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스더에요. 들어가도 되나요?] 

10여분 쯤 후에, 열린 창문가에서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푸른 색으로 반짝이는 흰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가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손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저녁이 되자마자 왔었는데 안 계셔서..다시 왔어요]
[아..그랬구나] 

수줍은 듯 침대가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은 에스더는 빨간 눈을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방해하는 건 아니죠?]
[전혀 아니야. 와줘서 굉장히 기뻐] 

토끼였을 때보다 더 하얗고 탐스런 피부가 붉게 물들며 고개를 숙이는 게 귀여워 살짝 껴안았다.  

[이젠 혼자 변신하는 구나]
[아니에요. 아까는 토끼였는데..갑자기 이렇게 되버렸어요]
[그래? 언제쯤?]
[음음..2시간 전인가..그 쯤이요] 

아마 내가 도로에서 사라저버린 과거와 대면하고 있을 때인 것 같다. 나의 격한 감정이 프릭스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틀림없다.  

[고양이도 변했겠다]
[네. 우리 둘이 이야기 하고 있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는 어디있어?]
[대장에게 할 말이 있다고 남았어요] 

앞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혀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위험한 상황에 부딛혔을 때 프릭스들이 나 때문에 갑자기 사람으로 변한다면 죽음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될테니까. 내가 마타로서의 삶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그들은 내 책임이고 한편으로 내 식구이다. 스승님과 아줌마처럼. 

[대장님이 화가 났어요]
[왜?]
[제가 회의를 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해서요]
[넌 선택할 자격이 있잖아]
[우리는 집단으로 생활하고 있고, 지금도 전 그 곳에 속해있어요. 먹고 마시는 일상적인 활동 이외에는 회의를 거쳐 결정해야 하는데, 제가 규율을 어겼으니까요. 대장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한거에요] 

[그가 하지 말라고 했니?] 

에스더가 내 뜻을 받아들이기 전에 뒤돌아보았을 때, 내 머릿속에 특별히 들려오는 반대의 말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자리가 워낙 시끄러워 정확히 기억하는 게 아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어요. 그건 유보라는 뜻이에요]
[유보라..넌 왜 회의를 하지 않고 바로 결정했어?]
[절 믿어주시는 걸 느껴서요]
[나는 니가 생각하는 것 만큼 강하거나 능력이 대단하지 않아. 대장은 그걸 안 거지] 

에스더의 따뜻한 손이 내 손 위에 올라왔다. 그녀의 눈은 이 이상더 커질 수 없다고 할 만큼 동그랗게 떠진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소녀팬이 스타를 바라보는 열망 어린 눈이었다.  

[대장님이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마타님이 이 만큼을 살아오실 동안에 마주치셨을 위험한 순간들을 모두 이겨내신 걸 보면 누구보다 강해요. 게다가 뱀파이어의 피도 흐르니 불멸이잖아요] 

불멸.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생명. 뱀파이어가 아닌 모든 생물들은 우리를 그렇게 안다. 사실과 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내가 뱀파이어가 되면서 서약한 종이에는 뱀파이어의 진실에 대해 다른 종에게 알려서는 안된다고 했었다. 그것을 깨면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종족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스더의 눈은 열광적으로 믿고 있다고 말하니 서약서가 없더라도 굳이 진실을 말해 그녀를 기운 빠지게 하고 싶지 않다.  

[설마 너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건 아니지?]
[될 수 있다면..토끼보다는 백배 좋죠] 

그녀의 미소는 농담반 진담반이라고 알려주지만, 마음 한 구석은 자신의 나약하고 유한한 목숨이 가슴 아픈 듯하다.  

[혹시 집단에서 쫏겨나는 거 아니니?]
[글쎄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이런 경우는 제가 처음이니까요]
[그래, 어떻게 결론 나는지 꼭 알려줘] 

나는 스승님이 가져다 둔 파카글라스를 침대 옆 탁자에서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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