 갑자기 확 밀려나와 얼굴에 정면으로 쏟아졌다. 

[푸...하] 

나는 손으로 구정물을 닦아내고 눈을 뜨려 애썼다. 오물이 잔뜩 섞인 물은 냄새가 지독해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푹 젓은 고양이 상태의 기웅이가 파이프 안에서 튀어나와 얼굴에 세게 부딛혔다. 우리는 동시에 반대편으로 나동그라졌다. 나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물기를 힘차게 털어낸 후, 내게 다가왔다. 

[스승님 봤어?]
[응]
[살아계서?]
[모르겠어] 

나는 그를 번쩍 들어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나도 모르게 뱀파이어의 힘으로 그를 누르며 흔들어 고통스러운 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제야 그를 바닥에 내려놓고 사과하며 자세히 설명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프릭스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어. 그리고 네가 설명한 건너편 방은 비어 있고. 너의 스승님은 제일 첫 번째 방에..말뚝이 박힌 채로..벽에..]
[다른 뱀파이어와 혼동한 거 아니니? 첫 번째 방이면 다른 남자일텐데..왜 너도 전에 본..]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더 이상 말을 전하지 않자, 나는 바닥에 주저 앉아 숨을 제대로 내쉬려 노력했다. 그러나 천식 환자가 내뱉는 숨처럼 거칠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만 뿜어져 나왔다. 

[곧 해가 뜰꺼야. 일단 피했다가 다시 오자] 

그의 말이 머리 속에서 울리는 대도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몸이 얼어붙어 영혼이 빠져나가버린 듯한 상태였다. 

[네가 여기서 햇빛 때문에 사라지면 누가 그를 구하니? 그대로 나쁜 놈들에게 휘둘리다가 죽게 둘까?]
[스승님이 없는 게 너에게는 더 좋은거 아니야? 넌..그를 좋아하지 않잖아]
[그래. 그가 너를 놔주지 않아서 차라리 사라져주길 바랬지만, 이런 식은 아니지. 난 그가 죽는 걸 원한 적 없어] 

그의 목소리가 머리 속을 태워버릴 듯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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