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는 마을마다 상여를 모아두는 곳이 있었다. 학마을은 그곳을 “상엿집”이라고 불렀다. 밭이 모여 있는 한 가운데에 간이 건물로 지어놨다. 누군가의 집에 초상이 나지 않으면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 하나 없어 들여다볼 수 없는 형태이다 보니 아이들은 그곳이 열리기를 학수고대했다. 우리 아버지의 관을 덮은 꽃상여 역시 그 곳에 보관되었다. 지금은 더 이상 마을 안에서 초상을 치르지 않다보니 상엿집이 철거되어 아무것도 없지만 그 존재는 종종 이야기 거리로 회자된다.

[날씨 좋~다]

  나는 음복 음식을 먹으러 울산댁 할매네 집에 다녀오는 길이다. 10월의 밤은 쌀쌀하기는 하지만 청명하기 그지없어 기지개를 쭉 펴며 하늘을 바라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사람이란 게 배부르면 만사 오케이에 긍정적이 된다.

[엇!]
[놀라기는..간이 그리 작아서야 뭐에 써?]

  시골은 도시에 비해 많이 어두워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내가 울산댁 할매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다들 먹고 마시느라 정신이 없으셨는데 어느 결에 청산 할매가 오신 건지 참 빠르시다. 이 분도 도토리묵 장수만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신다.

[이런 날은 도깨비불이 다니니까 봐도 놀라지 마시게]
[도깨비불이요?]
[그게 다 혼령인기라..]

  내가 신기해하자 상엿집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학마을에 제사가 있는 날은 상엿집이랑 도깨비불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할매는 살면서 하도 보다보니 안 오면 이상하단다.

[우리..아버지 제삿날에도 보셨어요?]
[그날 꽃상여 왔잖아. 권선생도 봐 놓구선 딴 말이야]

  아, 그날 아버지의 꽃상여는 할매도 보셨다. 할매는 이 세상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을 어디까지 알고 이해하시는 걸까.

[아버지는 이제 안 오시겠죠?]
[미련이 없는데 왜 와?]

  할매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슬슬 밭 사이로 걸어갔다. 잠도 오지 않는 싱숭생숭한 기분에 바람이라도 좀 맞으면 수마가 빨리 인사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쓰르르, 쓰르르 가을 벌레들이 기운차게 노래를 하니 칠흑이어도 별로 무섭지 않다. 울산댁 할매네 제사는 같은 날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제법 크게 차리셨다. 두 분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비명횡사 하셔서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던 걸 나도 기억한다.

[아..진짜 도깨비불이구나..]

  상엿집이 있었던 곳으로 기억되던 밭 가운데로 오니 정말로 청산 할매가 말하던 도깨비불이 보였다. 두 개가 빙글빙글 도는 폼이 하나는 할매, 하나는 할배다. 두 분은 제사에 참여했다가 그리운 상엿집에라도 들린 것인지 그 곳을 계속 맴맴 돈다. 나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무엇이든 알고 보면 무섭거나 두렵지 않은 법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살아있는 사람 아닐까..

[이봐, 빨리 와서 꺼내지 거기서 뭘 하는 거야?]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니 상엿집이 떡하니 보이고 문이 열려 있으며 남자들이 들락날락한다. 그 분들 중 한 사람이 나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다가갔다. 아주 어린 시절에 밖에서만 바라보던 상엿집을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서다. 사람들이 비키고 안으로 들어서자 곰팡내가 확 밀려왔다. 안은 생각보다 넓고 높았다. 왼쪽으로는 천장까지 만장기가 줄줄이 서 있고, 한 가운데는 꽃상여가 보인다.

[저기 있는 거 꺼내시게]

  나를 부른 남자는 노랑, 빨강, 파랑의 만장기들을 가리켰다. 다른 이들은 꽃상여를 들어낼 모양인지 손에 침을 퇘퇘 뱉은 후 하나, 둘, 셋을 센다.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대나무 만장기 앞으로 갔다. 언제였던가..멋도 모르는 올챙이 적에 상엿집 안을 들여다보다가 만장기를 찢었다. 물론 나 혼자 한 행동은 아니어서 주동자들은 엄청나게 맞은 후 집집마다 용서를 빌러 다녔다. 그 정도로 상엿집 안의 물건은 소중히 다룬다. 태어날 때보다 돌아가셨을 때 화려하게 보내는 것이 우리네 문화고, 특히 만장기들은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살라는 여러 가지 뜻을 담은 마음이니까. 나는 조심스레 하나하나 밖으로 꺼내 내려놓았다. 손으로 글이 쓰여 있는 헝겊을 살살 쓸어보자니 의외로 먼지가 없다. 누군가 주기적으로 닦아준 모양이다. 문득 지금도 상엿집을 관리는 사람이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누구의 초상인지는 몰라도 다들 어깨에 꽃상여를 메고 출발 준비를 한다. 그 바로 뒤에 내가 꺼내온 붉은 만장기를 든 도토리묵 장수가 보였다. 나는 노란 만장기를 들고 그의 옆에 섰다. 내 뒤에는 처음 보는 남자들이 남은 만장기들을 들고 대기한다.

