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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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권 세계의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학문인 서어서문학 교수인 저자는 양면성과

이중성이라는 모호한 정체성을 지닌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을 상실과 희망이라는 잣대로

표현하며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을 노래한다. 


'시가 내게로 왔다' 싯구로 유명한 파블로 네루다는 가르시아 로르카의 '지성보다는 고통에

가깝고 잉크보다는 피에 가까운 시인'이라는 표현처럼 책을 읽고 머리로 글을 쓰는 시인이

아니라 펄펄 살아있는 진짜 인간의 고통을 호흡하며 인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시인이다. 


시란 무엇인가를 언급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영화 ' 포스티노(The Postman, 마이클 레드포드

감독, 1994) 네루다를 우리나라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영화이다. '나를 고발한다(Yo

acuso)'라는 연설과 말을 타고 넘는 안데스 산맥, 작고 아기자기한 풍경으로 기억되던 영화,

역시도 번은 같다. '시네마 천국'에서 시골 극장 영사기사로 분해 진한 감동을 선사했던

프랑스 배우 필립 느와레가 네루다 역을 맞아 열연했다. 


나라마다 언어권마다 독자들과 평단의 사랑과 시선을 몸에 받는 작가들이 존재한다. 독일에

괴테가 있고, 영국에 세익스피어, 이탈리아에 단테, 러시아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스페인에

세르반테스가 있듯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보르레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더불어 파블로 네루다가

있다. 


그의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드러나듯 그는 소외된 시인이었으며 지역에 한계에 갇힌 그의 안에는

고통의 비가 내렸고 미국의 지원으로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난 몇일후 그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네루다는 비록 스탈린을 신봉했던 스탈린주의자(우리 말로 하면 빨갱이라고 할수 있는)였지만

한순간도 미적 자율성과 창조적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은 자유로운 예술혼의 소유자였고 리얼리즘

그너머를 꿈꾼 리얼리스트였다. 네루다의 자유로운 예술혼은 그의 여성 편력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그의 시집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실린 구절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 ' 봄이

벚나무와 하는 행위를 너와 하고 싶다'. 얼핏 선정적이나 퇴폐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시를

음미하다보면 그런 느낌은 사라지고 오히려 자연의 신비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해 말하는

네루다의 마음을 만날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때로는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el hombre invisible)'로서 시적 대상 뒤로 모습을 감추고, 그럼으로써 시인의

목소리가 돋보이는 대신 집단성과 익명성이 담보되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성을 지우고 나의 우월성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더불어 시인의 노래는 이제 이름없는 민중들의 침묵의 언어와 결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노래는 모두가 하나 되게 하는 노래

모든 이들이 함께 부르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노래'


이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영혼인 파블로 네루다는 죽음을 앞두고 다시 한번 본연, 본질,

자기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그의 글은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눈에

띄게 짧막해져 함축미와 깊은 여운을 준다. 마치 하이쿠(3 17자로된 일본의 단시) 고승의

법어와도 같다.저자는 지면의 70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네루다를 다루지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박 겉핥기'이다. 그만큼 그의 세계는 깊고 넓다. 


책을 받아들고 단숨에 네루다 부분을 두번 읽었다. 다리오, 비예흐등 다른 유명 시인들이

등장하지만 유독 네루다의 감성과 인식이 좋다. 그래서 번을 읽어 봤다. 여전히 좋다.

냄새 물씬 나는 그의 시는 어쩌면 절망속에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있는 인간과 호흡하며 꿈과

희망을 빚어내는 라틴 아메리카의 독특함이 들어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파블로 네루다를

만난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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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조련사와의 하룻밤 - 어른들을 위한 이상하고 부조리한 동화
김도언 지음, 하재욱 그림 / 문학세계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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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이상하고 부조리한 동화'

발상이 재미있다. 아니, 어쩌면 어른 동화이다. 어른들이 읽는 동화라는 말이 어색하긴 하지만

만화책도 보는데 동화책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책을 마주한다. 


장부터 강렬하다. '사색하는 물푸레 나무'라는 제목을 가진 장은 삽자루가 되어야 하는 운명을

가진 나무 이야기이다. 자신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다른 이들의 운명을 부러워하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나무의 사색은 우리네 삶이다. 수저를 말하기 이전부터 우리에게 존재한 '차이'

도저히 극복이 안된다. 받아들이고 순응해야하는 숙명과도 같다. 그래도 나무는 끝까지 자존심을

지킨다.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해야 하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나무는 자존심마저도 우습게

내던지는 우리보다 나은 존재이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함부로 그것을 채워주려 해서는 안돼.'

