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마을과 제일 가까운 도시인 영주는 2일과 7일에 장이 선다. 오늘이 마지막 주 27일이니 즉 장날이다. 자명종 소리에 일어났지만 어두운 느낌에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밖은 비가 제법 내린다. 옷을 대충 입고 옆집에 가보니 청산 할매는 부지런하게 장에 갈 차비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신다.

[날이 많이 궂은데 안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정도 같고 뭘..빨리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게]

   오른 손에는 장바구니를, 왼 손에는 때가 묻은 지갑을 꼭 쥐신 게 말린다고 안 가실 분이 아니다. 며칠 전부터 장에 가면 서울에 보내실 것을 사 오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천둥 번개가 처도 가시리라 짐작 했다. 그러나 고령의 어르신이라 걱정스럽다. 동네에 노인 분들만 있다는 건 운전을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니 장날용 특급 버스를 타고 우르르 나갔다가 시간 안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제가 같이 갈까요?]
[뭐 하러?]
[장 구경도 하고..겸사겸사요]

  꼬리가 붙으면 원하는 대로 다니기 어렵다며 한사코 만류하신다. 어찌나 독립심이 강한지 호미처럼 굽어 불편한 허리에도 웬만한 일로는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옆에서 보면 아슬아슬하다 싶은데도 곧잘 이곳저곳 다니시는 성격이라 오늘도 혼자 편하게 다녀오시겠다고 선언하신다. 하는 수 없이 꼭 2시 차로 돌아오시라고 부탁드렸다.  


  동네 어르신의 과반수를 실은 장날용 특급 버스가 출발하자 우산을 쓰고 다리까지 걸어갔다. 마을에서 제일 안쪽에 살기 때문에 뒤로는 울창한 숲 속 산책로요, 앞으로는 3분 거리의 개울가와 다리가 있어 유유자적한 삶을 살기에는 더없이 좋다. 다만 이렇게 비 오는 날은 문제가 생긴다. 개울물이 지나가는 수로가 집 마당과 도로의 경계 사이에 자리 잡아 물이 넘치기도 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떠내려 온다. 게다가 비가 많이 오면 수로가 막히지 않게 삽을 들고 뛰어들어야 한다.  


  점심때가 지나면서 비가 거세졌다. 수로의 물도 상당히 차올랐다. 물론 아직은 수로 속으로 들어가야 할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다 싶지만, 할매가 아직 돌아오지 않으셔서 마음이 불편했다. 학마을은 평일에 버스가 3번 정도 들어오는 지역인데, 작년에 집단 건의가 통과되어 장날은 4번 운행한다. 이런 이유로 장날용 특급 버스라 부른다. 동네 분들은 아침 8시의 첫 차를 타고나가 보통 2시 버스로 돌아온다. 만약에 장을 더 봐야 한다거나 다른 일 때문에 늦어지면 막차인 5시 버스를 타기도 하지만 다 같이 수다를 떨고 싶어 2시 버스를 대부분 이용한다.

[청산 할매는 같이 오지 않으셨어요?]
[몰라. 안탔어. 울산댁~봤어?]

  슈퍼 주인 할매가 물어보니 같이 내린 어르신들이 모두 고개를 흔든다. 다들 별일 없을 테니 좀 있어보라며 마을로 들어가는데 나는 망설여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비가 갑자기 더 심해져서 수로를 확인하려고 집 앞으로 갔다.

[멍멍, 멍멍]

  어찌된 영문인지 수로 속에는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반쯤 몸을 담근 채 애처로이 운다.

[너 왜 거기에 있냐?]
[떠내려 왔어요]

  물론 말을 할리 없으니 혼자 묻고 답하며 꺼내들었다. 얼핏 봐도 똥개였다. 잘 키우면 복 날감으로 딱 좋을 황구다. 구출된 게 감사한지 얼굴을 열심히 핥는다. 그 녀석을 대청마루에 내려놓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나가기 전에 시계를 보니 4시 50분. 막차가 좀 있으면 오겠다 싶어 도로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나는 어릴 때 엄마가 장에 가면 안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듯하다.

[왜 이렇게 늦게 오세요?]
[왜? 뭐 잘못됐어?]
[다들 돌아오셨는데 할매만 안 오셔서요]
[버스 끊기면 택시 타고 오면 되지. 차야 천지삐가리인데 뭘 걱정해]

  유쾌하게 웃으시며 쓸데없이 걱정한다는 소리를 하시니 마음이 살짝 놓였다.

