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사건  
 

 

[문제가 생겼어! 빨리 나와!]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할 그 놈이 내 머리 속으로 다급한 말을 전했다.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슨 문제라도?]
[아..아니요] 

번개처럼 휘갈겨 써서 종이를 다 매꾼 뒤 그의 손에 얹어주고는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간 후 버튼을 누르며 외쳤다. 

[장애 수당에 주민 수당까지 합쳐서 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안 그러면 굶어죽어요! 계좌이체 아시죠?] 

눈을 동그랗게 뜬 직원은 폭풍같이 몰아치는 내 말에 넋이 나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 가장 빠르다고 할 만한 속도로 현관문을 열고 주민자치센터를 빠져나왔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어 머리 속으로 어디 있는 거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풀 밭..나무 밑에..]
[어느 나무? 나무가 한두 개야? 똑바로 말해!]
[커다란 나무, 그 옆에 벤치가 있어]
[내가 들어갔던 건물에서 어느 쪽이야?]
[왼..쪽..조금..더..가면..] 

그의 말이 점점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뭔가 아주 잘못 된 것 같아 두려움이 솟아올랐다. 나는 건물에서 왼쪽으로 돌자마자 길을 빠르게 걸었다. 벤치와 인접해 있는 나무 주변을 눈으로 스캔하며 경보를 하듯 움직였다. 이렇게 나무와 벤치의 조합을 찾다보니 왜 그리 똑같은 게 많은지 속이 탄다. 그를 불러도 이제는 아무 대꾸가 없어 입 안의 침이 바짝 말랐다. 10 그루 정도를 지나자 넓은 풀밭이 나타났다. 그 주변으로 벤치와 커다란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아까 냄새가 지독하다고 짜증을 부렸던 그 향수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그가 이 주변 어딘가에 있다. 나는 손에 잔뜩 배인 땀을 청바지에 닦으며 풀밭 주변에 쳐진 줄을 넘어갔다. 

[들어가면 안 되는데..]  

공을 가지고 놀 던 아이 중 한 명이 중얼거리며 다가왔다. 옆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부모인지 벌떡 일어났지만 내가 노려보자 공포를 느끼고는 아이를 불러 다른 곳으로 갔다. 풀밭에선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 제법 큰 규모인데 이정도로 느껴지면 고양이로 변하기 전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많다.   

[야! 내 말 들려?] 

주변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많고 내가 뭐하나 멈춰 서서 보는 구경꾼까지 있어 머리 속으로만 외치려니 두통이 스멀스멀 잠식해온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두운 풀 밭에 왠 여자가 엎드려 움직이니 희한하다고 생각하는지 점차 멈추고 수군거리는 이들이 늘었다. 그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반대편까지 샅샅이 킁킁거리며 훑었다. 

내가 들어온 방향에서 왼쪽 끝부분에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가 두꺼운 가지를 축 늘어트리고 바람에 간간히 은행잎을 떨어뜨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밑에 있는 벤치에 내가 빌려준 백합무늬 파자마가 있었다. 두 손으로 집어 올리니 여기저기 찢겼다. 모양새로 보아 날카로운 손톱으로 박박 긁혔다. 벤치 아래에도, 나무 밑에도, 심지어는 나무 위에도 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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