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까요?]

[뱀파이어는 재생이 뛰어나니까 조만간 깨어날 거야]

귀 속에 파리가 든 것처럼 윙윙거리면서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눈앞은 아직도 어둠이지만 귀는 그들이 프릭스와 스승님이라고 내게 알려주었다. 나는 밀려오는 두려움에 두 팔을 허공으로 뻗었다.

[어디 있어요?]

내 절박한 목소리를 들은 프릭스가 손을 잡았다. 그의 따뜻한 체온이 내 팔을 통해 가슴으로 전달되자 두려움이 조금 가라앉았다.

[뭐가 잘못된 거죠?]

[혈압이 올라오지 않아서 시신경이 마비된 상태야]

스승님은 프릭스의 질문에 대답하며 내 눈을 부드럽게 만졌다. 그의 차가운 손은 입가에 붙어있던 머리카락을 떼어주었다.

[내 말 들리지? 고개를 끄덕여봐라]

스승님의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따라 목을 움직였다. 보이지 않아도, 그를 느낄 수 있고, 그의 일부가 내 몸에 닿아있어 가파르게 올라가던 공포도 가라앉았다. 곧 내 입으로 피가 조금씩 들어왔다.

[다 마셔야 눈도 보이고 일어날 수 있다]

스승님은 내 목을 잡고 약간 들어올린 후, 입에 컵을 대주었다. 그 순간 꿈에서 본 창고의 장면이 생각나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시영이가 끔찍한 장면을 봤어요. 그래서 원하지 않는 거예요]

나는 거칠게 스승님을 밀었다.

[거실에서 잠시만 기다려라]

그는 스승님의 말에 내 손등을 토닥인 뒤 나갔다. 주변에서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자 방 안에 나와 스승님만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니?]

[혈액을 어떻게 만드는지 봤어요. 그들은..솥에다가 동물을 넣고 피를 짜냈어요]

그 때의 선홍색 피와 비명이 머리 속에서 맴돌아 귀를 막고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고이면서 쓴 액체가 목구멍을 차고 올라와 입 안이 더러워졌다.

[그들은 공장처럼 피를 생산했어요. 수많은 동물과..아기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했어요]

[아기?]

[블러디 다이아몬드요]

방안이 고요해졌다. 나도 스승님도 말없이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피가 담긴 컵이 내 몸 근처에 있는지 특유의 향이 코로 전달되어 본능적인 배고픔과 이성적인 거부감이 동시에 떠올랐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감정들 때문에,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올라와 방안의 침묵을 깼다. 견딜 수 없는 본능을 누르려고 몸을 잔뜩 움츠리자, 스승님의 작은 한숨과 함께 탁자에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스승님이 어깨를 두드렸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볼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문득 달빛이 강해졌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환한 빛줄기와 함께 시원한 봄바람이 들어와 젓은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 코로 들어오는 향기에 손을 들어 맞은편의 스승님을 만져보니 그 역시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계속 아무것도 마시지 않으면 상태가 더 나빠질텐데..]

나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곧이어 그의 무겁고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시영아, 난..니가 오래도록 나와 함께 있길 바란다]

일전에 뱀파이어 경찰들에게 말했던 “내 사람”이란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또한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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