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의 제자로서 말이죠]

중얼거리듯 내뱉은 후,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뺨을 타고 옷 위로 뚝뚝 떨어졌다. 또다시 내 마음이 거부당하는 걸 버틸 힘이 지금은 없었다. 지치고 힘들어 이대로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것만이라면..이렇게 애쓰지 않겠지]
[제 마음을 부담스러워하시는 거 다 알아요. 아줌마와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요]
[때로는..변하는 것들도 있어]
[절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그러실 필요 없어요]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너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인생이 항상 계획대로 가는 건 아니야]
 

묘한 말과 함께 눈물로 젓은 나의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턱을 지나 뺨을 훑고 눈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살포시 내 입술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 움직임을 따라 조금씩 수면으로 떠오르는 야릇한 느낌에 슬픔과 고통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얼마나 지났을까..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에 내려앉았다. 마치 깃털 한 개가 입술을 건드리다가 얼마나 잘 익었는지 살짝 눌러보는 것처럼 그의 염탐이 느껴졌다. 발끝부터 밀려 올라오는 기쁨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열고 그를 반겼다. 그의 향기가 입안에 감겨들자, 본능이 이끌어내는 신음 소리가 목 안에서 그에게 던져졌다. 동시에 매섭게 밀려오는 흥분에 살짝 몸을 떨었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팔로 내려와 어루만져주었다.

[제가..만약에..더 통제능력을 상실하면..제발 스승님이 없애주세요]

그는 슬픔에 복받혀 울먹이며 말하는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가슴은 나처럼 빠르게 뛰진 않지만, 나로 인해 긴장한 듯, 어색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내가 지켜 줄 테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넌 아직 어린 뱀파이어일 뿐이야]

내 눈물이 그의 옷을 적실동안, 내가 소리 죽여 흐느낄 동안, 스승님은 말없이 등을 쓸어주었다. 

[컵 주세요]

나는 눈을 감고 컵을 받아들었다. 언제나처럼 고약하지만 너무나 달콤하고 맛있는 피가 목구멍을 통과했다. 그것이 위를 지나가는 순간 혈압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눈앞의 검은 장막이 사라져갔다. 아스라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눈이 완전히 회복됐을 때 스승님이 방을 나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몸은 어때?]
[괜찮아. 난 불사신 뱀파이어잖아]
[장애 소녀겠지]
[너!]
 

정원 앞에 서 있는데 사람으로 변신한 프릭스가 다가왔다. 그는 잘자라는 인사를 하고 다음날 별 일 없이 아침을 맞이한 친구처럼 편하게 말했다. 나 역시 그런 행동이 고마워 그의 장난에 주먹을 보여주며 응수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 소리로 웃은 후, 프릭스는 들고 온 파란 우산을 펴 나를 감싸주었다. 조금 전부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몸은 젖었지만 어제의 기억으로 기분이 한 결 나아진 상태다. 집 근처의 숲이 나부끼며 쓰르르 노래를 부르자 나 역시 작게 허밍이 나왔다. 프릭스는 말 없이 나의 멜로디를 감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같이 잡혀간 뱀파이어 기억나니?]
[응. 왜?]
[뭔가 이상해서..뱀파이어는 사람인 상태에서 처음으로 변신을 하고 나면, 신생아와 똑같아서 교육을 받아야해. 먹는 방법, 독을 사용하는 방법, 환각을 이용하는 방법 등등..그걸 모르면 인간들에게 들키던지, 뱀파이어 경찰에게 잡혀가서 죽어. 그런데 피를 빨았던 뱀파이어는 독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것 같았어]

내가 심각한 어조로 설명을 시작하자, 프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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