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서는 닭들을 풀어놓고 키운다.

[구구~구구~]

  어르신들은 밭일을 가시다가도 닭들이 위험하게 놀고 있으면 안전한 곳으로 갈 때까지 몰아주시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암탉이나 병아리들에 한정된다.

[아따, 울산댁 장 닭이 청산댁 마당으로 들어가던데..]
[장군이가 괜찮을까 모르겠네]
[다 지 할 탓이지..겁나면 피할거야]

  학마을 최고의 난봉꾼이자 문제아가 바로 울산댁네 장 닭이다. 이놈은 물고기 잡는 장군이도 울고 넘어갈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그러니 당연히 고령의 어르신들은 대적을 못하신다. 처음 내려왔을 때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마당에 들어온 그 장 닭을 내보내려고 하다가 심하게 쪼여서 보건소로 달려갔었다. 가장 젊은 나도 당하기만 할 정도니 울산댁네 장 닭이 못 갈 곳도 없고, 못 할 일도 없다.

[그 놈은 포기했어]
[하긴..지 세상이라고 그러고 다니는게 하루 이틀인감]

  정작 주인인 울산댁 할매는 누가 싫은 소리 하면 그렇게 대꾸하실 뿐이다.

[어제 보니까 버버리네에 병아리가 늘었어. 애비가 그 장 닭 맞지?]
[그 놈 말고 누가 그래? 묻지 말어]

  비가 오기 시작하자 밭일을 접으신 할매들이 정자에 모여 도토리묵을 드시면서 마을 사건,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다. 이 작은 마을에 매일 일이 생길 것도 없지만, 있어봤자 병아리가 늘어나든지 마당에 풀이 쑥쑥 자라는 정도다.

[할매, 병아리가 많아지면 좋은 일 아닌가요? 장날에 팔아도 되고요]
[그러면 좋게? 울산댁네 장 닭이 쫓아오는 통에 암 것도 못해]

  천하제일의 난봉꾼답게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병아리들을 양산하는데, 새끼들은 늘려놓으면서 사람들이 병아리를 내다팔려고 다가가면 어떻게 아는지 날아와 훼방을 놓는다. 닭이 나는 일을 TV에서 보기는 했지만 학마을처럼 항상 그러기도 쉽지 않다. 이 장 닭은 어찌나 잘 나는지 바닥에 있는 것보다 날아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아침, 저녁으로 마실을 다니다보면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모습, 커브를 틀어 왼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곧 잘 보니 이 마을은 이렇구나..라고 결론을 내렸다.

[딴 놈은 안 그래]

  청산 할매 말에 따르면 현재까지 장 닭은 10여 마리, 암탉은 20여 마리, 병아리는 세어보질 못했지만 계속 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다른 장 닭들이 날 생각도 안하고 그저 조용히 사는 게 모두 흉포하고 극악무도한 울산댁네 장 닭 때문이다. 이놈은 다른 장 닭들이 암탉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죽어라 쫓아다니며 쪼아대는 통에 요즘엔 아예 암탉들과 병아리들, 울산댁네 장 닭, 나머지 장 닭들의 세 부류가 존재한다. 그나마 도로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건 암탉들과 병아리들 뿐이다. 힘은 좋아도 울산댁네 장 닭에게 당한 놈들은 어둠 속 어딘가에서 소리만 낼 뿐이다.

[할매, 이대로 두면 병아리가 너무 늘어나서 마을이 닭들로 가득할 거 같은데요. 이참에 그 놈을 잡는 게 좋겠어요]
[관둬. 얼마나 똑똑한지, 밤에는 나무 위에서 자고, 돌아다닐 때는 새 마냥 훨훨 날어. 못 잡아]

  청산 할매가 저리 고개를 흔들 때는 정말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사방이 병아리다. 마실 가는 곳곳에서 목격을 하고 발에 치이는 사태에 직면하자 나는 밤에 일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장 닭이 나무에서 잔 다니, 그 사이에 병아리를 자루에 담아 나오려는 계획이다. 하여 지금 살금살금 걸어간다. 장갑을 끼고 자루를 들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어느 나무에서 자는지 장 닭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다행이라고 한숨을 쉬며 버버리 할배네 닭장 문을 열었다.

[꼬꼬꼬꼬..삐약삐약]

  나의 덤벙대는 성격은 장 닭만 조심하면 된다는 게 다여서, 밤에 닭장 문을 열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에 대해선 무계획이었다. 암탉과 병아리들을 다 깨우는 바람에 소리가 나서 병아리를 몇 마리 담지도 못한 상태인데 심상찮은 바람이 불어왔다. 장 닭의 날개 짓과 더불어 매끄럽게 착륙하는 느낌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비행 기술을 꽤 여러 해 동안 연습을 했는지 우아하게 바닥에 내려서는가 싶더니 바로 통하고 튀어 내 등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콕콕 찧는데,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펄떡펄떡 뛰다가 자루마저 놓치고 집으로 도망 왔다.

  다음 날 보건소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한 눈에 누구의 소행인지 아시고는 웃을 따름이다. 정자에 앉아 계시던 할매들은 끙끙거리는 나를 보더니 한마디 하신다.

