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나는 사법 고시 2차에서 떨어졌다. 교직을 그만둔 후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사이 머리가 녹슬었는지 계속 고배의 잔을 마셨다. 몇 번의 실패가 이어지자 이 길 역시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몸도 점점 쇠약해져 낙향을 결심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폐가로 전락했던 집을 대충 청소하고 마당의 풀도 뽑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고 보니 이게 또 살만하여 한 달 정도 있을까 계획하고 내려온 게 어느덧 석 달이 되어간다. 결혼에도 실패하여 혼자인데 불러주는 이 없는 서울에 굳이 다시 갈 이유가 없다.
[권선생, 다 큰 어른이 서리를 왜 해?]
[할매..못 본 척 해주세요]
[냉큼 내려와. 거기 뱀 많아]
그 말에 깜짝 놀라 자두나무에서 내려왔다. 길가를 걷다보니 누구네 나무인지는 모르겠으나 때 이르게 익은 자두들이 제법 보였다. 올 해는 햇볕이 매우 강하고 비가 적어 농작물들이 여느 때보다 빨리 익는 중이다. 생각 없이 바라보던 길에 갑자기 따 먹어보자는 장난 끼가 발동해 한 개, 두 개 근처의 것을 따다보니 어느 결에 나무에 매달렸다. 산에서 내려오시던 울산댁 할매가 그런 나를 보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부르셨다.
[진짜 뱀이 있어요?]
[그럼! 여긴 산이 바로 뒤라 사람 사는 데까지 잘 내려와. 항상 조심 해야돼]
그리고 보니 낙향 한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마당에 죽어 있던 뱀을 발견했다. 또 어떤 할매는 상추 뽑다가 뱀에 물려 보건소로 달려가기도 했다. 여긴 참 생각외의 사건들이 많다.
[개 사~개 사~]
대청마루에서 무더위라고 중얼거리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데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아는 개장수가 있었나..하며 중얼거리는데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개 사~개 사~]
도로를 내다보니 그 개장수는 봄 밤에 만났던 도토리묵 장수다.
[묵 팔던 분 아니신가요?]
[묵도 팔고 개도 사고..장사를 골라가면서 하면 안 되지]
대화는 나랑 하지만 눈은 수로에 빠진 장군이를 본다. 순식간이라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입맛을 다셨다. 나는 얼른 수로로 뛰어들어 장군이를 구해냈다. 장군이 역시 도토리묵 장수가 무서운지 꼬리를 말고 재빠르게 사라졌다.
[고 놈 팔지 그래]
[청산 할매네 개라 곤란해요. 그리고 할매가 팔 분도 아니시고요]
[개 사~개 사~]
도토리묵 장수는 멀어져 가면서도 매우 아쉬운 듯 장군이가 사라진 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러다 밤에 장군이를 납치해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곧 복 날이니까 개장수들이 돌아다니지]
[장군이가 딱 좋은지 자꾸 팔라고 하던데요]
[나무관세음보살]
청산 할매는 굽은 허리로 일도 참 잘하신다. 엉덩이에는 포대자루를 깔고, 밀어서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며 밭을 파헤친다. 보고 있자니 오동통한 감자가 쏙쏙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강원도는 아니지만 어찌 그리 감자가 실한지 쪄먹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감자밭 너머에 서서 말을 주고 받는데, 포대에서 여러 개를 꺼낸 할매는 나에게 주셨다.
[감자 가져가]
[할매가 고생해서 캔 건데..괜찮아요]
사람 인심이 그런 게 아니라며 내 손에 듬뿍 얹어주시는 바람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조심히 돌아왔다. 감자를 씻어 불 위에 올리고 나니 김치랑 같이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학마을 살이 3개월에 시골 사람이 다 됐다.
그렇게 먹고 한 잠 늘어지게 자고나니 또 어느 결에 하루가 다가고 밤이다. 오늘은 사실 내 생일이라 문득 엄마가 만들어주던 메밀전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급격히 가난해져 생일이라도 뭔가 특별한 것을 해줄 가능성이 없었지만, 내가 서울로 가기 며칠 전 생일에는 닭을 잡아주셨다. 철없는 어린 아이니 왜 엄마가 먹지 않고 바라만 보는지 생각도 못하고 그저 좋아라 싹싹 발라먹었다. 그 백숙의 맛..이젠 어디를 가도 그 맛과 같은 게 없다.
다음 날은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게 딱히 돌아다니기도 뭣하여 오랜만에 책이나 읽으려고 대청마루에 자리를 잡았다. 몇 장이나 읽었을까 청산 할매가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시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장군아~장군아~어디 있냐?]
[또 장군이 없어졌어요?]
[어젯밤에 못 나가게 묶었는데 일어나보니 없어]
[어디서 물고기라도 잡고 있나 보지요, 걱정 마세요]
[이번엔 두 줄로 묶어서 못 빠져나올텐데..아무래도 잡혀 갔나보이, 불쌍한 놈. 나무관세음보살]
할매네 집 마당을 보니 정말 두 줄로 둥글게 묶어두었던 자국이 그대로 있다. 마치 몸만 쏙 빠져나간 듯 해 잡혀갔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었다. 다리 위쪽으로 걸어가는 할매를 바라보며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장군이가 사라져도 사람은 먹고 자고 싼다. 할매 역시 강단이 있는 분이라 비가 그치자 곧 마음을 다잡으시고 밭일을 가셨다. 여전히 불경을 외우시며 작물을 돌보셨다.
