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사~개 사~]

  다시 복날이 왔다. 도토리묵 장수가 올 해도 개를 사고파는 걸 보니 학마을에 온지 어느새 1년이 되었음이 실감난다. 복 날의 공포에서 비껴간 장군이는 더 늠름해졌지만 여전히 수로에 빠져 나의 구조를 기다린다. 이 상황에서 예전에 비해 좋아진 건 예쁜이와 새끼들이 먼저 알려주러 온다는 사실이다.

[그 분..또 안와요?]

  봄에 내가 소백산에서 캐와 마당에 심어 놓은 야생화들을 쳐다보던 아내가 물어본다.

[오라고 해서 같이 저녁 먹을까?]
[지난번에 물고기 잡자고 했는데..]

  도토리묵 장수 이야기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우리의 고기 파티에 참가해 같이 먹은 날,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더니 아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무표정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아내는 싱글벙글이다.

[물고기?]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하던데요]

  지난해에 지진으로 마당에 생겼던 연못을 말한다. 그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는데 그럼 올해도 또 온다는 소린가보다.

[언제라고 말 안 해?]
[조만간 이라고만..]
[그럼 기다려봐. 약속 지키는 사람이니까 낚시가자고 할 거야]

  워낙이 도깨비불보다도 더 번쩍거리는 사람이니 우리가 잠자는 와중에 불쑥 올 수도 있다. 혹은 지금이라도.

  비가 며칠 째 내린다. 몇 해 동안 지리멸렬하게 조금씩만 와서 올해 부터는 더 이상 장마 예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기상청이 무색하게시리 대단한 비다. 그것도 올 해는 국지성 호우가 심하여 그저께 중부권에 시간당 300미리의 비가 올동안 여기는 화창했는데, 그 다음엔 장마 기단이 내려와 영주에 호우 경보가 발생했다. 방 안에 있기에는 덥고 습한데다 꿉꿉한 느낌이 들어 대청마루에서 비 구경 중이다.

[낚시 가시겠소?] 

  내 말처럼 도토리묵 장수는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손에는 수제 낚싯대 3개와 통을 들은 게 아내 뿐만 아니라 나도 데려갈 모양이다. 낚시는 아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조용히 사색 할 수 있다는 데, 나는 활동적인 스포츠가 더 좋아 같이 낚시를 간 적은 한 번 뿐이다. 그 때도 나는 수풀 속을 탐험하고 물고기 잡는 일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었다. 도토리묵 장수를 본 아내는 밝은 얼굴로 우비를 입고 따라나섰다. 그가 왜 안 움직이냐는 듯 쳐다보고 있어 나도 덩달아 갔다. 그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앞장섰다. 정확히는 아내가 떠드는 거지만 나는 신기해서 귀를 기울였다. 아내는 이곳에 내려온 뒤로 입을 여는 일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말을 해도 한 옥타브 낮은 목소리로 감정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웃고 떠드니 신기하다. 도토리묵 장수가 나에게 없는 무엇인가가 있어 아내를 바꾸어 놓은 듯해 고맙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다. 문득 일전에 너구리 아가씨가 풍년 기원 의식에 왔던 사람이랑 이야기 하던 걸 지켜보던 때가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 기분이 나빴다. 한 대 살짝 때려주고 싶기도 하여 술로 풀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려는 너구리 아가씨를 잡아 앉혔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아니다. 묘하기는 하지만 나쁘지는 않은 정도..딱 그것이다. 이제 내가 아내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보살펴주고 싶은 오빠이거나 부모, 혹은 동료이리라. 마음이라는 게 물처럼 흐르는 지, 지금 떠오르는 얼굴은 다른 사람이다. 다른 존재. 친구가 되겠다는 누군가.

