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뱀파이어에게 당한 사람들을 몇 명 보다보니까 공통점이 그거야. 독으로 마무리를 하지 않아서 대량 출혈이 발생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점. 어쩌면 일전에 내가 본 남자 역시 그 뱀파이어에게 당한 걸지도 몰라]

[비슷한 상태의 뱀파이어일 수도 있어]

[그래. 하여간..그들이 그를 끌고 간 걸 보면 아는 사이란 뜻이야. 뭔가 이상한 상황이 맞지?]

눈 앞의 숲이 어둠을 따라 점점 검은 색으로 변해가며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들이 커지는 게 무서워 침을 삼켰다. 봄비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밤처럼 점점 짙어져 우산을 때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프릭스는 두 손으로 우산을 잡아 바르게 고정시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경찰은 내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믿고 있어. 누명을 벗지 않으면 그들은 또 나를 고문할 꺼야. 지금도 집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잖아]
[왜 너의 스승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스승님, 일하러 가셨어. 아마 이 상황을..모를거야]

****

그 놀라웠던 밤이 지나가고 다음날 눈을 뜨자, 스승님을 만나려고 재빠르게 내려왔는데, 이미 방이 비어있었다. 그 순간 기운이 빠져 주방으로 휘적휘적 걸어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또 일하러 가신거 맞죠? 얼마나 걸리신데요?]
[글쎄요. 별 말씀 없었어요]
[표정이..어땠어요?]
[표정요?] 

아줌마는 무슨 소리냐는 뜻으로 나를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별 달라 보이진 않던데..아가씨, 혹시 야단맞을 일 저지르신거에요?] 


그게 야단맞을 일이던가..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탁자에 박았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그냥 지쳐서..]
[아! 그리고 보니, 남기신 말씀이 있었네요]
[말씀? 뭔데요?]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두워지던 기분에 조금 희망이 돋아올랐다. 나가면서 나에게 말을 남긴 적이 없었기에, 역시나 그 밤이 특별했고 일어나자마자 나를 생각했다는 믿음이 생겼다.

[돌아올 때까지 사고치지 말고 집을 지킬 것..이라고요]
 

다시 탁자에 엎드렸다. 평소와 똑같은 스승님이 미워졌다.

[식사하셔야죠?]
[네]

그가 돌아오면 다시 물어봐야겠다는 결정을 했고, 그러려면 적어도 살아있어야 하니 끔찍하게 싫어진 피라도 열심히 먹어서 건강해져야한다. 아줌마가 어제 사온 신선한 피라는 자랑을 하며 찰랑찰랑하게 부어주는 모습을 찡그리며 바라보다가 숨을 참고 한 입에 털어넣었다.


*******

[내 말 듣고 있니?]

스승님에 대해 되짚어보느라 프릭스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미안..]
[너 아직도 회복이 덜 된 것 같은데..다시 누울래?]
[아니야. 괜찮아. 그냥..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

프릭스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의 따뜻한 온기가 부담스러워져 손을 빼려고 하자, 그는 더 강하게 당겨 나를 살짝 안았다. 그가 들고 있던 파란 우산이 정원 안으로 떨어지자, 바람을 잔뜩 업어 더 날카로워진 비가 내 몸 구석구석을 휘감으며 지나갔다. 그의 입술이 내 귓가에 다가오며 낮은 목소리가 걱정하는 말을 건냈다.

[내가 거칠게 행동해서 많이 아팠지?]
[아니야, 니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 고마워]

전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손으로 내 허리를 살짝 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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