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은 나를 집으로 데려와 살게 해준 뒤로 종종 집을 비웠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달까지. 그동안 나는 그가 준 혈액으로 버텼는데 어느 날부턴가 더 이상의 공급은 없다고 말했다. 이정도면 내가 적응을 잘 했으니까. 그는 부드럽고 나를 존중해주는 훌륭한 면이 있지만, 동시에 나를 험하고 비정한 세상에 떨어뜨려버리는 냉정함도 지녔다. 그러나 나는 갈 곳도 없고 매우 가난한 장애뱀파이어니 비굴하지만 그의 집에 계속 빌붙는 중이다. 이런 상태로 독립하면 일주일안에 굶어죽든, 물려죽든, 말뚝 박혀 죽든 반드시 죽을 테니까. 난 자존심 같은 건 애저녁에 버렸다.  

 

 몸 안에서 폭풍 같은 허기가 어지러움을 동반해 뇌 쪽으로 다시 몰려오자 오른쪽으로 걸어가 가로수 기둥에 몸을 기댔다. 배고픔을 잊으려 날카로운 손톱으로 가로수를 박박 긁자니 근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째려본다.  

 

펑-슈욱-펑-펑  

 

 허리를 수그리고 송곳니를 숨기려 입술을 깨무는데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사람들의 환호성과 들뜬 움직임. 요란한 밤이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불꽃이다. 조금만 덜 허기진다면 나도 즐길 수 있고, 방방 뛰며 소리쳤을 것이다.  

 

킁킁..킁킁..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난다. 흐릿하지만 혈액이 맞다. 나는 깜짝 놀라 허리를 펴고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레이더가 적의 출현 위치를 찾듯 코를 벌름거리며 가로수를 붙잡고 한바퀴 돌았다.  

 

[어디지?]  

 

 배고픔이 극에 달해가다보니 생체 레이더마저 가동이 느려졌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피 냄새가 점점 짙어져 몽유병 환자처럼 풀숲을 따라 걸어갔다. 사람들은 불꽃이 잘 보이는 쪽으로 모여 앉았기 때문에 허리께까지 오는 꽃과 나무들 속에는 바람을 동반한 어둠 뿐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나를 끌어당기는 이 향기는 누군가 중상으로 피를 흘리는 중이라는 판단이 들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공짜로 혈액을 섭취할 수 있다. 바닥에 흘렸든, 풀밭에 묻었든 상관없다. 고귀한 뱀파이어가 보면 땅바닥을 핥을 바에야 죽으라고 하겠지만 나는 먹을 것이다. 허기를 면할 때 까지만 피를 흘리게 둬야겠다. 나는 스승과 약속한 대로 송곳니를 박지 않았으니 먹어도 상관없을 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라고 중얼거리며 나무들 사이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뭐야..이거?]  

 

 생각대로 풀 숲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피를 제법 흘려 오른쪽 팔 주변의 풀들이 검게 물들었다. 나는 한 달음에 달려들다가 멈칫하며 주저앉았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인데 어둠 속에 맨살을 드러낸 목에서 출혈이 있었다. 동그란 두 개의 상처. 이건 뱀파이어의 소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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