[좀 흔들릴 테니 균형을 잘 잡으시게. 혹시 떨어지게 되면 잡아먹히지 않게 조심하고]

  어디를 가나 했더니 집 뒤의 저수지다. 그곳은 벚꽃이 만발할 때면 절경 중의 절경이지만 배를 띄울 정도의 깊이는 아니다. 그런데 벚나무에 줄을 맨 작은 배가 떠 있다. 비가 제법 거세서 그런지 출렁인다. 아내는 좋아서 냉큼 배 위로 뛰어 올랐다. 가을이면 갈치 낚시를 가자고 조르던 사람이니 이정도 흔들림에는 멀미도 안 하지만, 나는 올라서는 순간 구역질이 났다. 잘 먹은 저녁을 게워내고 있자니 아내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노래를 부른다. 낚시에 문외한인 나도 아는 한 가지는 물이 잔잔해야 고기가 잘 잡힌다는 사실이다. 과연 이 비에 잡힐 게 있나 싶은데 물 반, 고기 반인지 쑥쑥 잘도 올라온다. 도토리묵 장수와 아내는 번갈아 한 번씩 통에 담았다. 물고기 풍년이고 대박이다.  

[어어어...] 

  갑자기 배가 크게 휘청인다. 머리를 내밀고 토하던 나는 균형을 잃고 물속으로 빠졌다. 평소의 저수지라면 성인 남자의 가슴 정도의 깊이인데 아무리 발버둥을 처도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사람의 두려움이란 급격하게 자라는 성질이 있어서 나는 1초, 2초 시간이 흐를 수록 죽음의 공포를 맛보았다. 게다가 무엇인가가 내 발 주변을 맴도는 듯하더니 칭칭 감는 느낌과 함께 바닥으로 끌려들어간다.

[살려..살려..]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지만 점점 밑으로 내려가면서 숨도 차고 힘도 빠진다. 

[이봐..내 목소리 들려?] 

  눈을 크게 떠서 내 발을 잡아당기는 놈을 확인하던 찰라에 머릿 속으로 도토리묵 장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내 옆에 없는 걸 아는데도 공명을 하듯 말이 다가왔다. 숨이 턱까지 차는 걸 느끼며 발을 압박하는 이상하고 거대한 물고기를 두 손으로 잡았다. 좀 전에 잡은 은색 물고기가 20년 동안 자란 모습 같다. 길이도 내 키 만하다. 이 와중에도 뭐..이런게 다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손 놓으시게] 

  또다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어처구니 없지만 혹시나 그가 이 물고기로 변신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참을 수 없어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며 자연스럽게 손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입으로 물이 들어온다. 몸이 두둥실 흘러간다. 내 옆에 떠 있는 은색 물고기를 본 게 마지막으로 세상은 암흑으로 변했다. 

[어이~어이~] 

뺨이 아프다. 누군가가 있는 힘껏 치는지 맞을 때마다 몸이 흔들린다. 

[괜찮아요?] 

  아내의 목소리다. 눈을 떠보니 나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고 두 사람은 양 끝에서 내려다본다.  

[제가 죽은거 아니었나요?]  

[죽기는..잠이 들었었나보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내나 도토리묵 장수나 표정이 없어서 진위확인이 어려웠다. 하여 찜찜하지만 입을 다물고 배에서 내렸다.   

[혹시 지난번에 먹었던 그 물고기들인가요?]
[그렇지]

    비가 쏟아져 장작불을 지필 수 없어 부엌에서 프라이팬에 굽는 데 그는 팔짱을 끼고 구경한다. 다 구워진 물고기들을 접시에 담아 대청마루에 앉았다. 냄새를 맡았는지 어느새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장군이와 예쁜이에게 한 마리씩 주고 도토리묵 장수와 아내가 먹는다. 잠시 후 청산 할매가 왔었지만 그냥 돌아가셨다. 나는 막걸리 잔을 들고 아내가 맛있게 베어 무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개망초가 있으니 먹어도 괜찮아요]

  너구리 아가씨는 예전에 그렇게 말하며 용감하게 잘 먹었다. 맛있게 싹싹 베어 물고는 오물오물 씹어 꿀꺽 넘겼다. 지금 여기 있다면 아마 제일 좋아하면서 신나게 먹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마리 가져다주시게]

  그는 갑자기 자기 앞에 놓여있는 물고기를 밀었다. 내가 쳐다보자 웃으며 말한다. 그가 저렇게 부드러운 건 처음 본다.