[그 놈은 왕이야 왕. 우린 암 것도 못 해]

  나는 푹 자는 대신 조금씩 쪽 잠을 자는 편인데 특히 새벽에 간신히 잠들었을 때 뭔가에 수면 방해를 받으면 다음날이 힘들어진다. 시골에서 수면 방해 받을 일이 뭐 있겠냐 싶어도 예상외로 많다. 닭들의 울음소리, 온갖 새소리에 때로는 정체를 모를 짐승의 소리까지..첫 한 주는 적응하느라 새벽에 뒤척였다. 그래도 울산댁네 장 닭이 매일 우리 집 나무에 와서 울기 전까지는 살만 했다. 이놈이 알고 보니 정력 뿐만이 아니라 머리까지 좋아서 자기를 귀찮게 하거나 해코지를 하면 꼭 복수를 한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래봤자 닭이라고 우습게 생각했는데 웬 걸..상당히 끈질겼다. 내가 병아리들을 자루에 담으려다 당한 뒤부터는 새벽이면 우리 집 나무에 나타나서 울어댄다. 아직 해도 안 떴는데 어찌나 소리를 내는지 청산 할매까지 화를 내신다, 왜 건드렸냐고. 참으로 뒤끝이 확실한 게 벌써 일주일째다.

[권선생, 잘 먹고 다녀야지, 얼굴이 상했구먼]

  이런 상황이라 밥맛이 없어 막걸리나 한 사발 하자 생각하고 슈퍼로 갔더니 씨껍데기 막걸리와 김치를 내오신 슈퍼 주인 할매는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잠을 못자서 음식 생각이 없어요]
[쯧쯧..]

  출판물을 이번 달 말까지 줘야하는데 도통 진전이 없다. 머리가 무거우니 자꾸 낮에 꾸벅꾸벅 졸게 되어 일할 시간이 부족하고, 밤에 조금 잘라치면 시끄러워서 깨니 악순환인 셈이다.

[그 닭을 잡으면 되죠]
[어떻게?]

  출판사 후배와 통화하다가 왜 진전이 없는지에 대해 변명을 했더니 참으로 간단하게 답을 한다.

[수면제를 써보세요]

  한 달음에 차를 몰고 영주 시내로 나가 아주 좋다는 수면제를 사왔다. 곱게 빻아서 장 닭이 가는 곳마다 넣어두었다. 게 중에 하나는 먹겠지..라는 생각이다. 계획대로만 되면 어딘가 쓰러져 잠들었을 때 잡거나 삶아 먹으면 된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죽었어?]
[흉헌 일이구먼]

  간만에 좀 잤다 싶어 기지개를 켜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나가보니 길가고 마당이고 장 닭들이랑 암탉, 병아리 할 것 없이 모두 쓰러져 있어 어르신들이 웅성웅성 하는 중이었다. 나 역시 처음 보는 사태에 눈만 동그랗게 떴다. 그 때 쯤 저 멀리서 날아오는 울산댁네 장 닭이 보였다. 화려한 날갯짓으로 유유히 다가오는 게 새인지 닭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혹시나 해서 돌아다녀보니 내가 약을 넣은 먹이통들이 전부 비어있었다. 즉, 마을 도로에 누워있는 닭과 병아리들이 돌아다니며 울산댁네 장 닭 대신 수면제를 먹었다. 전후 사정을 들은 어르신들은 한 숨을 쉬고는 밭일을 하러 나가셨다. 도로는 잠자는 닭들과 병아리로 엉망이라 차를 가지고 나갈 수도, 트랙터가 들어올 수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 안 일어나면 나 혼자라도 모두 치워 주리라 결심을 했는데 다행이도 저녁 무렵에 전부 깨어나 머리를 몇 번 흔들더니 활기차게 돌아다녔다. 해서 나는 장 닭을 잡거나 병아리를 내다파는 꿈을 접었다.

[닭 사~닭 사~]

  가을이라 귀뚜라미 소리에 심취해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봄에는 도토리묵 장수였고 여름에는 개 장수였던 남자가 우리 집을 지나갔다.

[저기..진짜 닭 사가시나요?]
[왜? 팔 거 있소?]
[울산댁네 장 닭 좀 사가주세요]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산길로 접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남기고 간 말을 곱씹었다.

[날아 다니는 닭은 안 사]  

  이렇게 해서 울산댁네 날아다니는 장 닭은 학마을에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는 말이 맞음을 깨달았다. 더불어 장 닭은 내가 마음에 든 것이지 새벽에만 날아오는 게 아니라 지 마음 내킬 때면 낮이고 밤이고 안 가리며 대청마루에 올라선다. 방 안으로 들어 올까봐 문도 못 열어놓고 살게 생겼다. 학마을에서 처음 맞는 가을을 장 닭이랑 함께 하게 됨을 슬퍼하며 위로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러 슈퍼로 갔다.

[사는 게 뭐 있남. 다 권선생 복이려니 생각해]

  슈퍼 주인 할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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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바다 2009-09-09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푸른하늘에 흰구름이 두둥실 떠 다니는 멋진 날입니다..장닭..그 난폭함이란 안쪼여본 사람이라면 모르죠..어릴때 그 딱딱한 부리가 무서워 피해다니던 아픈기억..닭들은 걷는것같으면서도 그 빠름이란..하늘 푸른빛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제 유년의 기억을 조금씩 일깨워줍니다.고향이 풍기라서 더욱 그런듯...

하늘푸른빛 2009-09-09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풍기시구나..영주에 내려갈때면 들르는 곳입니다^^

행복 2009-09-10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머리 속으로 상상이 되서 웃었습니다. 즐겁게 글을 읽게 되서 요즘 이곳에 오는 재미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