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머리 크기의 수갑은 그 순간 터져나갔고, 철장은 갑자기 커진 몸을 감당하지 못해 울룩불룩하다가 결국 거칠게 부셔졌다. 나는 잽싸게 철장을 빠져나와 입을 벌린 채 올려다보고 있는 검은 머리 뱀파이어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그는 뒤로 넘어지며 스테인레스 탁자에 머리를 부딪쳤다.
나는 검은 머리 뱀파이어의 몸을 밟고 탁자 위로 올라갔다. 갈색 머리 뱀파이어가 바로 뛰어올라 내 팔을 낚아채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나는 딱딱한 흙바닥에 허리를 부딪치며 근처에 있는 철장들 앞으로 굴러갔다. 내 가슴이 가장 아래에 놓인 철장에 부딪히자, 그 반동으로 높게 쌓인 철장들이 부르르 떨리다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 순간 최대의 힘을 발휘하여 몸을 탁자 밑으로 굴렸다. 바닥이 울리자 다른 벽에 있던 철장도 연쇄 반응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일부는 탁자 위로, 일부는 솥 쪽으로 떨어져 유리병이 깨졌다. 반짝거리는 유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는 호수처럼 바닥에 고여 낮은 지대 쪽으로 움직인다.
갈색 머리 뱀파이어가 짐승처럼 거칠게 표호하며 탁자를 들어올렸다. 탁자가 반대편으로 날아가 박힌 후, 나에게 세 명의 뱀파이어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본능은 위험을 감지하자 피가 고인 바닥 쪽으로 구르게 만든 후 고양이로 변신시켰다. 그들 셋은 내 몸이 사라지자 마자 머리와 팔 등을 서로 부딪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솥 위로 뛰어올라 창고에 유일하게 있는 창문으로 돌진했다. 창유리는 내 속도 때문에 박살 났고, 그 덕분에 창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뒤쫓아 따라오는 그들을 피하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은 뱀파이어 보다는 고양이에게 더 친숙하며, 숨을 곳 천지다. 그러나 내 몸에 가득 묻은 피가 그들을 인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흙 위로 몸을 굴렸다. 검은색 흙 위를 뒹굴며 최대한 많은 흙을 몸에 발랐다. 가슴쯤에서부터 풍기는 거북하고 강한 거름 냄새가 피의 향을 덮어 주리라 믿으며..
가장 심각한 문제가 그럭저럭 해결되자, 토굴을 생각해냈다. 근처를 살펴 나무 밑의 땅을 고른 후, 잽싸게 굴을 만들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 옆에 쌓아 논 흙을 발로 찼다. 흙은 무너져 내리며 침침한 어둠을 만들고 입구를 덮은 후 내 몸 위로 쏟아졌다. 그들이 근처에 왔는지 땅을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무섭게 다가왔다. 임시로 만든 굴은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흙이 조금씩 떨어졌다.
[어디로 간 거지?]
흙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는 텔레비전처럼 어눌하게 들렸다. 그들은 인공 굴에 매우 근접한 상태였으나 내가 땅 속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한 듯 다른 곳만 살피는 기척이 느껴졌다.
[너희 둘은 저쪽을 찾아라]
땅 위로 누군가가 다시 움직이는 듯한 진동이 다가오다가 이내 점점 멀어져갔다. 그들은 정확히 두 방향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내가 도망쳐 나온 창고로, 나머지는 서쪽으로. 마침내 발자국의 진동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들이 멀어지자 나는 긴장했던 근육을 풀고 한숨을 내쉈다. 곧바로 앞발로 흙을 파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숲 속의 밤만이 줄 수 있는 신선하고 축축한 공기가 코로 가득 들어왔다. 나는 이 향기를 몇 번 더 들이마신 뒤, 나머지 몸을 동굴에서 빼내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들의 기척을 살펴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마음이 놓이자, 눈을 감고 몸을 돌리며 내가 미리 맡아두었던 향기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황의 냄새와 개미집 냄새. 그들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이정표라 찾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코로 냄새를 찾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기 전에 느껴지는 습기 가득한 내음을 전혀 맡지 못했기에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어둠은 쏟아져 내리는 비에 뭉개지고 축축해져 보여 기분이 나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