[나누어 먹어야지, 이웃이랑]

  나는 두 사람에게 맛있게 먹으라고 말한 뒤 몇 마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길을 나섰다. 아내는 손까지 흔들어준다. 도토리묵 장수와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수로를 건넜다. 지난번처럼 동굴을 못 찾고 헤매다 그냥 오게 되면 그 곳에 두면 된다. 아마 냄새를 맡은 너구리 아가씨가 나와서 가져갈 것이다. 기왕이면 직접 주고 싶지만, 친구가 되자고 한 이후로는 어떤 얼굴로 보아야할지 모르겠다.

  일전에는 차를 타고 부석사에 가서 뜬 바위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 이후로 너구리 아가씨가 가르쳐준 지름길을 익혀두어서 이번에는 숲 속 길을 통해 동굴 근처까지 5분여 만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고 있어 칠흑처럼 어두운 탓에 전보다도 더 찾기가 어렵다. 후각이 발달한 동물도 아니니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 나무가 그 나무 같고, 그 길이 그 길 같다. 표식을 해두지 않은 게 안타깝다. 20분이 넘도록 근처를 헤맸는데도 동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비닐봉지를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식사가 모두 끝나 말끔히 정리되었고 아내도 자는지 건넌방은 어두웠다. 나는 우비를 걸어두고 대청마루에 앉았다. 내 몫으로 그릇에 담긴 물고기 한 마리가 노릇노릇하게 보인다. 배는 매우 고프지만 거대한 물고기와의 기분 나쁜 기억 때문에 참고 자기로 했다. 방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누웠다. 문풍지를 떼어낸 창문이 바람에 흔들린다. 하늘엔 검은 구름이 가득하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창밖을 잠시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자요?]
[아니. 왜?]
[배가 너무 아파서..]

  얼마가 지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아내가 배앓이를 호소했다. 나는 우비를 건네주며 그릇을 가지고 나무 밑으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아내는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는지 가만히 서 있었다. 다시 그녀에게 지난번에 내가 겪은 일을 말해주고 참으면 점점 더 아프다고 충고했다. 그래도 아내는 가지 않고 구급상자에서 활명수를 찾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가장 어두운 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이제..어떻게 해야 되요?]

  방 안의 불빛이 대청마루까지 비쳐 그릇 속에서 팔딱이는 은빛 물고기들이 보였다. 나는 저수지에 가서 놓아주었다. 아내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나를 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아마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에 느꼈던 생각과 감정들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아내의 몫이다.  

  아침이 되자 비가 그쳤다. 이래저래 피곤했는지 울산댁네 장 닭의 기상 소리를 못 들었다. 책상 위의 시계가 10시를 가리키는 걸 보고 대청마루로 나오니 아내가 쟁반을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고구마와 도토리묵, 그리고 개망초의 어린잎을 말린 게 있었다. 너구리 아가씨가 와서 주고 갔다고 한다. 물고기 잘 먹었다고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나는 가라앉은 기분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안 먹어요?]
[응]

  아내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듯 고구마와 도토리묵을 먹는다. 말라 색이 연해지고 비틀어진 개망초의 어린 잎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녀가 수로 너머에 서서 나를 부를 것만 같다. 나는 아무도 서 있는 앉는 곳을 잠시 바라보다가 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누웠다. 손에는 개망초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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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윤 2009-10-0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진 때 생긴 연못이 참 부러웠는데..저수지 안에 생겼으면 눈에 안 뜨이니 아깝네요..

happy 2009-10-01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서..이 밤에 들어왔습니다^^; 마지막이 묘하게 여운이 남습니다..개망초를 든 권선생..추석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