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날, 스승님의 팔에 안겨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우울했다. 그토록 소원하던 미모도 사라졌으며, 가족에게 돌아갈 희망도 뱀파이어가 되면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자 죽기 위해 몸부림쳤었다. 그는 그런 나에게 자신과 함께 살자고, 살면서 모든 게 나아지면 가족을 보러 가자고 약속했다.
[물론 예전처럼 살 수는 없어. 너는 뱀파이어고 그들은 사람이니까. 대신 멀리서 지켜주자. 잘 지낼 수 있게 돌봐주는 일도 보람 있을거다]
스승님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손가락을 걸었다.
[정말 가족을 지켜줄 수 있어요?]
[지금도 가능해,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그 때가 뱀파이어가 된 후 처음으로 피를 마신 날이다. 지금의 심정이라면 그 때 죽었어야 했는데..살아서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 미치겠다.
[그럼 널 찾아온 나는?]
프릭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은거야?]
[괜찮지 않아. 기분이 나쁘다, 너 때문에]
[어디 있어?]
혹시라도 같은 방에 있는 건가 싶어 문 주변부터 책상 구석까지 모두 보았지만 그는 없었다.
[글쎄..여기가 누구 방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아늑하네. 침대도 부드럽고..]
[아~그 방이구나]
그가 말한 대로 침대가 매우 좋은 그 곳은 스승님의 동료가 묵던 방이다. 이름은 모르지만 취향으로 보아 여자가 틀림없다. 물어보고 싶어도 절대 입도 뻥긋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준 아줌마 때문에 스승님이 없을 때 들어가 보는 정도가 다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 쪽은 깨끗이 청소되었지만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던 문은 뻥 뚫려 마음만 먹으면 밖에서 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휑했다. 프릭스가 있는 방으로 가려면 거실과 주방을 지나가야하는데 슬쩍 곁눈질을 해보니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싸운 흔적도, 부셔진 물건도 전혀 없어 아줌마가 쉬지도 못하고 청소했음을 알았다. 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복도를 지나 프릭스가 있는 방문을 열었다. 그 방은 대낮이면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와 뱀파이어가 아닌 이들에게만 제공할 수 있는 곳으로 아줌마가 가꾼 예쁜 정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방문을 열자 정면의 커다란 창문이 활짝 열려 있고 창가에 프릭스가 붕대를 감은 고양이 모습으로 밖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은색 보름달이 가득 내려오는 풍경은 검은 창문틀을 프레임으로 하여 그려진 유명 화가의 작품 같았다. 그 안에 오직 살아 움직이는 건 파란 색의 눈을 가진 고양이가 전부다. 그는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도 한동안 밖을 바라볼 뿐 나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잠시 문가에 서 있다가 멋쩍은 표정으로 그의 옆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