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들댁이 있을 때는 어찌나 잘 피는지, 천지삐가리가 꽃이었어]
[참말로 그랬지]
[열매도 얼마나 실한지..]

  어르신들은 우리 마당을 보고 나시면 그런 식의 대화를 되풀이 하신다. 요는 우리 어머니가 이 집에 사실 때는 풀과 꽃이 마당 가득이었다. 게다가 열매도 잘 열리고 작물도 품질이 좋았단다.

[우리 어머니가 잘 키우셨나봐요]
[서방 처다보듯이 이쁘다, 이쁘다 했지. 왜 거짓말 같나?]

  믿기 어렵지만 어머니는 매일 들여다보시며 말을 걸고, 나뭇잎들을 닦아 주셨다고 한다. 일찍 남편을 여의다 보니 정 줄 곳이 없어서 그렇다고 할매들은 말한다. 하지만 자식이 7명이었는데 정 줄 곳이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정말 정 많으신 분이면 죽으나 사나 자식들을 끼고 사셨어야지, 왜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막내까지 서울로 보내버리셨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그 덕에 나는 이곳에 대한 기억이 8살까지만 있다.

[권선생, 구들댁이 밉나?]
[어머니를 미워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원망은 하는구만. 좀 더 살아봐, 나무관세음보살]

  청산 할매는 뒷짐을 지고 산 속으로 난 길을 바라보셨다. 그 분은 내 예전 기억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를 도와주시고 붙잡아 주셨으니 어쩌면 더 많은 것들을 아실지도 모른다.

  내가 서울로 가고 다음 해인가 어머니가 강원도에 일하러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셋째형이랑 버스를 타고 어머니를 만나보겠다고 먼 길을 갔었다. 길이 최악이라 덜컹대는 버스에서 멀미도 하고 기진맥진하며 찾아간 곳은 탄광촌이었다. 흐릿한 하늘과 검은 벽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린 마음에 그런 마을이 신기하다 싶어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보며 다니는데, 길 건너편에 음식 쟁반을 머리에 이고 지나가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나는 어머니를 부르며 달려가려고 했지만 형이 손을 잡아 끌었다. 일하시는 데 방해하지 말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분명 그 때 형은 뭔가를 보았다. 돌아오는 내내 형에게 심통을 부렸는데, 형은 말없이 울었다.  


  나는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고 서울 살이를 하면서 어머니와의 사이가 더 멀어졌다. 자식들에게 바라기만 하시고, 만나면 아프다고 하시는 게 듣기 싫고 어떨 때는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부모로서의 노력은 안 하신 분이 어찌 그리 당당하게 받으려고만 하시나 싶었다. 그래서 결국 제대로 된 화해를 하지 못한 채 어머니는 반년 전에 세상을 뜨셨다. 사실 이제는 어머니에 대해 원망을 하는 건지, 미움이 있는 건지, 아쉬운 건지 도통 모르겠다.

[꽃들도 사랑 받기로 치면 사람과 같아. 그렇지 않고는 구들댁 죽고 나서 그리 다 시들 수가 없지]

  특히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을 좋아하셔서 소백산에 산나물 캐러 가시면 가져와 마당에 옮겨 심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달 뒤에 돌아온 집은 폐가를 연상했다. 정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우리 마당의 역사가 멈췄나보다.

[할매, 근데 저게 뭐예요?]

  우리 마당 한구석에 있는 나무에 열매가 딱 한개 달렸다. 그것이 신기하여 매일 아침 지켜보는 데 크기가 점점 커진다. 현재는 어른 주먹보다 더 크다.

[으름이구먼]
[으름요?]
[우리 손주들은 바나나라고 불렀지만 으름이야. 근데 왜 한 개뿐이야?]

  청산 할매가 돌아가신 후 인터넷으로 뒤져보았다. 임하부인, 한국바나나라는 별칭이 있지만 진짜는 으름 넝쿨 식물이다. 예쁜 꽃이 핀 후에 생긴다는 데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꽃을 보질 못했다. 그렇다고 절대 안 피었다고 말하기에는 내 관찰력이 세심하질 못하니 피었다가 진 게 틀림없다.

[아저씨~]

  잊을 만하면 그 아가씨가 놀러온다.

[저거 맛있겠다. 언제 따 먹을 거예요?]

  아슬아슬하게 달린 으름을 가리키며 입맛을 다신다.

[글쎄..언제가 돼야 먹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럼 지금 먹어요]

  왠지 그러기에는 아쉽다. 겨우 반년 만에 뭔가가 보이는데..싶어 망설여진다. 고개를 저으니 아가씨는 먹을 때 꼭 자기를 부르라고 하며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부르라는 건지..

  며칠이 지나고 보니 으름 열매가 제법 커져 이제는 주먹 3개 정도 인데 색은 아직 초록이다. 지나 가시던 어르신들은 모두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신다.

[잘 익으면 소리를 내며 갈라져]
[소리가 나요?]
[함 들어보면 알아. 근데 저 놈은 아직도 안 익었네. 꼴았나?]

  어르신들의 말들을 종합해보면 이미 갈색으로 익어서 짝하고 벌어져 수확을 해야 마땅하다는 데 알 수가 없다. 어머니가 안 계셔서 그런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주말 내내 가을비가 내렸다. 아마도 이 비가 그치면 날이 추워질 것 같다고 느껴져 방풍지를 사와야지..하고 메모해두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제야 비로써 으름이 갈색으로 변해간다. 조만간 벌어질 것 같다.

