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야철신
 


 

[야~이 놈아. 그거 당장 못 놔!

 

성큼성큼 다가가 발로 놈을 걷어차며 소리 질렀다. 요괴들은 동료라는 개념도 없는 것인지, 그 놈이 맞든 넘어지든 아무도 처다보지 않고 저 먹는 거에만 정신을 쏟는다. 어차피 요괴들이 이 놈을 도와주러 오지 않는다면 나도 봐주며 때릴 필요가 없다. 한 대, 두 대, 세 대..점점 늘어난다. 더불어 속도도 빨라지고, 내 흥분도 높아진다. 어느새 이 요괴 놈은 내 동료와 우리 민족을 죽인 상대편이 되어 나의 고통과 슬픔과 분노를 최고조에 달하게 만들었다. 

  

[죽어! 죽어! 죽어!] 

 

 

평소의 나를 보면 움직임도 둔하고, 남을 때리거나 피해를 입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은 귀신들린 놈 같다. 눈엔 핏발이 섯고, 팔은 덜덜 떨리며, 입에서는 쉴 세 없이 욕을 내밷고 있다. 내 어디에 이런 성격이 있었던 것일까.  

 

가슴팍에서 터져나오는 울분을 입 밖으로 포호하듯 내뱉으며 그 요괴 놈을 마구 짓밟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요괴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에 다리가 덜덜 떨이며 몸에 힘이 빠져 주저 앉았다. 옆을 쳐다보니 직공의 다리를 물어뜯던 요괴가 몸을 동그랗게 만채 떨고 있었다. 대항을 못하는 놈의 모습이 적군의 병사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처다보았다. 까마귀들이 넓디 넓은 공간을 빽빽이 덮어 검은 천을 보는 것 같다.  

 

나머지 요괴들은 까마귀가 하늘에서 울던, 내가 소리를 지르던 상관없이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우적우적 뼈를 씹어 먹고 있다. 그들이 재법 빨리 먹는 데도 시체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병사들의 시체가 많다. 예전에 어른들이 시체가 산을 이룬다는 말을 했는데 이제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절절히 느낀다. 나는 한 손으로 무기 직공의 시체를 질질 끌고 피의 웅덩이를 벗어나 풀 숲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나중에 다시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찾아온다고 해도 위치를 제대로 알 가능성이 없음을 알지만, 묻어주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다. 그것이 나를 위해 죽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누군가의 시체위에 꽂혀 있던 창과 적군의 무기들로 땅을 팠다. 한 뼘 한 뼘 깊숙히 들어가면서 나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 나약함이 싫고, 살아남은 걸 기뻐하는 이기심에 화가났기 때문이다.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만약에 무기직공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보았다면 그를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있었을까.  

 

오후가 저물어갈 무렵에야 내 번민과 함께 그의 시체를 묻고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었는데, 뒤에서 큰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시체를 두고 요괴들이 악다구니를 하며 싸우고 있었다. 나는 침을 뱉어 입 안의 고인 피를 버리고는 길을 나섰다. 가슴에 안은 새지의 긴 날개를 쓰다듬으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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