그냥 놔두면 좋겠다. 도와 달라고 말할 까지 그냥 내버려 두면 좋겠는데 우리의 오지랖은 꼴을

못본다. 어떻게든 참견하고 개입해서 뭔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자기만족 때문에, 자기위로 때문에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의 마음과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위로'라고 말한다. 쓸데없는

참견이고 오지랖이고 오버하는거다. 상실의 아픔, 그것도 자신이 가장 소중한 대상을 잃어 버린이에게는

그냥 함께 있어 주면 된다. 울면 같이 울면 되고, 침묵하면 같이 침묵하면 된다. 아마 순직한 소방관도

자신이 문제가 생기면 친구를 찾아가 보라고 이유도 그래서 일것이다. 물론 우리의 '부조리한 황홀'

다른 것을 상상한다. 


한눈에 반해버린 사랑이 있다. 나도 그랬다. 서울로 전학와서 혼자 지내야 하는 시기에 나에게도 금기된

사랑이 존재했다. 최소한 그때는 그게 사랑이었다. 이건 사람만 말할 있다. 오직 그만 보였고, 오직

그와 함께 있고 싶었고, 오직 그의 생각 뿐이었다. 비록 나이 차가 많이 나고 누구의 엄마이지만 그땐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성도 도덕도 윤리도 우리를 제어하지 못했다. 아마 여교사도 그랬던것 같다.

아이의 싱그러움과 신선함이 그리고 속에서 풋풋하게 풍기는 남자다움이 그를 사로 잡았을것 같다.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말한다. ' 아이를 사랑했다고' 나는 사랑을 인정하고 싶다. 최소한 순간만은

사랑이라고. 세상의 어떤 시선과 손가락질 앞에도 당당할 있는 유일한 무기인 '사랑' 했다고. 


저자는 우리의 감성이 메말랐고 상상력은 바닥을 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우리에게 '발칙한 동화'

통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일상의 비애와 무너진 성윤리를 비꼬듯이 자유분방한 성을

이야기하며 안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금지된 '인가 '누리는 '인가에 대한 결정은 오롯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어느 쪽을 선택하던 그게 답이다. 그렇게 살면 된다. 7편의 동화는 다른듯 같은

작품이고 글들은 섬세하고 예리한 하재욱의 그림으로 빛을 한다.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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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2가지 충격 실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이지윤 옮김 / 갤리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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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확신과 1% 의심,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어느것도 확정적인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우린 99% 확신의 편에 선다. 그러나 법은 우리에게

1% 의심도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어느 사람도 억울하게 처벌 받지 않아야 함에도, 정의라는

미명 아래 공정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않은 판단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빠지게 하는지

모른다. 이때 선과 악은 개념마저 모호하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보니 선악을 구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검사는 법대로 죄를 따져 물었고, 변호사는 법대로 권리를 지켜주었으며, 판사는 법대로 판결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억울하고 억울함은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고통을 가져온다. 저자는

형법 전문 변호사로서 자신이 다룬 2500여건의 사건 가장 충격적인 12가지를 기록하며 법의 사각과

이면에 감춰진 진실과 추함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모든 인간은 앞에 평등하다'

정말 평등할까? 작금에 벌어지는 행태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평등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저런

정황으로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이들의 대부분은 가진자들이다. 돈이든, 권력이든, 하다못해

빽이라도 가진 사람들. 그래서 탈주범 지강헌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외쳐 이슈가 되었으나 현실은

여전히 불평등 사회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적용 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

'촉법소년' 독일에서도 존재하는 같다.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였지만 10 이상 14 미만의

소년은 소년부의 보호사건으로 처리한다는 대한민국 소년법 4 1 2호는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의

범죄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 대부분 기소하지 않는데 실상 이로 인해 많은 불법적인 일들이 자행되고

있음은 주지할 사실이며 영악할대로 영악해진 아이들의 심리와 어른 못지 않은 잔악성을 보이는 행동을

형화되고 굳어진 법조문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명백한 사건이고 범인 임에도 이를 입증할 증거가 존재하지 않아 풀려나는 범죄자, 위법한 방법으로

범죄자를 기소하려다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경찰, 범죄 피해자인데도 보호 받지 못해 가해자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피해자, 이들 모두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법리적 해석에 의해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입은 이들이다. '처벌'이라는 것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인데 여기에는 절대선과 절대악이

아닌 '' 의한 판단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법은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누더기와 같아 너무도

쉽게 빠져 나간다. 