[왜 막걸리 먹으러 안 와?]
[으름 열매 벌어지는 거 보려고요]

  산에 가시던 슈퍼 주인 할매가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나에게 수로 너머에서 소리치셨다. 요즘 컴퓨터까지 대청마루로 내놓고 일 할 정도로 으름을 열심히 지키니 어르신들은 나를 보기가 어렵다며 이렇게 일부러 지나가주신다. 또 먹을거리도 가져오신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저 으름이 다 익어 벌어지면 꼭 나누어 먹어야지..라고 결심했다.

[쯔......]

  마당에서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기다리던 으름 열매가 드디어 입을 벌렸다. 너무도 반가워 야호..소리를 질렀다.

[뭐시여?]

  고추를 수확하시던 청산 할매가 고춧대 너머로 얼굴을 들고 쳐다보신다.

[열매가 다 익었는지 벌어졌어요. 할매, 드시러 오세요]
[그게 얼마나 된다고..권선생이나 먹어]

  할매는 많이 먹어보셨다며 한 번도 시식 못해 본 나에게 맛있게 먹으라고 하셨다. 그래도 시골 인심을 알기에 열매를 따서 쟁반에 담았다. 마을 슈퍼로 가져가 사람들을 기다리니 슈퍼 주인 할매가 전화로 불러 모으셨다.

[권선생네 으름이야]
[고놈 참 크네]
[잘 키웠네, 그려]
[머..먹..기..아..까..깝..네]

  웅성웅성, 시끌시끌. 오랜만에 슈퍼가 꽉 찼다. 두 개 밖에 없는 탁자에 어르신들이 모두 앉자 나는 벌어진 틈을 양 손으로 잡아 힘껏 당겼다. 반으로 쪼개진 으름은 흰 속에 검은 씨가 알알이 박혔다. 한개 뿐이다보니 배부르게 먹을 것도 없게 동나버렸다. 나는 왠지 아쉬운 기분에 산에서 좀싸리라는 가을 야생화를 캐와 으름 넝쿨 옆에 심으려고 땅을 팠다.

 [어?]

  땅속에 뭔가 뭍혀 있다. 꺼내보니 종이다. 그것은 흙이 잔뜩 묻어 있지만 잘 접혀 안쪽은 깨끗하다.

[함 펴봐]
[네]

  언제 오셨는지 어르신들이 주변에서 재촉하신다.

[권선생, 왜그래?]

  잠시 할 말을 잊고 종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궁금하신 어르신 한 분이 종이를 뺏어가셨다. 나는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응시했다.

[글씨네?]
[뭐라고 쓴 거야? 난 읽을 줄 몰라]
[나도 몰라]
[이름이구만..권선생 이름인데]
 
  유일하게 글을 아시는 슈퍼 주인 할매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 손에 든 종이에는 “권형욱” 이름 석 자가 빼곡히 쓰였다. 누군가 글씨를 잘 쓰는 분이 써준 것을 보고 삐뚤삐뚤 따라 써내려간 연습장이다. 정성을 다해 꾹꾹 눌러써 종이의 뒤편이 울퉁불퉁하다.

[구들댁이 매일 이파리들 닦으면서 뭐라 했는지 아나? 자식들 이름을 불렀어]

  저녁 밥 때가 되자 청산 할매는 찌개가 담긴 냄비를 들고 와 대청마루에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이거는 형욱이꺼, 저거는 정욱이꺼..그렇게 말하는 구들댁 맘을 절대 모를 꺼야. 서방은 마음에 묻어도 자식은 그러질 못하는 게 어매야]

  몇 번을 데우셨는지 냄비 안 쪽 벽에는 국물이 졸아든 흔적이 보인다. 내 걱정이 되어 없는 반찬이라도 저녁상을 챙기려 하시는 이웃집 할매의 맘도 그럴 진데 배 아파 낳은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오죽하랴. 살아오면서 원망과 슬픔만을 지녔던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35살의 마음 안에는 강원도에 찾아갔다가 그냥 돌아온 아이가 그대로 자라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막내를 떼어놓아야만 먹고 살 방법을 찾을 수 있었던 어머니를 내 마음대로 왜곡해 버린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우리를 못 떠나 상여를 몇 번이고 돌려 찾아오신 일도, 매일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우시던 어머니도 그 한 많은 마음을 7형제가 전혀 알아주지 못한 게 슬프다. 사랑..내리 사랑..그리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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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한마디 : 으름 열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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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바다 2009-09-1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멋진 하늘 ..
그래도 오늘은 좀 슬프네요..오래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생각나고..유년을 외가에서 보내고 초등3학년에 대구에 올라왔는데..기차를 태워주시며 눈물훔치던 모습도 생각나고..돌아가시기전 한동안 편찮으셨는데 가보지도못하고 장례도 못가보고..그래서 외손녀는 키워도 헛꺼라고 엄마가 그러셨는데..내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주신분..편히쉬세요..

하늘푸른빛 2009-09-10 14:2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래도..할머님에 대한 추억이 소중히 남아 있고..그런 것들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