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떼! 김 써르 - 다정 김규현의 히말라야의 꿈 1 다정 김규현의 히말라야의 꿈 1
김규현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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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는 각기 나라 나름의 문화라는게 존재한다. 문화는 지극히 국수적이어서

가끔 사람을 당황스럽게도 한다. 혹자는 어떤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반세기 그러니까 50여년 정도는 그곳에 살아야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문화는 개방적인듯

하나 보수적이다. 특별히 외부로의 접근과 노출이 빈번한지 못한 곳의 문화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네팔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 이런 지극한 사랑이 없었으면

이렇게 광범위하고 다양하면서도 상세한 기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평생 동지이자 동행이었던 아내를 떠나보내고 저자가 찾은 곳이 네팔이다. 그는 감정을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세계가 그렇게 만났고 그렇게 다가왔다.' 아내의

흔적들은 점차로 멀어져 갔고 그것에 비례해 저자의 가슴은 비어 갔고, 빈자리는 온갖

회한들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렇듯 가슴 절절한 사연들이 1부의 지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 가시게'


2부에서는 현지 상황이나 활동 내역들이 상세히 소개 되는데 열악함의 극치를 달리는 환경이나

교사들의 자질을 논하는 부분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에서는 잠시 멈춰 마음을

달래야 했고, 'Nepali price' 'Tourist price'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는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이며 생존방식임을 알게 되어 예전에 두배 가까운 가격으로 선물을 준비했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네팔을 소개하는 저자는 신이 있다. 가감없이 자신은

네팔을 사랑하고, 네팔리들이 좋고, 네팔 어린아이들이 사랑스럽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유를 물어 보면 '글쎄....'라고 대답한다. 이건 정말 좋아하는거다. 어떤 이유 때문에

좋아하는것은 이유가 사라지면 싫어지거나 무관심해 수도 있지만 그냥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너무 좋아서 꼭집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품위

유지비(아마도 비상금일것 같다) 털어서 아이들에게 교복과 운동복을 사준다. 노란버스

아이들에게 꿀리지 말라고. 이런게 진짜 사랑이다. 


세계유일의 힌두교왕국이었던 네팔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2015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힌두교가 75% 차지하지만 불교16%, 이슬람 3%, 기독교와 천주교 2%, 기타 종교 1%

점차 종교로의 전환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를 온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많은 신들의 이름과 캐릭터들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교리는 복잡하고 어렵다. 듣기에도 생소한 '베다' '우빠니샤드' '요니' '링감' 같은

풍속들은 알맹이를 알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저자는 힌두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대부분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나마 아는 이름인 유지의 신인 비슈누(visunu)

파괴의 신인 시바(shiva) 접할때는 반갑기까지 했다. 네팔인들은 최소한 세가지 이상의

신을 믿는 것이 일반적인데 출신가문의 전통적인 가정신과 출신마을의 전통신 그리고

가문과 사회를 떠나 별도의 인연이 따라 선택하는 자기신이 그것인데 삼신이 동일한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종교적 자유를 누린다. 


마지막 장에서 접하게 부처의 가계도에서 부친의 이름이 '정반왕', 백부는 '백반왕',

숙부는 '곡반왕'이라 번역된다는 새로운 사실은 신기하기도 하고 웃긴 대목이었고 혹시

다른 누군가는 '간식왕' 아닐까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예전에 한번 맛본 적이

있는 우리나라 막걸리와 거의 비슷한 '' '뚬바' 접하면서 입가에 군침이 도는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책은 설명이 친절하고 상세하다. 그리고 쉽다. 어렵게 생각되던 종교적인 부분까지 저자가

직접 가보고 느꼈던 것을 전달하기 위해 썼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다. 네팔에 대해 궁금함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몇번이고 정독하고 싶고 아주 오랜만에 메모를 하면서 읽은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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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
칼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림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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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어떤 사람도 죽음을 벗어 없다.

문제는 남겨진 사람이다. 많이 사랑하고 깊이 사랑할수록 남겨진

사람의 고통은 배가 된다. 아프고 아프고 아프다. 외로움의 깊은 절망을

느끼고 전부를 잃어버린 상실감마저 느낀다. 


저자는 6살에서 7살로 넘어가는 브루노가 엄마의 죽음을 받아 들이는 모습을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들여다 보며 글을 썼다. 아직 죽음이 뭔지 모를 나이이기에

'대체 언제까지 돌아가신 채로 계실거에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브루노에게 죽음은

아직 낯설다. 건너편 죽음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는 엄마가 그곳에서 일을 마치면

돌아 올거라는 확신을 가진 아이의 생각이 귀엽기도하고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다.

아직 자라지 않은 감성이라 표현이 자유롭다. 엄마가 없는 집을 ' 상관없어요.

어차피집은 더이상 집이 아니니까요'라고 말하는 6살짜리 꼬마를 상상해보자.

