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까무룩 감겨 방에도 못 들어가고 대청마루에 엎어졌다. 수면제를 탄 듯 스르르 몸에 수마가 밀려온다. 머릿속에는 해야 할 출판물과 잡초 좀 뽑고 싶다는 생각들이 지나가는데 몸은 이미 수면 상태라 손끝하나 안 움직인다. 희안하게도 정신만 또렷하다고 할까. 이게 과연 잠든 건지 아닌 건지 신기하다.

[멍멍 멍멍]

  귓가에 장군이 소리가 들린다. 한 쪽 눈만 간신이 떠서 쳐다보니 이 녀석은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연못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노는 라 정신이 없다. 뭐, 먹지만 않으면야 별 일 없으니까 저러는 거겠지 싶어 웃고 말았다.

[어이~]

  나를 부르는 지, 장군이를 부르는 지 모호한 소리가 들린다. 봄에는 도토리묵 장수였다가 여름에는 개 장수가 된 남자였다. 그는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호숫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다. 이제 가을이 다가오니 물고기 낚시꾼으로 변신하나보다. 그는 낚시에도 특기가 있는지 은색 물고기들이 계속 잡혀 올라온다. 아무리 물 반, 고기 반이라도 넣는 족족 바로 무는 건 신통한 일이다. 낚싯줄에 걸려 하늘로 날아오르는 물고기가 달빛에 반사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그 멋진 광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몸이 서서히 풀리는지 손이랑 발이 움직여진다. 대청마루에 반듯이 앉아 팔 다리를 주무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저 세상이 무섭지 않은지 호수 옆에 장작을 쌓아놓고는 낚은 물고기들을 굽는다. 노릇노릇 앞뒤로 보기 좋게 구워지는 게 겨울엔 생선구이 장사를 해도 대박으로 돈을 벌겠다.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개 장수일은 언제까지 해요?]
[음..다음 주 정도까지만..]
[그럼 그 다음엔?]
[글쎄..아직 모르겠소]

  그가 한 입 가득 살점을 뜯어먹으며 대답을 하니 안 그래도 짧은 대화가 더 짧아졌다. 나는 먹기가 겁나 그저 바라보았다.

[저도 먹고 싶어요]

  아가씨가 수로를 훌쩍 넘어 다가왔다. 도토리묵 장수는 놀라지도, 쫓아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 마당의 주인이 자신인 듯 행동하니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건 먹으면 배탈 나는데..]
[집에 개망초 잎 말린 게 있으니 괜찮아요]

  둘 다 걱정 없다는 듯이 열심히 먹는다. 양동이 가득 든 물고기가 차례로 구워지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간다. 어릴 적 먹던 구운 뱀만큼이나 냄새가 유혹적이고 매력적이다. 바람이 내 쪽으로 불어오면서 그 냄새가 코를 찌른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갑자기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멍멍 하는 소리에 고개를 반대로 돌려보니 어느 결에 장군이도 신나게 먹는 게 청산 할매가 또 농을 하셨지 싶다. 먹어 탈이 날 것이면 장군이가 저렇게 덤비겠는가. 

[사람이 먹기엔 안 좋은데..]

  도토리묵 장수는 마치 자신은 사람이 아닌 양 한마디 한다. 나는 손에 든 노릇한 물고기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 입 베어 물었다. 어차피 백수인 거 병원에 가도 좋으니 일단 먹고 보자는 마음도 조금 들었고, 사실 그 보다는 배고프다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아아, 이 맛은 처음이다. 음식 잘하기로 소문난 어머니도 이런 생선 구이는 못했다. 대체 어떤 물고기이기에 이런 맛이 나는 걸까..말 그대로 먹고 죽어도 좋을 맛이다. 야들야들한 살점 또한 입 안에서 씹을 필요도 없게 살살 녹아내린다. 만약 할매 말을 듣고 안 먹었다면 나는 이런 맛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죽을 뻔 했다. 하여 먹고 또 먹고..먹고 또 먹고..도토리묵 장수는 계속 물고기를 잡고, 아가씨는 굽고, 나와 장군이는 먹었다. 새벽이 오도록 우리는 신나게 먹었다.

[멍멍 멍멍]

  갑자기 장군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짓는다. 그와 동시에 땅이 울렸다. 지진이다. 이번엔 이 근처가 진원지인지 제법 세다. 도토리묵 장수와 아가씨는 서둘러 가버렸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연못을 바라보니 물이 출렁인다. 물고기들은 우리가 다 잡아먹어 텅 비었지만 수면은 여전히 은색 빛이 가득하다. 무섭게 자라 있던 풀들이 꺾이고 연못의 물이 소용돌이를 치며 조금씩 빠진다.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뱃속이 아파온다.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가려다가 그 나마도 못 움직일 정도로 심각하게 아프고 당겨 마당에서 바지를 내렸다. 새벽이라 아무도 없으니 다행이다. 뽕뽕..하나씩 둘씩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내가 변태라서가 아니라 뱃속을에서 나오는 배설물의 소리가 이상하여 왠지 배설물스럽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멍멍 멍멍]

  장군이는 여전히 짓는다. 그것들은 내가 밤새 먹은 은색 물고기였다. 전혀 소화가 되지 않은 채, 입으로 조각조각 들어간 것들이 장을 거치며 다시 합체를 하였는지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어 심지어는 파닥거리기도 한다. 장군이는 갑자기 물고기들을 물더니 사라지고 있는 연못에 넣어주었다. 나도 얼른 옷을 추켜 입고는 같이 물고기를 던져 넣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사태가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지 말라고 했지]

  겨우 다 보내고 연못마저 사라진 뒤에야 그대로 주저앉아 땀을 닦았다. 조용히 다가오셔서 씨껍데기 막걸리 한 사발을 내미는 청산 할매.

[그 놈들은 먹어봤자 배앓이만 하다가 도로 나와]
[할매는 어떻게 아세요? 드셔보셨어요?]
[살다보면 다 아는 법이야, 내 나이가 몇인데.. 꼭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남]

  할매는 내 잔을 뺏어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키고는 장군이와 함께 돌아가셨다. 아침 햇살이 이제는 맨땅이 된 마당을 환하게 비춘다. 안개도 걷혔고 다른 때처럼 잡초들도 제자리를 찾은 모습이 반가워서 잠시 동안은 뽑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뭐든지 항상 있는 것 보다는 없어졌다가 찾았을 때 더 소중한 법이니까. 빙그레 웃으며 돌아서는 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선배~밤 새 배가 아파서 고생하다가 설사를 얼마나 했는지..변기 안 막힌 게 다행이에요]

  운좋게 물고기 재생산 경험은 하지 않았나보다. 다음에 오면 맛있는 것을 대접해주겠다고 말한 뒤 통화를 마쳤다. 저 멀리서 아저씨~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괜찮았는지 물어보아야지..하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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