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있어?]
[응. 숲으로 좀 들어가면..]
[안내해줘. 그들을 만나보고 싶어]
내 말에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닥 내키지 않는 표정이지만, 내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고 말하자, 한숨을 쉬며 고양이로 변했다. 그는 창문을 넘어 풀밭으로 뛰어내렸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부드럽게 착지했다. 그는 몇 발 앞서가다가 나를 힐끔 돌아본 후, 집 뒤쪽으로 연결된 회색빛 숲 속으로 들어갔다. 봄이지만 밤의 숲은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종종 지나가 얇은 가디건 속으로 추위를 몰아넣었다. 팔을 비비며 그를 따라가자니 마타가 아니었다면 뱀파이어로서 부족하고 장애가 있다는 걸 이해받을 수 있는 변명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이 약하고, 삼차신경통이 있으며, 피를 입으로 마셔야한다는 사실에 마침내 면죄부를 줄 근거가 생겼건만, 기분은 사형대에 끌려가는 죄수 같았다. 뱀파이어가 될 때는 내 의지가 있었으나, 그 이후로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단 한 번도 물어보는 일 없이 주어지고 당했으니 그렇다.
[널 인형으로 취급하지 않을게, 약속할 수 있어]
작고 약한 목소리로 앞서가는 프릭스에게 말했다. 그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생각을 보내왔다.
[괜찮아. 너를 마타로 받아들일 때,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기로 결심했어. 죽어야한다면..그것도 할 거야]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스승님에 대한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마음에 미묘한 무언가가 쌓이고 있다. 단순히 그가 날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려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와 있을 때는 내가 어른으로써 뭔가를 결정하고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사람을 놓고 저울질 하는 나는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못났다. 고개가 바닥으로 수그려지며, 눈물이 조금씩 솟아올랐다.
[그런 생각 하지 마]
프릭스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여전히 앞서가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들을 듣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미안. 마음을 열어놓고 있으면 너의 생각들이 쏟아져들어와]
[앞으로는 귀 좀 막아. 들어도 아는 척 하지마]
나뭇잎을 발로 차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는 대답 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했다.
회색빛 숲으로 들어온 이래, 빛은 손바닥만 한 점을 만드는 정도로만 바닥을 비쳐주었다. 커다란 나무들과 그들의 덩굴이 하늘을 얼기설기 엮어, 보름달의 정취도, 눈부신 빛도 숲을 이길 수 없었다. 그 안에는 밤에 움직이는 생물들의 기묘한 소리와 내가 밟은 나뭇잎들의 부셔지고 망가지는 울림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딘가 있을 을씨년스럽고, 싸늘한 공동묘지같아, 깊이 들어갈수록 발걸음이 느려졌다.
[누구?]
[누구지?]
[넌 누구야?]
탁 트인 광장에 들어섰을 때, 머릿속으로 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지러운 메아리들 때문인지, 삼차신경통이 더욱 거세져 눈 위쪽 부분을 망치로 두들기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