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월은 송이버섯의 달이다. 어찌나 실하고 맛난지 자연 송이를 막 캐서 숨을 한번 맡아보면 그 느낌이 평생 간다. 특히 캔지 2-3시간 안에 불에 구워 기름장에 찍어먹으면 쇠고기는 저리가라요, 최고라고 칭송을 받는 뱀고기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의 특급 요리가 된다.
[할베가 요즘 안 보이시네요?]
[버버리야 산에 갔지. 낼이나 되야 올까..]
[산이요?]
[소백산 자락 말이야. 거기가 송이 많기로 최고지]
할매들은 입맛을 다신다. 이맘때의 자연산 송이는 베테랑 송이꾼들만이 발견할 수 있는데, 학마을 최고 송이꾼이 바로 버버리 할배다.
[그거 최상품은 몇 십만 원 간다던데요. 돈 많이 버시겠어요]
[버버리는 가을에 돈 벌어 나머지를 놀아]
[버버리 죽고 나면 이제 송이 먹을 일도 없을 꺼구만]
[지난해엔 산삼도 캤어. 아주 실한 게 물건이었지]
할매들은 새참을 다 드신 후 한 분씩 일어서며 밭일 나갈 채비를 하셨다. 나 역시 출판물 작업을 마저 하려고 같이 길을 나섰다.
[버버리가 학 알도 곧 잘 가져왔는데..]
청산 할매는 뒷짐을 짓고 엉거주춤한 포즈로 호미를 집어 드시더니 혼잣말을 하셨다.
[그 할베가 학 알도요?]
[권선생도 꽤 해봤잖아. 구들댁 말이 막내가 최고라고 하던데..]
[네..그랬었죠]
어르신들에게 송이가 최고라면 예전에는 학 알이 아이들의 로망이었다. 계란도 넉넉히 먹기 어렵고 그나마 부치면 어른들에게 먼저 가니 아이들은 알아서 영양보충을 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우리 마을은 학들이 먼저 찾아와 진을 치는 일명 “학나무”들이 많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눈만 돌리면 학이었으니까. 학이 많다는 말은 알도 넘친다는 뜻이다. 보기에는 커도 깨서 먹으면 달걀 맛이 나서 우리는 종종 냄비를 들고 학나무 근처에 집결했다. 먼저 바닥을 살펴본다. 학나무는 어른들이 숭상하는 영험함 때문에 풀 한포기 안 건드리는 지역이라 장딴지까지 올라오는 잡초가 무성했다. 나무에서 알을 낳고 자리를 잡으려던 학이 알을 잘 못 건드려 떨어뜨렸을 때, 운 좋게 풀 위에 떨어지면 깨지지 않으니 그런 것은 말 그대로 거저 얻는 상품이다.
[형욱아, 니가 가봐라~]
풀을 다 뒤져도 건질 게 없을 때는 직접 학나무를 타야하는데 제일 잽싸기로 유명한 사람이 나다. 하여 대부분 내가 나무를 타고 나머지 아이들은 커다란 토란잎을 머리에 쓰고 대기했다. 학나무는 독한 학 똥 때문에 고사 직전으로 껍질도 벗겨지고 상태가 안 좋아 발을 집고 오르기에 수월하다. 냄비를 머리에 뒤집어 쓴 후 살금살금, 조심조심 다가가는데도 학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다만 높이 날아가지 않고 나무 근처를 맴맴 돌며 소리를 낸다. 수십 마리의 학이 머리 위에서 날갯짓을 한다고 생각하면 참 아찔하다. 나는 얼른 학 알을 몇 개 접수하고 내려간다. 냄비에 담아 빨리 사라지면 다행이고, 조금만 늦어 지체하면 학 똥을 덮어쓰거나 달려오신 동네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듣는 게 순서다.
[이놈의 자식들~게 서라]
버버리 할배의 아버지는 학을 지키는 역할도 맡으셔서 우리와 곧잘 달리기를 하셨다. 나는 10번에 7번 정도는 학 똥도, 어른들도 피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커다란 토란잎을 쓰고 있어도, 떨어지는 똥에 머리를 맞으면 똥독에 며칠을 끙끙대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맛이 바로 학 알이다. 삶아 먹어도, 부쳐 먹어도, 날로 먹어도 그 맛이 참 일품이다.
그 시절을 생각하다보니 문득 학 알이 먹고 싶어졌다. 지금은 “백로 도래지”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먹으면 벌금을 물어야할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지만 한 개쯤 몰래 먹는 것도 추억이 되지 않을까..하는 못된 생각에 냄비와 토란잎을 들고 길을 나섰다. 이미 출판물은 머리 속 어딘가로 사라진 뒤였다.
