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홀 안을 들여다보실 수 있나요?]
[볼 수는 있지만, 그 사이에 투시를 방해하는 물체들이 너무 많아요. 아직 개발하는 단계라 부족합니다]
[좀 전에 의자와 테이블을 확인하신 걸 보면 뛰어나세요] 

그는 창피한 듯 멋쩍게 웃었지만, 칭찬을 감사해하며 잔을 비웠다.  

[팀장님에 비하면 별거 아니죠]
[그래요? 그 분은 어느 정도신데요?]
[마음을 들여다보실 수 있습니다]
[파티에 같이 왔어요?]
[네. 홀 안 어딘가에 계실겁니다] 

나는 마타의 자질이 있어 프릭스들의 말을 듣는 건 가능하지만 다른 뱀파이어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열어보거나 들어가지는 못한다.  

[불편하시지 않으세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듣고 있잖아요]
[처음엔 나도 그렇게 믿었는데, 대장님은 조절 능력이 있으셔서 평소에는 열어두질 않으십니다. 사건과 관계 된 일이나, 피해자 심문 할 때..등등의 일에 사용하시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코끝에 봄의 향기가 느껴졌다. 약하게 올라왔다 꺼지고 다시 좀 더 높이 도달하려 뿜어져나오는 분수를 보고 있자니 뱀파이어들의 능력들이 저 분수의 물살 높이 만큼이나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도 그런 능력들이 있을까요? 예를 들면 저 안에 모인 뱀파이어들 중에도요]
[음..숨기고 있다고 가정하면 아마도 있겠죠. 초대의 뱀파이어들이 만약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그들 자신을 제외하고는 대적할 뱀파이어가 없을거에요.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라고 하니까]
[전 평범한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왜죠?]
[어떤 종류의 특별함은 삶을 고되고 힘들게 만들어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만들거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건이 터지게 하잖아요. 그냥 평범하게 사랑하는 이와 결혼해 무탈하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인거 같아요]
[아가씨는 묘한데가 있군요] 

그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술병과 잔이 가득한 쟁반을 든 웨이터였다.  

[나는 스카치로. 아가씨는 무알콜..]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술을 달라고 말했다. 그는 술에 약할 것같다는 식의 표현을 했지만, 그게 더 날 발끈하게 만들어 술을 좋아한다고 응수했다. 그리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집어들어 한번에 다 마셨다. 

[후..좀..쓰긴 하네요] 

웨이터가 다시 채워주는 걸 보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아까 뷔폐쪽으로 걸어오는 당신이 눈에 들어왔어요. 뭐랄까..귀여운 아이 같으면서도 여인의 느낌이 있어서..] 

오늘 나는 어깨를 드러내는 옷을 입었다. 한국인 특유의 살색 피부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먹물보다 더 깊은 느낌의 검은 색을 선택했고, 움직일 때마다 치맛자락이 살짝 감길 수 있는 소재의 드레스를 입어 어떤 면에서는 고상한 느낌도 든다. 나의 선택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모두들 만족스러워한다.  

[혹시 특별히 만나는 뱀파이어가 있나요?]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만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뱀파이어는 있죠] 

그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아쉬움을 담은 듯한 숨을 내쉬었다. 

[누군지 복이 넘치는군요]
[글쎄요. 별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던데..] 

갑자기 그가 손을 잡았다.  

[그분이 당신을 몰라보는 거죠. 나라면..하하하] 

정원에 그의 웃음소리가 넘쳐흘렀다. 웨이터는 내 술잔을 가득 채워준 뒤 사라져 이 곳엔 우리 둘이 전부였다. 나는 조금씩 피어오르는 묘한 느낌을 날려버리고 싶어져 손을 살짝 뺀 후, 술잔을 들고 그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그가 선선히 응해 우리 둘은 누가 먼저할 것 없이 술 잔을 깨끗하게 비웠다. 술은 아까보다 더 쓰고 속을 태우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일로 이곳에 오신게 아니지요?]
[음..그건 기밀이라..] 

그는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며 몸을 의자에 기댔다. 속이 약간 울렁거리는 것 같아 의자 등받이에 상반신을 대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얼핏 눈에 들어오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반짝이는 별도 몇 개 보인다.  

[한 잔 더 할까요?]
[제가 가져오죠] 

그가 일어나 들어왔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의 모습이 나무들 사이로 사라지고 난 후, 나는 스승님과 그레고리를 생각했다. 스승님이 누군가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건 처음봤고, 나 역시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났다. 나를 그레고리의 작품이라고..그 경찰이 표현했었다. 그건 무슨 뜻일까? 당장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질문들을 생각하며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았다. 

[혼자 있나? 그는?] 

머리 속에 있던 그레고리의 쇠소리가 현실에서 들려와 깜짝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홀 안에요] 

어느새 내 앞으로 와 있는 그에게 최대한 짧게 대답했다. 그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건, 뱀파이어로서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의미라, 긴장하며 몸을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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