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이 잡듯이 뒤져도 냄새만 머리가 울리도록 느껴질 뿐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와의 교신도 끊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승님께 도움을 청하는 게 다다. 

나무에서 내려와 재빠르게 뛰어 주민자치센터로 돌아갔다. 현관문을 소리 나게 열어젖힌 후 아까 그 아름다운 안내 아가씨에게서 휴대폰을 빌렸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라] 

그 아가씨의 눈치를 보며 소곤소곤 말하니 안 듣는 척 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를 의식해 나는 꼭 해야 할 말 몇 마디만 했고, 스승님은 내가 혼자 움직이면 위험하다며 기다리라고 말한 뒤 끊었다.  

[커피 한 잔 줄까요?] 

내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복도를 왔다 갔다 하자 그녀가 다가와 부드럽게 말했다. 

[물 좀 주세요] 

그녀는 뱀파이어 중에서도 우아함을 무기로 하는지 바람을 일으키며 탕비실에 다녀왔는데도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저런 사소한 게 눈에 들어오다니..나는 정말 구제불능이다. 한 숨을 쉬며 그녀가 건네준 물을  마셨다. 

[브라이언이 온데요?]
[누구요? 브..뭐?]
[참, 여긴 한국이지. 뭐라고 하더라..하여간 머리가 약간 웨이브지고, 눈 크고, 코 오똑한..]
[아~스승님! 왜 궁금하신데요?]
[아는 사이라서..그냥..] 

그녀는 나와 대화 한 이래 최초로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혹시 스승님을 좋아하나? 그리고 보니 스승님을 브라이언이라고 불렀다. 

[브라이언이 스승님의 진짜 이름인가요?]
[뱀파이어는 이름이 많아요. 살아온 세월만큼 있다고 할까..]
[왜요?]
[한 곳에서 오래 살면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외모를 의심하니까 주기적으로 이사를 해요. 만약에 나라를 바꾸는 거면 이름도 그 나라에 맞게 바꿔야죠. 뭐, 간혹 죽어도 한 이름을 고수하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녀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스승님이었다. 머리가 바람에 흩날려 약간 붕 떴고, 헝클어졌지만 그 모습 역시 매력이 넘쳤다. 그녀도 그런 생각인지 나랑 표정이 비슷했다. 스승님은 그녀를 아는지 인사 한마디를 한 후 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녀가 현관문에 매달려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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