[야야~너 거기서 뭐해? 빨리 나와라]

  할매는 다리를 건널 쯤 개울가를 보면서 소리치셨다. 그에 나도 바라보니 아까 내가 구해줬던 똥개가 개울 한 가운데서 우리를 올려다보며 우는 소리를 낸다. 

[아는 개에요?]
[내가 장에서 산 놈이야. 없어져서 찾아다녔는데 벌써 와 있었구먼]

 어떻게 다시 물에 빠져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할매 성화에 풍덩 뛰어들어 구해왔다. 사실 개울은 무릎 정도 오는 깊이라 풍덩이라고 표현하기는 창피하지만..

[이 놈 키워서 잡수시게요?]
[에끼. 나무관세음보살]

  할매는 흉한 소리 한다며 똥개를 뺏어들고 먼저 걸어가셨다. 나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따라갔다. 똥개는 다음 날부터 비어있던 개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름은 장군이.

[무럭무럭 커서 장군처럼 되라~]

  할매는 남은 음식을 장군이에게 줄 때면 그렇게 말을 하신다. 그런데 장군이 되어야할 놈이 자주 물에 빠진다. 어떻게 목줄을 빼고 나가는 건지 항상 사라져 할매 성화에 찾아보면 수로 속이나 개울물, 때로는 저수지에서 허우적거린다. 이곳에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똥개 구하는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되니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사람 사는 일이다.

[복 받을 거야]

  청산 할매는 매번 구해주는 게 고마운지 감자만두를 만들어주셨다. 이건 콩을 밖아 넣은 강원도식 음식이라 할매가 어떻게 아는지 궁금했지만 다음에 물어보기로 했다. 굉장히 뜨거워 끙끙 데느라 입을 열기 어려운 상황이다. 먹으면서 슬쩍 개집을 보니 장군이가 없다.

[입천장 홀랑 까지니까, 조심해서 먹어. 그나저나 장군이 고 놈도 참..]

  머리를 흔들며 돌아가는 할매를 보자니 휘어진 허리가 걱정으로 더 굽은 것처럼 보였다. 감자만두를 담았던 그릇을 그냥 돌려드리기가 미안해져 호박엿을 한 주먹 넣어가지고 나왔다. 옆집으로 가는 길에 집 앞 수로를 내려다보았지만 장군이는 없었다. 할매네 문 앞에 그릇을 내려놓고 개울가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장군아~장군아~]

이상하게도 마을 안에서 장군이가 보이질 않는다.

[수고했어]

  장군이의 행방불명 소식에 청산 할매는 하늘을 한 번 바라본 뒤에 밭일을 하러 가셨다. 과부 생활을 오래하시다보니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 안 할 정도의 강한 성격이 되셨다는 슈퍼 주인 할매 말이 참으로 맞다. 기른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마음을 쓰시던 녀석인데, 사라졌다는 말을 하면 할매가 낙담하실까봐 걱정한 게 우스워졌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 일주일이 지났다. 6월로 접어든 학마을은 파란 자두가 상큼하게 열리기 시작하였고, 나뭇잎의 푸른빛이 햇빛에 반사되어 곳곳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권선생, 이리 좀 나와 봐~]

  해가 져물어가는 저녁이라 얼른 밥을 먹고 치워야겠다싶어 부엌에서 부산을 떨고 있는데 청산 할매의 목소리가 들려 뛰어나갔다.

[헉!]

  장군이었다. 입에 큰 물고기를 문 모습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온 백전노장이다.

[착한 놈, 실한 걸 물어왔네]

  할매 앞에 물고기를 놓고는 유유자적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시더니 감탄의 말을 하셨다.

[저 놈 혼내야하는 거 아니에요?]
[내버려둬. 다 지 할 참이니까..]

  할매의 표정은 장군이가 돌아온 것으로 만족하시는 것 같아 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잠을 자려고 누워 생각해보니 참 이상하다. 학마을은 소백산으로 둘러싸여있어 물도 얕은 편인데 저렇게 큰 물고기를 어디서 물고 온 것일까? 장에 혼자 가서 생선가게를 털었나?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요상하다. 뭐, 할매는 전혀 궁금해 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그 뒤로도 장군이는 종종 사라졌다가 물고기를 물고 돌아왔다. 과연 학마을에 사는 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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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의 한마디 : 영주장..참 정겹고 좋습니다. 인심도 후해요 (사진은 다음 아고라에서 가져왔어요. 주소는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60&articleId=8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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