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따라오신 건가요?]
[음..반쯤은..]
[무슨 일로요?]
[그와는 어떤 사이지?]
[글쎄요..내가 왜 대답해야하죠? 궁금하시면 직접 물어보세요]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과 마주치는 게 두렵다는 생각이 들어 이 자리를 벗어나고자. 그는 지나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여긴 왜 왔지?]
[파티에 참석하려고요. 그 것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그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에게서 뭔가를 알아내고 싶은 게 틀림없지만, 말할 것이 없다는 게 왠지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 그와 나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며 내 머리카락을 살짝 흐트려놓았다. 그가 손을 들어 어깨너머로 머리카락들을 넘겨주었다. 그리고나서도 그의 손가락이 목과 어깨를 훑고 있어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내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카르페디엠] 

그가 발소리를 내지 않고 반대편으로 사라지자,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을 즐겨라..내일은 없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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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에 속이 점점 더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어 머리를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사실 살아오면서 술을 먹어본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인데, 오늘은 긴장해서 혈액마저 안 먹고 나온 터라 빈속에 들어간 술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중인 것 같다. 게다가 그레고리와의 기분 나쁜 순간도 한 몫 했다.  

[괜찮아요?] 

언제 온 건지 술을 가지러 갔던 남자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술잔을 내려놓고는 내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속이 좀 거북하네요] 

갑자기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억지로 삼킨 후 그에게 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일어나다가 약간 비틀거리던 나를 부축하려고 허리를 팔로 감았다. 몸을 기대고 천천히 걸어 정원의 입구를 벗어났다. 눈앞에 홀이 있는 건물이 나타났고, 열려있는 문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스승님이 보였다. 그는 이내 나를 알아보고는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술이 좀 과한 거뿐이에요. 이 분께서 실례한 건 없으니 화내지 마세요] 

나는 웃으며 말하려고 애썼지만, 속이 거북해 고개를 숙였다. 

[자네가 말렸어야지]
[죄송합니다. 파트너이신 줄 모르고.]
[어라? 두 분 아는 사이에요?] 

나를 부축하고 있던 남자는 스승님이 데려가려고 하자 바로 팔을 빼며 조심스럽게 사과했다. 그가 공손한 포즈로 끄덕이는 걸 보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었다. 

[혹시 좀 전에 말하던..]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또 다시 바로 끄덕거렸다.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져 쓰러질 뻔했다. 스승님은 재빨리 나를 두 팔로 안아 들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가 다시 한 번 매우 정중히 스승님을 향해 사과했지만, 화가 난 표정의 스승님은 말없이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거에요?]
[주차장]
[벌써 돌아가게요? 이제 괜찮아졌는데..]
[너 얼굴이 파래. 좀 쉬는 게 좋겠어] 

주차장에 도착해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탈 때까지도 스승님은 말이 없으셨다. 심기가 불편한 건 알지만, 나 역시도 기분이 매우 나빠 스승님이 운전석에 타길 기다렸다. 

[진짜로 직업이 뭐죠?]
[경찰]
[그냥 경찰이라고요? 순수하게?]
[어디까지 알고 물어보는 거냐?] 

우리는 서로 마주보았다. 나는 여전히 술이 한창 올라오는 중이라 몸을 가누기가 힘들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싶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몸을 꼳꼳이 세웠다. 그러나 곧 어지러워져 등받이에 기대어 이마에 손을 얻었다. 유리창 너머의 주황색 등불들이 모두 흔들린다. 

[스승님이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정도?]
[화가 많이 난 거 안다]
[그럼 제가 웃겠어요, 지금? 스승님은 그 사실들을 여러 해 동안 숨기셨잖아요. 오늘 누군가에게 듣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말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동안 저와 프릭스가 주고받았던 말들도 다 알고 계셨겠네요. 모른 척 하면서 절 놀리니까 재미있었어요?] 

말을 할수록 화가 치밀어 점점 빨라지고 소리가 높아졌다. 급기야는 조수석 문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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