맑은 눈동자와 앙증맞은 손에 얼굴에는 초콜릿티를 묻힌 장난꾸러기 꼬마가 말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도 이런 시절이 존재 할텐데, 분명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는 아니니까 그런 시절을 거치고 지나왔을텐데 마치 어린시절 없이 훌쩍

어른이 되어 버린 것처럼 생경하다. 그럼에도 카롤과의 입맞춤의 순간은 강렬하다.

숨이 가빠오고 호흡이 곤란해지고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 박동 소리는 대포 소리가

된다. 어린 시절 나도 이랬던것  같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그러나 결국

브루노는 카롤에게 차인다. 


작가의 표현력은 탁월하다. 싱어송라이터의 감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다. 엄마의 부재를 이야기하며 '나와 엄마 사이의 공간을 삼킨다'라는 표현을 쓰며

벌어져서는 엄마의 기억을 표현하기도 하고, 두려움과 염려 속에서 엄마의 장례식날 나던

독특한 냄새를 맡아내는 것을 묘사 보면 문장이 찰지다.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저자의 생각이 뭍어 나오는 부분에서의 깊이는

분명 깊다. 읽는 내내 드는 느낌은 천천히 스며드는 스펀지같다. 옮긴이의 글처럼 문장이 매우

시적이고 서정적이며 원초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개성 강한 글이다. 단순히 죽음만을 이야기

하지 않고 죽음 이후에 남겨진 이들의 삶을 이야기 하는 책은 포장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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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의 작은 역사 - 세상이 나에게 주입한 20가지 불온한 것들의 목록
김성환 외 지음, 인문학협동조합 기획 / 천년의상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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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 무언가를 하지 못하도록 강제로 막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는 어려서 너무도

많은 금지의 홍수 속에서 살았다. 그때 시절 그리 하지 말아야 하는것이 많았는지

지금 젊은 세대들은 상상도 못할 금지들이 넘쳐 났었다. 대표적인 것이 통행금지다.

12 되면 관용차와 응급차를 제외한 모든 차량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이때

인구가 늘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그리고 머리가 길면 안되는지 장발 단속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일을 길거리에서 하고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의 머리카락을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다행이 이때 어렸기에 별로 해당 사항은 없었다) 


책을 읽으며 대부분은 그때 시절에도 있어 왔던 것들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요즘

영화계에서 유행처럼 다루는 마약류들이 한때는 수출 효자 종목이었다는 사실은 이젠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버렸지만 당시 한쪽에서는 마약사범을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던 시절이었으니 요상한 세상이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한편 놀라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것들의 찬반이

참예하게 갈리는 묘한 대척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종북과 친북이 그렇고

동성애가 그렇고 친미와 반미가 그렇다. 상황 논리의 지배를 받으며 이쪽 저쪽으로

쏠리는 같으면서도 묘하게 평행선이다.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반북과 종북,

친미와 반미가 달라지고 권력 집중부에 어떤 종교를 가진 이들이 많이 포진해 있느냐에

따라 동성애에 대한 찬반도 갈린다. 


그런가하면 갑질이나 정신병 같은 것들은 보편적으로 많이 드러나서 하나의 문화를

형성했다. 예전 같으면 ' 그럴수도 있지' 암묵적으로 넘어갔던 일들이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단죄의 대상이 되었고 없이 많은 갑질 피해자들이 자신이 겪은 수모와

울분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기득권층이 대한 조직적이고 집단적이 반발이 어느정도

가능해졌다. 또한 예전엔 동네 마다 ' 모자란 ' 혹은 '바보' 정도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록 정상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같이 어울려 살아갔던 기억인데 어느순간

이들이 사회적 약자가 아닌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이 찍혀 길거리에서 찾아 보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낙인은 정신병 환자의 양산에도 기여한다.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해 보지만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전히 그들은

아웃사이더이고 경계인도 아닌 그외의 사람들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정신병을 감기와

같은 것이며 누구나 걸릴 있고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고 말하는데 그들은 결코 우리

곁에 수가 없다. 마치 주홍글씨의 낙인이 찍힌 사람처럼 격리되고 소외되어서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연스럽게 주입된 불온한 것들이 비단 여기에 실은 20가지 뿐이겠는가. 무수하게 많은

금지된 것들 속에서 지혜롭게 그것들을 선택하고 받아 들이는 주의가 필요 같다.

무엇을 선택하고 받아들이던 그것은 본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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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선물이다 - 조정민 잠언록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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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고난과 고통을 싫어한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와 점점 가까워지려고 한다.

이를 멀리 수도 떼어 놓을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고난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역경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말들을 의지하며 여전히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지나고 보면 고난은 선물이다'

말은 고난을 겪어보고 경험하고 통과한 이들만 있는 말이지 아직 고난 중에 있거나

고난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나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이 가장 힘들고 가장 어려운 길이고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무게에 대한 무거움과 가치 결정은 항상 본인의 몫이기에 다른이들의 것보다는 내가

겪는 고난이 가장 힘들 밖에 없다. 그럼에도 고난은 선물이다. 이건 정말 겪어 이들만

아는 것이지만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되면 고난이 감사한 선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없다. 


