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왜 사라졌어요?]
[나와 파트너를 한 건 일종의 계약 같은 거니까..할 일 다 했다, 그거죠]
[계약?]
[여기 오려면 파트너는 필수니까]
[아...] 

그는 내가 마침내 웃었다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전 이런 파티는 처음인데, 좀 실망이에요. 뭐랄까..영화를 보면 멋지게 춤을 출 공간도 있고..내가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알죠?] 

그가 끄덕였다. 그리고는 내 손에 든 뷔폐용 포크를 건네받아 내려놓으면서 작게 속삭였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와 나는 동시에 웃었다. 

[무슨 일 하세요?]
[경찰입니다] 

내가 눈썹을 찡그리자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내가 격었던 악몽을 말하고 싶지 않아 대충 넘겨버렸다. 

[일이 마음에 드세요?]
[항상은 아니지만, 대체로는요] 

그는 슈트 안 쪽에서 작은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이지훈. 경감. 답변으로 나는 이름을 말해주었다.  

[어떤 일을 담당하시나요?]
[설명하려면 복잡하고 긴데..]
[그럼, 시원하게 바람 좀 쏘이면서 듣고 싶은데, 어떠세요? 이 안은 좀 답답하군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력이 좋다는 건 적당히 무시하고 집중을 해야한다는 뜻인데, 나는 초보 뱀파이어라 선별적 소리 집중이 아직 부족하다. 게다가 뷔페 음식이 있는 자리로 걸어올 때부터 그레고리의 눈길이 계속 따라다녀 불편했다. 그는 이 남자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면 분명 나에게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와 행동으로 징그럽게 굴었을 것이다.우리는 북적이는 인파를 피해가며 문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샐러드 접시를 들고, 그는 잔을 두 개 들고. 문을 나서자마자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공기가 확실히 다르네요] 

 뱀파이어들에게 공기란건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사람과 섞여 살아야하니 배우는 과목 중에 자연스럽게 숨을 넣었다 빼는 활동도 있다. 이런 걸 몇 년 동안 연습해서 이제는 공기를 폐에 넣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하다.  

[네. 정말 상쾌하군요] 

그도 나처럼 공기를 가득 머금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 관료의 집은 10여 개가 넘는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차장은 남쪽 제일 끝에 붙어 있어 아치문을 지나는 순간부터 정원이 펼쳐졌다. 제일 처음 마주한 정원의 이름이 여름인 걸 감안하면 나머지는 아마도 봄, 가을, 겨울일 것이다. 나는 홀만 있는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정면에 원뿔 모양으로 자리잡은 봄의 정원 쪽으로 갔다. 주황색 등이 건물에서부터 정원 입구까지 나란히 서 있어 검은 색의 나무 계단이 깔린 시작 지점을 바로 확인했다. 그 양 옆으로는 들꽃 정원과 장식 정원이라는 푯말이 예쁜 글씨로 써 있어 호기심을 자아냈다. 

[어디로 갈까요?]
[음..앉아 있을 만한게 있는 곳이요] 

그는 잠시동안 양쪽 정원을 바라보다가 들꽃 정원에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고 대답했다. 나도 그가 바라보는 곳을 쳐다봤지만 들꽃 정원 입구에 무성한 나무들 때문에 안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는 어떻게 그곳에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지 아는 걸까? 

[제가 시력이 뛰어납니다] 

내 표정을 보고는 먼저 대답을 했다. 

[그래요?] 

여전히 미심쩍은 느낌이 들어 눈썹을 살짝 올렸다. 

[제가 하는 일이 뭐냐고 물었던 질문에 대해 답을 들으시면 다 이해가 될 겁니다. 지금 말할까요? 아니면 앉아서?] 

나는 말 없이 먼저 들꽃 정원 입구로 걸어들어갔다. 해가 없는 밤인데도 나무들 사이에는 흰색 등이 환하게 켜져 있어 꽃들이 낮처럼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노란색의 꽃 사이에는 토피어리가 다람쥐 모양으로 도토리를 까먹으며 서 있고, 반대편에는 격자로 잘 가꾸어진 초록색의 낮은 덤풀 사이로 붉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색의 조화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몇 계단쯤 낮게 지면을 파 분수를 만들어두었다. 바로 그 앞에 그가 말하던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가 먼저 테이블에 다가가 잔을 놓고는 내 접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의자를 빼주었다.  

[저는 RRS라는 팀에서 일합니다.]
[RRS?]
[네. 특기를 가진 경찰들로 구성된 팀이죠] 

그는 약간 자랑스러워하는 느낌을 담아 말했다. 

[특기?]
[예를 들면 저는 시력이 아가씨의 10배쯤 되죠. 투시 능력도 조금 있구요] 

그가 준 잔은 약한 샴페인으로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톡톡 거품이 터졌다. 살짝 여운을 남기는 맛을 즐기며 그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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