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들면 꿈을 꾸는 일이 극히 드물고 내가 지금 꿈속에 있다는 사실 또한 모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고, 처음 보는 작은 공간에 묶여 있음을 알았다. 또한 머리 속이 아파오는 게 코로 들어오는 피의 향 때문이었다. 고개를 바짝 들고 앞을 보니 갈색 머리 뱀파이어가 커다란 솥 안으로 도마뱀들을 집어넣는 중이다.

[저 놈은 안 써요?]
[일단 그냥 둬]

옆에 서 있는 검은 머리 뱀파이어가 나를 가리켰다. 나는 이 꿈속에서 프릭스였다. 어떻게 이런 꿈이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이야기 해주지 못했던 나머지임에 틀림없다. 검은 머리 뱀파이어는 신호를 받자 무거운 뚜껑을 두 손으로 낑낑거리며 들어 솥 위에 올려놓았다. 다른 뱀파이어가 위로 뛰어올라 마개를 잠그는 것처럼 뚜껑을 쾅쾅 밟았다. 내 예민한 청각은 솥 안에 들어간 도마뱀이 비명을 지르며 발로 철을 긁는 걸 뇌에 전달해주었다. 이어 바로 옆 솥에는 거북이와 토끼들을 집어넣고 같은 행동을 취했다.

[유리병 가져와!]

갈색 머리 뱀파이어가 솥 아래에 달린 수도꼭지를 헝겊으로 닦으며 소리쳤다. 대기하고 있던 뱀파이어들은 스테인레스 쟁반에 유리병을 가득 담아와 수도꼭지 옆에 내려놓았다. 솥 위에 올라가있는 뱀파이어가 뚜껑에 달린 펌프를 누르자 갈색 머리 뱀파이어가 수도꼭지를 돌렸다. 붉은 선홍색의 피가 주르륵 쏟아졌다. 유리병에 4/5쯤 담기면 다음 유리병을 가져와 새로 받는 모습이 1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뱀파이어 상점에서 파는 생혈액이 바로 저것이었다. 내가 장애 수당으로 사다가 먹는 피. 그런 것들이 저렇게 만들어지다니..입에서 구역질 소리가 저절로 나오며 위액을 뱉었다.

[저 놈, 토하는데요. 피가 맛 없나?]

검은 머리 뱀파이어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살짝 고개를 돌려 확인한 갈색 머리 뱀파이어는 미소를 지었다.

[반은 사람이라 구역질이 나겠지]

나는 이 끔찍한 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몸에 채워진 수갑을 뺄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몸부림을 쳤다. 배 쪽의 얇은 털과 분홍색의 맨 살이 수갑에 쓸리며 피부가 벗겨져 피가 흘러내렸다. 쓰리고 아린 느낌은 이 더럽고 추한 곳에서 맡아야하는 피의 향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피까지 흘리네. 발작하나?]

검은 머리 뱀파이어가 내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꺄우뚱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입 안에 침을 가득 모아 그의 눈을 향해 뱉었다.

[윽..이 놈이..]

눈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내던 손이 철창 안으로 들어와 매섭게 얼굴을 강타했다. 그 반동으로 갈색 머리 뱀파이어의 피가 떨어져 있는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원하지 않았지만 뱀파이어의 피가 입술에 묻었다. 순간 지독하게 더러운 냄새가 목구멍을 통과해 위와 장으로 들이쳤다. 몇 초 후, 그 냄새가 도화선이 되어 내장이 뻥 터지는 듯한 느낌이 온 몸으로 퍼지며 갑자기 사람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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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스 2010-09-1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수갑 찬 채로??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