'무거운 욕심을 내려 놓는 것보다 편안한 휴식은 없다'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욕심이라는 괴물은 잡식성이고 대식가다. 어느것 하나 만족이라는

것이 없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면 바로 많은 , 좋은 , 것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괴물은 쉬지도 않고 우리를 유혹한다. 그래서 성경은 괴물에 대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1:15)라고 말한다. 죄의 근원이 욕심이라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고정한 기관차처럼

죄와 죽음을 향해 활활 타오르다 결국 자신을 죽이고 만다. 그런데 욕심을 내려놓는 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작은 것부터 버릴 있어야 것도 가능해진다. 처음부터 거창하고 엄청난

것을 하려는 , 이것도 욕심이다. 버려야 있고 버려야 있다. 쉬겠다고,지쳐서 쉬어야

한다고 하면서 두손과 어깨와 등과 머리에 짐을 잔뜩지고 헉헉 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초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인생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맞다. 인생에 지름길은 없다. 분명 인생엔 길이 존재하는데 지름길은 없고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 된다. 대신 우리에게는 이미 승리하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어마어마한 어드밴티지가 주어졌다. 만약 인생에 지름길이 있다고 누군가 속삭인다면

그는 사탄일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한번도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항상 그의 길을 가셨다. 마귀가 시험을 해도 그의 길을 가셨으며 사람들의 반응과 호응이 시원치

않아도 그의 길을 가셨으며 심지어 조롱과 수치를 당하시면서도 그의 길을 가셨고 마침내 그의

끝에서 십자가를 지셨고 위에서 죽으셨다. 여기서 그대로 끝나 버렸다면 우리는 굳이

예수를 믿을 이유가 없다. 분명히 그는 자신이 말씀하신대로 살아 나셨다. 십자가의 부활의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짧고 간결하게 이어지는 잠언의 말씀처럼 강한 도전을 주는 문장과, 내용을 쉽게 이해할수록

있도록 해주는 삽화가 매치된 책은 친절하게도 365문장이다. 매일 매일 문장씩 읽으며

도전하고 묵상하기에 쉽고 편한 책이다. 끝으로 마음에 계속 걸리는 문장이 있어 적어 본다.

"끝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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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신예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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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돌릴까하는 순간 수입이 끊기고 쉬는 것보다 일하는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지금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겪고 있는

아픈 현실이다. 


푹신한 메트를 사서 손엔 리모컨을 다른 손엔 스마트 폰을 쥐고 누우면

천하무적이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컴퓨터 앞에 앉고 싶지 않은 날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도 그렇다, 이런 날은 누가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해도 반갑지

않다. 그냥 처절하게 늘어져서 뒹굴뒹굴 거리는게 너무 좋은 그런날이 누구나 있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저자는 '반백수'라는 독특한 이름의 직업을 소개한다. 분명히

하자. 백수가 아니라 반백수이다. 그냥 노는 사람이나 안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 쉬고 필요한 만큼 일하는 반백수이다. 묘하게 매력있고 솔깃하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마저도 쉽지 않음을 금방 있다. 나름의 능력도 있어야

하고 어느정도 버텨줄 끈기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일을 제공해 마음착한

업체도 있어야 가능한데 어느것 하나 만만치 않다.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자 미래였던 '프리랜서' 어느새 모든이들의 절망이 되어 버린지 

오래인 현실 앞에 '반백수' 분명 솔깃한데 앞에 단어가 하나 붙는다. '지속 가능한'

모두가 불행배틀로 상호 불행 비교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실 앞에 반백수는 분명 매력있다. 

이런 지속가능한 반백수의 삶을 위해 저자는 꾸준한 업데이트를 강조한다. 꾸준히

업데이트 된다는 것은 젊다는 것이고 젊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게으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무작정 받아 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선별해서 신중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라는 것인데 이것이 경쟁력이다. 남과 같아서는 결코 살아

남지 못한다. 분명 남과 달라야 하며 뛰어나야만 지독한 경쟁 사회에서 버티고 견뎌

낼수 있다. 그러면에서 저자는 지금껏 살아남고 버텨서 자기길을 가고 있음에 분명

금수저다.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선택지가 내것인지 남에 것인지

판단이 안설 누구에게나 선택지는 주어졌고 그것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어느

길을 가던, 가다가 돌아 오던, 혹은 삽을 들고 새로운 길을 파든 의지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어떤 선택을 하던 자신의 선택이고 존중받아야할 선택이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없는 사람들을 신경쓰느라 자신의

삶의 기회마저 놓치지 말고 그냥 자기 길을 가자.


마지막으로 저자의 한마디를 적는다. 

"살면서 반드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은 없다. 진지하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

정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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