[오랜 만이네요]
[쉬!]

  그는 다시없을 엄숙한 표정으로 앞만 볼 뿐이다. 왜 도토리묵이랑 개랑 닭을 사고파는 장수가 이런 일까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니 나름 마음이 놓였다. 동지의식이라고 할까, 귀신에게 잡혀가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자니 앞에서 종소리와 함께 모두가 걸어간다. 가는 길은 오늘 제사를 지낸 울산댁 할매네 집이다. 역시 비명횡사하신 두 분의 상여였던가 싶어 숙연한 기분으로 만장기를 높이 들었다.

[잘 가시게, 잘 쉬시게]

  청산 할매는 집 앞에 나와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으시며 합장을 하신다. 이어 지나가는 집집마다 어떻게 아셨는지 어르신들이 나와 배웅한다. 나는 그들을 뒤로 하고 산으로 들어가는 꽃상여를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산신을 모시는 신당을 지나 오르막을 넘어 상석리에 들어섰다. 그 곳 역시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인데 지금 우리의 눈앞에는 놀랍게도 부드럽게 포호하는 바다가 펼쳐졌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죽어 흙에도 뭍이지만 바다로도 돌아가지. 너무 놀라지 마시게나]

  도토리묵 장수는 오늘 밤 처음으로 이치에 맞는 듯 한 말을 들려주었다. 꽃상여를 맨 사람들은 산 길이 끝나면서 이어지는 검은 모래사장에서 멈추었다. 꽃상여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두고는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그저 종소리와 넋을 달래는 음성만이 공중에 휘몰아쳤다. 나 역시 만장기를 바닥에 세웠다. 뒤에서 따라오신 울산댁 할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남자들은 꽃상여 안에 있던 관을 꺼내들고 한발씩 파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다는 마치 알고 있는 듯, 문을 열어 활짝 반기는 것처럼 더욱 조용히 파도를 보내온다. 고고한 달빛 아래 사람들은 관을 파도 위에 올려놓았다. 조금도 가라앉지 않고 관은 두둥실 파도를 타고 멀어져간다. 하나의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종소리가 울렸다. 도토리묵 장수의 손짓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만장기를 들었다. 모두들 조용히 마을로 돌아와 꽃상여와 만장기들을 상엿집에 넣은 후 문을 잠갔다. 내가 잠시 다른 곳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상엿집도, 도깨비불도, 사람들도 사라졌다. 그저 도토리묵 장수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왜 안 가셨죠?]
[나는 여기 속해있으니까..]
[아..그렇군요]

  긴 대화가 필요 없을 때가 있다. 나는 사라진 상엿집과 도깨비불에게 안녕을 고했고, 또한 멀어져 가는 도토리묵 장수에게도 인사를 보냈다. 언젠가 우리 형제가 모두 모여 이렇게 어머님을 떠나보낼 수 있을까. 그 때도 그 검고 부드러웠던 바다로 갈 수 있을까.

  날아다니는 장 닭의 울음소리에 벌떡 일어나 보니 방 안이다. 어제 밤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몽롱하기만 하다. 하품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수로에는 장군이가 빠진채 구해달라고 낑낑거리고, 비록 한 개 뿐이었지만 한국바나나를 매달고 있던 으름나무도 겨울을 준비하는 듯 시들시들하다. 모든 것이 일상적이라 왠지 기분이 더 묘해졌다. 수로에 들어가 장군이를 구하고 나왔더니 청산 할매가 어제 제사에서 남은 음식이라며 배추적을 가져오셨다. 간장을 조금 따라와 찍어 먹자니 입맛을 다시는 장군이가 귀여워 한 입 먹어보라고 배추적을 던져주었다.

[할매, 오래 사세요]
[시끄럽다, 그거나 먹어라]

  오늘 오후에는 밤 따러 산에 가야겠다. 

------

글쓴이의 한마디: 만장기..처음에 그 의미를 몰랐을 때는 그저 예쁜 깃발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조상들의 마음과 지혜가 담겼음을 알고나니 숙연해집니다. (사진: 노대통령을 기리는 만장기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gogo 2009-09-1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상여집과 만장기..예전의 문화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너무 간소화된 느낌이랄까요..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