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이가 재미있는 말을 해서]
[그래? 나도 끼워줘, 같이 웃자]
[파트너는 어떻게 하고?]
[저~기] 


턱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 몇 몇의 남자들이 잔을 들고 담소를 나누는 게 보였다. 저 모습이 바로 영화에서 보던 외국식 파티 장면이다. 다른 때 같으면 배우를 바라보는 팬처럼 구경을 하겠지만, 바로 앞에 섹시함을 폴폴 풍기며 친근하게 말을 거는 여자가 있으니 눈길을 바로 돌렸다.  

[시영씨라고 했죠? 지난번에 본 거랑은..엄청 다르네요. 아주..예뻐요]
[감사합니다. 제이씨도 굉장하신데요. 여기서 제일 아름다운신 것 같아요] 

그녀가 위아래로 훑어보며 하는 칭찬에 나도 친철하게 답을 했다. 남자들이란 예나 지금이나 멍청하게도 여자들의 칭찬이 진심인 줄 안다. 스승님은 다정하게 말을 주고 받는 우리 둘을 번갈아보며 즐거워했다. 나는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정체불명의 초록색 액체를 한 입 마셨다. 첫 느낌은 수박물 같고 뒷 맛은 시큼한 레몬네이드를 모방해 상당히 기묘한 음료다. 정말 무알콜인게 확실한지 다마셨지만 취기는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잠깐 보다가 바텐더에게 한 잔 더 달라고 요청했다.  

홀은 어느새 뱀파이어들로 가득찼고, 어디선가 분위기를 띄워주는 현악기의 음이 부드럽게 들렸다. 말 소리도 그에 맞쳐 작지만, 특별히 귀 귀울여 들을만큼 재미있는 대화가 없었다. 요즘 인간들과 살기에 무엇이 불편하지, 뱀파이어 정부가 어떻게 해주길 바란다는 식의 정치적인 토론을 하기도 하고, 몇 몇의 여자들은 서로의 옷을 칭찬하며 뱀파이어 뱀화점의 봄 정기세일에 함께 가자는 시시껄렁한 말들을 주고 받았다. 문제는 이 곳에 내가 아는 이가 스승님과 제이라는 여자 뿐이니 수다를 떨 상대가 없어 이내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저..음식 좀 가져올께요]
[내가 가져다 줄게]
[아니에요. 뭐가 있나 구경하고 담아올께요. 최대한 빨리 올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죠?]
[어린 애도 아닌데 음식 가지러 가는 게 뭐 어렵다고..보내줘] 

얄미운 말로 거드는 제이에게 씩 웃어보였다.  

[네. 전 다 자란 여성이죠] 

스승님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에 가지 말고 바로 오라는 부모같은 당부와 함께. 나는 몇 몇의 뱀파이어들을 지나쳐 걸어가다가 살짝 뒤돌아보았다. 약간 떨어져서 보면 객관적인 사실을 볼 수 있는 법이라, 그들이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게 느껴졌다. 스승님은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간간히 움직이며 웃고 있고, 그의 팔을 툭툭 치며 친근하게 행동하는 여자는 몸매가 아름답고 피부도 황금빛이다. 그에비해 나는 키가 작고 그닥 내세울 것 없어 나보다야 백배 그림같다. 그런 사실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과 인정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의 문제라 뷔폐 음식이 놓여있는 자리에 도착할 무렵엔 화가 나, 포크로 쿡쿡 찍어 담는 내 포즈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래서야 어디 깨지겠어요? 좀 더 쎄게 해야지..] 

장난기어린 음성이 바로 옆에서 들려 고개를 돌렸다. 나보다 머리하나 쯤 더 큰 남자가 웃으며 서 있었다. 옅은 갈색 머리와 고동색의 눈을 지녔고, 스승님보다는 약간 낮은 코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미남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상당히 호감가는 얼굴이다. 

[그냥 좀 기분이 별로라서요. 포크 드릴까요?] 

과일을 담던 뷔폐용 포크를 건네주려고 하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그렇게 필요하진 않은데..말을 걸어보려고 한거랍니다]
[저한테요?]
[네. 아가씨요]
[같이 오신 여자분이 기분 나쁠거에요]
[음..어디로 갔더라..] 

그는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그 여자를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사라졌네요. 버림 받은거니까 기분 별로여야 하는거겠죠?]
[당연히 그래야죠]
[아가씨의 파트너분은요?]
[글세..어디에 있더라..] 

뭔가 모르게 대화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했던 동작과 말을 따라했다.  

[하여간 저기쯤에서 아주 예쁜 여자와 이야기중이에요]
[흠..최소한 어디에 있는지 안다는 점에선 나보단 나은 편이군요] 

다른 때 같으면 내 성격상 처음보는 사람과 이렇게 오래 이야기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그게 된다. 사실, 누구래도 제이보다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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