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고 있어?]
[응]
[지금 도망칠 꺼야. 따라와]  


프릭스에게 생각을 알려준 뒤 가능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나를 지키는 뱀파이어는 짜증스런 신음을 내다가, 휴대용 혈액병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부스럭거리다보니 내가 움직이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반대편으로 있는 힘껏 뛰어 숲으로 들어갔다. 몇 미터쯤 갔을 때, 창고 쪽에서 나를 찾는 소동이 났음을 프릭스가 알려주었다. 그와 나는 창고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울창한 지점쯤에서 마주쳤다.

[연기가 제법이었어]
[이런 일도 몇 번 겪으면 별 거 아니거든]  


나는 허리를 꺾으며 프릭스에게 대답했다. 요 근래 들어 누구의 도움 없이 내 몸을 지킨 게 처음이니 좀 뻐긴들 어떠냐..하는 마음이었다.

[스승님에게 빨리 알려야 돼. 이대로 끝날 리가 없잖아]

나보다 조금 앞서 걸어가던 프릭스는 뭔가 생각하는 듯 대답이 없었다. 내가 툭 치자 그제야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그들이 널 창고로 데려올 것 같아 먼저 와 있었는데, 지난번에 내가 깨트린 창문이 그대로여서 안을 들여다봤어. 생각보다 아기들이 많아진 게 본격적으로 블러디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것 같더라]
[스승님께서 알아보시겠다고 하셨는데..]

 

프릭스가 갑자기 멈쳐섰다. 그는 고양이의 모습이지만 마치 앞발로 팔짱을 끼려는 듯 서로 교차했다. 눈빛도 약간 거칠어져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넌 모든 거에 스승님, 스승님이냐?]

나는 부드러운 앞발에 손을 올리며 아이를 달래는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했다.

[둘이 그곳으로 돌아간들, 뭘 할 수 있겠니? 한 두 명 정도 운 좋게 데리고 나온다쳐도 그 다음엔? 차라리 지원군을 많이 데려가는 게 아기들에게 좋지 않을까? 이렇게 의견다툼을 하고 있을 때에도, 아기들은 죽어가고 있을 거야]

내 말에 아무 대꾸가 없어, 프릭스가 고집을 부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크르르르..소리를 내며 왼쪽 편으로 고개를 바짝 들었다. 그의 행동에서 그들이 따라온 것이라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있는 바위 주변으로는 가지가 많은 나무들이 꼿꼿이 서 있는데. 바람이 부는 것처럼 스르르 흔들렸다. 나 혼자 있었다면 당연히 바람이 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고양이인 프릭스는 나보다 더 예민해 그것이 생물체의 움직임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들이 온거야?]
[아니. 다른 동물이야. 소리 내지 말고 움직일 수 있어?]
[노력해볼께]
[나무 위로 올라가]
[너는?]
[곧 갈 꺼야. 혹시라도..내가 못 올라가면 넌 바로 도망가]

 

나는 그럴 수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는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앞발로 나를 밀었다. 내가 앉아 있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나무 위로 올라가자마자, 나뭇잎이 조금씩 흔들리는 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프릭스와는 대각선 방향으로 얼룩덜룩한 갈색의 무엇인가가 있었다. 프릭스에게 위치를 알려주자 그는 그 방향으로 이를 드러내며 전투 준비를 했다.

갈색의 생물체는 공포를 조장하는 방법을 잘 아는 것 같았다. 자신이 그 곳에 있다는 건 알려주되,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없도록 몸은 숨기고 위협만 하니 대략적인 나뭇잎의 흔들림으로 크기를 짐작할 뿐이다. 게다가 간간히 들려오는 낮은 소리는 결코 작은 동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프릭스는 고양이의 모습이라 전투에 적합하지 않고, 싸울 기술이나 능력도 그닥 대단한 편이 아니다. 그저 나를 지키기 위해 무작정 덤비는 정도니 만약 상대가 엄청난 힘이나 능력이 있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나는 그가 바라는 대로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아까는 스스로 도망치긴 했지만, 그는 나를 구하기 위해 이 곳까지 와주었고, 지금도 내가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려고 또다시 목숨을 내놓았으니 이대로 내가 사라진다면 앞으로 그를 볼 면목이 없어진다.

크르르르...

위협 소리와 함께 나뭇잎이 샤샤샥 거리며 갈라졌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레스 2010-09-2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왔! 나왔다! 하고 보는 순간... 다시 엄청 긴장되는 순간에 끝났습니다. ㅎ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