그날 밤 오랜 만에 동네 마실을 나갔다. 바람이 선선하여 집에만 있기 아쉬운 마음 때문에 다른 때와는 달리 마을을 벗어나 가본 적 없는 곳까지 걸었다. 얼마를 갔을까 저만치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그 마을 누군가가 장작불을 만든 모양이다. 삼복더위에 참..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도토리묵 장수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그가 이 근처에 사는 모양이다. 나는 왠지 모를 생각에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이~이리로 오슈]
내가 눈에 들어왔는지 도토리묵 장수는 손을 흔들었다. 몇 몇의 남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폼이 한창 술판이다.
[제가 끼어도 되나요?]
[그럼그럼. 학마을 권선생 아니요? 맞지? 그럼 끼어도 돼]
처음 보는 구릿빛 피부의 할배는 나를 잡아 앉혔다. 그리고 백숙을 내놓았다. 하도 고왔는지 사그라져 형체는 알기 어려웠으나 국물을 떠먹으니 서울로 가기 전날의 어머니표 그 백숙이었다.
[개는 사셨어요?]
[아~샀지. 시골에서야 개가 천지삐까리인데, 뭘]
[네..그럼 혹시..학마을에서도?]
뼈를 발라먹던 도토리묵 장수는 내 질문에 말없이 눈을 맞추었다. 몇 초 쯤 후에 다른 사람에게로 눈을 돌렸지만 과연 장군이를 잡아간 건지 아닌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기도 멋해서 더 물어보지도 못하고 고개 숙인 채 내 앞에 놓인 백숙에만 집중 하였다.
[입에 맞나보네. 더 줄까?]
구릿빛 할배는 씩 웃으며 국자를 들어보였다. 나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은 심란한데도 음식은 잘 넘어가는 게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장군이보다 백숙이라니..청산 할매 보기가 미안하다.
[근데 이놈은 얼마야?]
[그냥 드소. 신세진 거 갚는 거라 생각해주시면 더 좋고..]
[복날인데 장에 내다 주면 값도 수월찮을 것을 이래도 되겠나?]
[신경 쓰지 마시고 드소]
도토리묵 장수와 구릿빛 할배의 대화가 왠지 이상했다. 목을 타고 올라오는 전율에 순간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왜 서울에서 그렇게 찾아다녀도 어머니표 백숙과 비슷한 맛을 찾을 수 없었는지..나는 휘적휘적 일어나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은 채 만 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표 백숙은 백숙이 아니었다. 바로 보신탕이었다. 뽀얗게 우려내어 다 사그라진 모습에 내가 백숙이라고 먼저 말하며 달려들자 어머니는 정정할 수 없었다. 오늘밤 내가 먹은 음식의 맛이 거의 흡사한 걸 보면 이곳 사람들은 복 날에 사그라질 정도로 끓인 보신탕을 먹는 모양이다. 어쩌면 오늘 내가 먹은 것은 장군이였을지도 모른다.
[할매..제가 아무래도..]
[나무관세음보살]
청산 할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경을 외웠다. 가끔 할매는 내 속을 아는 것처럼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신다.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비록 매일 수로에 빠져도 장군이는 할매의 소중한 개였는데..찾아줘도 시원찮을 판에 나도 같이 먹은 것 같으니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낼 비올 거야, 빨래 걷으시게]
청산 할매는 잠시 하늘을 쳐다보더니 들어가셨다. 나만이 길가에 홀로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할매의 굽은 허리에 장군이가 매달린 듯하여 쓸쓸해졌다.
다음 날은 새벽부터 비가 쏟아졌다. 수로에 물이 넘쳐 삽을 들고 뛰어들었다. 버버리 할배도 같이 도와주어 좀 수월하였지만 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 온 동네 수로를 다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물고기 한 마리가 떠내려 오는 걸 목격했다. 잠시 후 또 한 마리가 온다. 이건 마치 누군가가 물고기를 물에 던지고 있던지, 혹은 몰고 오는 것 같이 느껴진다. 고개를 갸웃하며 지켜보는데 물고기들 뒤에는 포부도 당당하게 허우적거리며 물속을 들락날락 하는 장군이가 떠밀려오는 게 아닌가!
[장군아~]
나는 너무도 반가워 물이 왕창 불은 수로로 뛰어들었다. 장군이는 익사 직전인 듯한 포즈로 눈만 깜박이다가 나를 보고는 반가운지 짓는 자세로 입을 벌렸다. 물론 그 순간 물을 마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엉금엉금 다가가 장군이를 옆구리에 끼고 수로를 빠져나왔다. 청산 할매에게로 달려가는 데 다리 너머로 도토리묵 장수가 우산을 쓰고 지나간다.
[어이~개 팔 텐가?]
[아뇨! 우리 동네에는 팔 놈이 없으니 다른 데 가보세요]
도토리묵 장수는 큰 소리로 웃었다. 열심히 비를 맞으며 뛰어가다 보니 청산 할매가 집 앞에서 기다리시는 게 보인다. 역시나 청산 할매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