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나를 알아보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의 등 뒤로 몸을 감춘 채 얼굴만 살짝 내밀어 그들을 한명씩 살폈다. 제일 먼저 내린 남자는 스승님께 격식을 갖춰 인사했지만, 나를 때린 남자와 나머지는 고개만 까딱했다. 스승은 어느 누구에게도 아는 체 하지 않고 피가 묻어 있는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들은 허리를 굽혀 핏자국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아는 놈인가?]
[검사를 해봐야 확실하겠지만..현재로는 데이터에 없는 맛입니다]

스승에게 깍듯한 남자는 셋 중에서 키가 제일 작지만 와이셔츠가 터질 것 같은 다부진 몸매를 지녔다. 그는 작고 뭉툭한 손가락에 뭍은 피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대답에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나를 때렸던 남자에게 원하든 원치 않던 온 신경이 곤두서있는데, 그가 한 발짝 다가섰다. 본능적으로 놀란 내 몸이 뒤로 물러났다. 내 반응에 그가 미소를 지었다.

[겁주지 말아. 내 사람이야]
[흠..그런가요? 이런 꼬맹이가?]
[언제부터 제자를 키우셨습니까?]

내 사람..스승님의 제자라는 뜻인 걸 대화를 통해 알았지만, 그래도 단어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스승님 꺼고, 스승님은 내 꺼라는..나도 모르게 히죽 히죽 웃음이 나오려고 해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수사에 필요하니 경찰서에 데려가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일어나는 강력범죄의 유력한..]
[지금?]

스승님은 눈썹을 바짝 올리며 말을 끊어버렸다. 불쾌함을 온 몸으로 나타내자, 남자는 입술을 축인 후 대답했다.

[그러면 좋죠]
[내일 나와 함께 갈 테니 기다려주면 좋겠군. 보시다시피 자네에게 맞아서 몸이 안 좋아. 지금도 무서워하잖아]

스승님은 내 손을 잡았다. 검은 구두의 남자는 잠시 스승을 바라보다가 그러시라는 말과 함께 차로 돌아갔다.

[결과 나오면 알려줘]
[네, 먼저 가보겠습니다]

스승님께 깍듯한 남자가 운전석에 앉자 나머지 남자가 손에 뭍은 피를 납작한 플라스틱에 묻히더니 형광 케이스에 넣고 차에 올라탔다. 검은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 손을 잡고 있던 스승님은 그제야 놓으며 말했다.

[집에 갈까?]

나는 스승님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가 왼쪽 눈썹을 올려 갈매기 모양을 만들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서워서요]

내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는 모르나, 스승님은 뿌리치지 않았고, 집에 도착해 아줌마가 요란하게 맞아 줄때까지 잡아주셨다.





스승님께 혈액을 하나 얻어 허기를 면한 후 침대에 들어갔다. 얼마 뒤 눈을 뜨자 잠이 들었었는지 어느새 몇 시간이 지나있었다. 천장에 붙여둔 볼록한 해바라기들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일을 되짚어보았다. 프릭스를 알게됐고, 그가 갑자기 실종되었고, 보고 싶지 않은 뱀파이어와 대면했다. 아..텔레파시가 빠졌다. 스승님은 내가 그와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을 때 비밀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1층으로 연결된 나무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데 아줌마와 스승님의 대화가 들렸다.

[세상에..프릭스라니..제가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몰랐네요. 보통 고양이처럼 아가씨를 어찌나 따르는지..말씀 안 해주셨으면 상상도 못 했을거에요. 근데..지금 바로 나가실 건가요?]
[그래야지]
[아가씨가 깨시면 실망하실 텐데..]

나는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 내 기척이 들리면 스승님의 말이 끊어질 것 같아서. 그는 나보다 아줌마에게 더 많은 말을 한다는 걸 알기에 조용히 그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실망하던가?]
[그럼요. 아가씨가 왜 창문을 열어두시는지 아시면서..]

아줌마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 내가 열린 창문을 통해 스승님이 돌아오시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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