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증조부는 고종에게 교지를 받으신 분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재무장관 정도의 자리인데 첩첩산골 출신이니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격이다.

[암~ 권선생네 땅 안 밟고는 시내에 못 간다고 했지]
[구들댁이 좋은 데 시집왔다고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친정이 돈은 없어도 퇴계 이황 선생..그 종손 가문이야]

  구들댁이란 우리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이다. 왜 하고 많은 말 중에 구들댁인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어르신들은 변함없다. 어머니가 시집올 당시에는 신랑 얼굴 한 번 못 보고 정략결혼을 한 셈인데, 그 결혼의 주목적이었던 많은 논과 밭들이 지금은 한 평도 없다. 이래서 화무십일홍이라는 고사가 맞는 말이다. 가을로 접어드는 9월 첫 주에 정자에 모인 어르신들이 이런 대화를 하는 이유는 주말에 아버지 제사가 있기 때문이다. 시골은 어느 집에 며칟날이 제사고, 며칟날이 누구 생일인지 훤하게 꿰고 있어, 그런 날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므로 다들 그 이야기 중이다.

[음복 음식은 뭐 담을까요?]
[문어랑 전 정도만 돌려. 지금이야 먹을 게 없어서 기다리는 게 아니니까]

  낮에 내려온 둘째네는 내가 사다 논 재료로 부지런히 제수 음식을 마련하여 12시가 땡치자 제사상을 차렸다. 예전처럼 거창하게 많이 준비하지는 못하고 기본적인 나물, 수산물, 과일 등등이다. 그래도 힘든지 둘째네는 피곤한 기색이다.  

  음복 음식은 내가 돌린다. 어느 집에 누가 있고, 어느 집이 비었는지 전부 꿰고 있는 내가 오밤중에 심부름하기엔 적합하니까. 그래서 새벽달을 보면서 커다란 쟁반에 음식 접시를 들고 길을 나섰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에 형들이랑 음복 음식을 들고 돌아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그 때는 지금보다 집들이 더 많아 칠형제가 각각 나누어 가지 않으면 빨리 돌아오지 못할 정도여서 특히 막내인 나는 잽싸게 뛰어 다녔다. 제사를 지내는 때가 아니면 일 년 내내 동태전이나 문어는 맛볼 수  없으니 형들이 먼저와 다 먹어버리지 못하게, 또한 친구들에게 싸가지고 가서 자랑 할 몫을 챙기려면 빨리 집에 도착해야한다.

[전 하나만 줘~]

  어리기 때문에 더 잘 보였는지는 몰라도 항상 음복 음식을 달라는 이상한 존재들이 따라다녔다. 빨리 돌아가야 하는 마음에 쳐다보지도 않고 전을 휙 반대쪽으로 던지면 바람이 불면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고 이어 웃음 소리와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전 하나만 줘~]

  청산 할매네를 지나 버버리 할배에게 가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반갑다고 해야 할까, 우습다고 해야 할까, 그 목소리 덕분에 미묘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급한 일도 없어 고개를 돌려 마주보았다.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어딘가 균형이 부족한 듯해 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종종 나타나는 그 아가씨가 보기에 좋다.

[이거나 먹어라~]

  나는 잘 만들어진 동태전을 숲으로 던졌다.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는 두 다리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깜박한 듯 엎드려 뛰어갔다. 그런 놈들을 몇 명쯤 만나며 마을 입구에 있는 슈퍼 주인 할매네까지 모두 음식을 돌렸다.

[삼촌, 시골이 좋아요?]
[음..나쁘지 않아]
[나도 여기 와서 살까요?]

  이제 6살이 되는 조카가 집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는 대신 한 때는 연못이 있었던 마당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찌나 별이 많은지 이곳이 정녕 대한민국인가 싶은 마음을 조카도 느꼈나보다. 아름다운 하늘을 한참 보고 있자니 조카가 무릎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만약 내가 결혼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런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주었다. 사방에서 풀벌레 소리가 난다. 조용조용, 시끌시끌. 교향곡을 만들 듯이 높낮이와 장단이 존재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딱 좋은 이 밤이 계속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자니 갑자기 안개가 몰려온다. 향을 피운 것처럼 스멀스멀 퍼지는 것이 수로도 보이지 않고 바로 옆집도 가렸다. 마치 나와 조카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듯 느껴진다.

[뗑그랑..뗑그랑]

  멀리서 희미하게 종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뒤이어 따라온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들었던 구슬픈 앓는 소리도 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보았던 꽃상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보..여보..나는 이제 어떻해요. 나 어떻게 살아요]
[구들댁~정신 차려. 애들 생각해야지]

  꽃상여가 한 발씩 천천히 가는 동안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뛰어와 붙잡고 매달렸다. 가지 말라는 듯, 목 놓아 우셨다. 지금보다는 젊은 청산 할매가 어머니를 붙잡고 떼어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꽃상여 역시 가지 않는다. 무엇이 그리 한스러운지 집 앞에 선 채로 부르르 흔들린다.

[어서 가서 아버지를 안심시켜드리시게]

  내 옆에서 도토리묵 장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개가 가득하여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그의 목소리다. 나는 조카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어머니도, 청산 할매도, 상여를 진 남자들도 모두 나를 바라본다.

[아버지..오랜만이에요. 제가 벌써 35살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나이랑 같네요]

  이제는 내가 지킬 테니 쉬시라는 말과 함께 꽃상여 안으로 팔을 넣어 관을 어루만졌다. 관은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크게 들썩이더니 점차 가라앉았다. 마침내 관이 조용해지자 앞잡이가 다시 종을 울린다.

[가세~가세~북망산이 저 곳이니~]

  상여를 맨 남자들의 소리가락이 꽃상여의 움직임과 함께 천천히 사라져갔다. 오열하던 어머니도, 젊은 시절의 청산 할매도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삼촌, 뭐해요?]

  언제 깨어났는지 조카가 내 팔을 잡아 당겼다. 눈가를 닦으며 보니 안개도 다 사라져 여전히 칠흑의 밤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꽃상여는 제삿날이면 이곳을 지났는데 그동안은 우리가 없어 달래주지 못하여 만날 때까지 되돌아 온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와 같은 35살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상여를 만났다는 내 무심함에 눈물이 솟구친다. 너무 어려 아버지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평소에 사이가 나빴던 친구에게는 맛있는 음식 안 준다며 자랑하고 돌아다녔다. 그런 내가 오늘에야 우리를 두고 떠나지 못하던 아버지의 슬픔을 알았다.

[그냥..아버지 생각을 했어]
[삼촌도 아빠가 있어요?]
[그럼..있지, 너처럼]
[어디 있어요?]

  나는 말없이 하늘을 가리켰다. 6살 조카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더니 내 품에 안겼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니 작게 속삭인다.

[우리 아빠 빌려줄까요?]
[왜?]
[삼촌, 지금 외롭잖아요]

  뼈가 사무치고 등골이 하얗게 탈색할 정도로 내 깊은 마음이 외로워하고 있음을 이제야 느꼈다. 이 작은 아이도 아는 것을 이제야..
  오늘 밤엔 아버지 꿈을 꾸고 싶다. 만나면 안아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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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한마디: 최근에는 꽃상여 보기가 참 어려워요. 작년에 우연히 한 시골에서 보긴 했는데.. 화려함이 많이 줄었습니다. (사진출처: 다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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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술 2009-09-07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때때로 외롭다는 걸 모르다가..누군가의 지적으로 알게될때가 생깁니다...주인공도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