기억을 더듬어 학나무를 찾아갔다. 이미 고사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무는 여전히 고사 직전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을 보내며 토란잎을 머리에 동여매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오~역시~]
가을이라 알이 없을 것을 짐작하며서도 학마을만의 특별함을 믿었다. 둥지에서 학 알을 발견한 순간에 웃음이 나왔다.
[내..내..려..와..하..학..이..시..싫..어..해]
나무 아래쪽에서 버버리 할배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송이를 따오셨는지 채집통을 가로로 맨 채 나를 올려다보신다.
[할배~조금만 기다리세요~]
오케이 사인을 의미하는 손짓을 보내고 학 알 두개를 집어 주머니에 넣은 후 내려왔다.
[한 개 드릴까요?]
학 알을 꺼내 문지르며 말하는데 버버리 할배는 고개를 흔드신다.
[도..돌..려..줘..]
[청산 할매 말이 가끔 드신다면서요?]
[그..그..건..하..한..개만..]
학이 돌아왔는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깜짝놀라 우리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다른 나무 밑에서 숨을 고른 뒤 나는 집으로, 버버리 할배는 정자로 걸어갔다.
[할매~학 알 드세요]
청산 할매를 찾아 부엌으로 들어가 학 알을 꺼내놓았다.
[지금은 배부른데..나중에 먹을 테니 냉장고에 둬]
한 개는 청산 할매네 두고 한 개만 가지고 돌아왔다. 바로 해먹을까 하다가 그제서야 출판물이 생각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메일을 열어보니 독촉의 글이 와있다. 꽁지에 불붙은 사람 마냥 한동안 코를 박고 일했다.
[계세요~]
약간 서늘하다 싶은 가을 밤바람이 불어와 벌써 해가 졌음을 느끼던 차에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고 대청마루로 나가니 옷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이 보였다.
[벌써 드셨나요?]
[네?]
여인은 입술을 깨물며 주저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인간이 아님을 느꼈다. 학마을 살이 반년이 다 되가니 이렇게 먼저 알기도 한다.
[알을 드셨나해서요]
[아직 안 먹었습니다. 왜요?]
여인은 크게 안도하는 얼굴로 대청마루에 앉더니 품에서 돈을 꺼냈다.
[남편이 몸이 안 좋아 학 알이 필요해요. 돈을 드릴 테니 팔아주세요]
얼핏 보아도 제법 많은 돈이다. 학 알이 영험하다거나 뭔가 엄청난 효능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 없는데 민간요법으로는 꽤 중요한가보다.
[저도 공짜로 얻었으니 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만..부군의 병이 무엇이기에 학 알이 필요하신지요?]
여인은 잠시 망설이는 듯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느끼고 얼른 입을 막았다. 여인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돌렸다.
[아..알겠습니다. 그럼 드릴 테니 잠시 기다리세요]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입을 막은 채 웃었다. 남편이 발기부전이라 필요하다고 하니 웃음이 터질 수밖에..학 알이 도움이 될지는 미심쩍지만 가지고 나왔다.
[멍멍]
장군이가 언제 왔는지 나를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뒤로 넘어지며 학 알을 떨어뜨렸는데 장군이가 입에 물고 수로로 뛰어들었다. 여인은 황망해하다가 쫓아가고 나 역시 부엌문을 잡고 일어나 달려갔다. 장군이는 그 안에서 우리를 쳐다보며 학 알을 깨뜨려 속만 먹고 껍질은 버렸다.
[이럴 수가...]
여인은 어이가 없는 듯 주저앉았다. 나 역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어 처다만 보았다. 그럼 장군이 놈도 발기부전이었던가? 그래서 자기 동료들이랑 안 놀고 물고기나 잡았던 건가? 1분 정도쯤 흐르자 여인은 체념을 한 듯 일어섰다. 말없이 수로를 건너뛰더니 사라진다. 문득 대청마루에 두고 간 돈이 생각나 돌려줄 요량으로 돈을 집으러 갔더니, 나뭇잎만 한 가득이다.
[너구리야, 그건]
[네?]
[학 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
[흠..하지만 할매에게는 안 왔잖아요]
[권선생하고 내가 같나?]
어쨌든 청산 할매에게 맡겨둔 학 알은 무사하여 돌 판 위에 구웠다. 마침 버버리 할배가 주고간 자연산 송이도 있어 노릇노릇 구워 기름장에 찍으니 이 아니 좋을쑈냐다.
[장군이 놈은 오늘 호강했네요. 학 알도 먹고..]
[밤새 울겠지, 쯧쯧]
할매 말에 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역시 학 알이 발기부전에 특효약인 게 사실인가 보다. 오늘밤 혼자 보낼 장군이가 불쌍하다는 생각과 함께 할매 앞으로 학 알 프라이를 살짝 옮겨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