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야철신.

 

 

무기 직공의 뒤를 따라 남으로 뛴다. 턱이 숨에 차 옆구리가 결린다. 발을 내려다보니 언제 다쳤는지 피가 나와 흐른다. 그러나 대열에서의 이탈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살펴볼 여유가 없다.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는데 내 옆으로 병사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들도 나처럼 보통의 일을 하던 사람이었을 텐데도 나보다 잘 간다. 체력적인 차이인가보다. 겨우 고개를 하나 넘어갈 무렵에 앞에 가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렀다. 적이 매복했었던 모양이다. 앞과 뒤 모두 적이다.  


[엎드려!]  

 

 

갑자기 무기 직공이 나를 바닥으로 떠밀었다. 내가 얼굴을 흙바닥에 비비는 동시에 그가 내 위를 덮쳤다. 고통의 신음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에게로 전달되어 올려다보니,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그의 등에 박혀 있었다. 나를 떠밀지 않았다면..그것은 내 등이 목표였을 것이다. 충격이 온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그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뭐라 말을 하려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나에게 입을 열다가 옆으로 굴러 널부러졌다. 하나씩, 하나씩 병사들이 쓰러지고 피가 바닥에 고여 웅덩이가 생겼다. 말의 울음 소리와 칼을 휘두르는 소리, 비명과 고함이 가득했다. 살아남으려면 움직여야 하는데 나는 넘어진 채로 굳어 뻣뻣해졌다.   

 

 

나는 용감하지도, 씩씩하지도 못하다. 누구를 죽이지도 못하며, 도망가지도 못한다. 내 눈 앞에서 모두가 죽는 것을 보는 게 다일 뿐이다. 요괴를 그저 보기만 할 때와 다른 것이 없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살아있는 놈이 있는지 확인해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피로 붉어진 갑옷을 걸친 적국의 병사들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창과  칼로 이미 죽은 시체들을 다시 찌른다. 목을 참수한다. 사지를 절단한다. 이것이 전쟁의 진정한 모습이다. 죽은 자를 두 번 죽이는 것.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나를 죽이려는 병사 하나가 다가온다. 그와 마침내 눈이 마주쳤다. 붉은 눈. 광포한 표정. 흥분한 숨소리. 구역질이 올라오게 하는 피비린내. 머리 위로 들어올려진 칼.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 칼이 내 가슴을 향해 떨어진다.    

 

 

나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아는 순간 정신줄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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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하늘하나 2010-01-30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점점 재미있어지네요. 다음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