이런 이들을 상대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다.'

언젠가 정말로 '모든 사람이 앞에 평등한'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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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러닝 레볼루션 - AI 시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테런스 J. 세즈노스키 지음, 안진환 옮김, 권정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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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Learning'

딥러닝은 사물이나 데이터를 군집화 하거나 분류하는데 사용하는 기술로 이를 위해 많은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비슷한것끼리 분류하도록 하는 기계학습이라는 방법이 고안됐다.

딥러닝의 핵심은 분류를 통한 예측이며,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여 컴퓨터에

먼저 정보를 보여주는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 일정한 배움의 과정없이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비지도학습(Unsupervised learning)'으로 나뉜다. 현재 구글과 페이스북, MS,

트위터등에서 앞다투어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추세이다.


수학과 컴퓨터공학, 신경과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머신러닝의 분야이기도 딥러닝은 인공지능을

창출하는 방법에 관한 두가지 시각이 경합을 벌이던 1950년대의 인공지능 태동지점이 기원이나

발전을 거듭한 딥러닝은 운전, 번역, 청취, 진단, 투자, 법조, 포커, 바둑, 지능강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세돌과 커제등 세계최고의 바둑기사들과 대결을 벌여

무참하게도 깨버린 '알파고' 변화의 축이다.(이후 알파고를 개발한 마인드는 2014

6 달러에 구글에 인수되어 개발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안공지능과 관련한 모든 기술은 가공할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인간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현재 우리는 이에 대한 마땅한 지식이 없다. 말은 지금 우리가 이것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으며 별로 관심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빅데이터, 초연결, AI, IoT,

자율주행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머신러닝과 딥러닝의 파도는 이미 세상을 뒤엎고 있다. 


책은 머신러닝의 역사, 알고리즘, 인공지능의 미래를 권에 담고 있다. 60 페이지의 각주만

보더라도 책이 얼마나 많은 지식과 학문적 토대에서 쓰여졌는지 있다. 솔직히 지금의

나에겐 저자의 친절한 용어설명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책이다. 그럼에도 혁신적 기술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평생의 삶이 녹아 있는 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 러닝' 있는

그런 책이다. 


양날의 검과 같은 인공지능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분명 우리 모두의 노력과

학습이 필요하다. 책은 그런 우리에게 첫걸음을 내딛게 하는 좋은 교과서이다. 초연결과

초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내용이며

누군가의 말처럼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은 분명 차이를 가질것이고 차이는

삶의 질과도 연관된다. 

결국 우리에게 놓인 선택지는 학습하고 익혀서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보다

못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것의 지배를 받을 지 뿐이다. 나는 그것을 지배하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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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도 괜찮은 사람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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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날이 있다. 세상 가운데 혼자 내버려진 듯한, 아무도 내편이 없다는 막막함이 드는,

함께 있지만 여전히 외로운 그런 날이 있다. 저자는 이럴때 마음의 커튼을 친다고 말한다.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간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냥 달린다. 그렇게 참을 달리다 보면

때론 바다에 있고, 때론 깊은 산중에 있고, 때론 강가에 있으며 정말 가끔은 앞인

경우도 있다. 


아무리 끝을 세우고 걸어도, 고개를 숙이고 조용조용 숨을 쉬어도 어디든 불쑥 찾아오는

불운처럼 우리의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어느것 하나 정해진 것이 없기에 그때 그때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삶이 비록 나를 힘들게 하고 정신없게 만들지라도 우린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양이 정해져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그것 마저도 미정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체를 휘감을 만한 크기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언제 왔었는지도 모를

만큼의 생채기만을 남긴다. 불운을 견디고 견디고 견뎌내면 좋은 미래가 있을것이라는

확신 마저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견딜 뿐이고 다만 버틸 뿐이다. 그래서 '오래 버티는 사람'

이기는 사람인가보다. 


그렇게 버티다 우리는 기차를 놓친다. 물론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차는 내내 아쉽다. 기차를 놓치듯 우리는 속에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산다.

그것들이 그리 아픔과 상처가 아니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남겨진 흔적은 너무 크다. 우린

상처를 덮고 보듬으며 시간을 보낸다. 보내진 시간들이 모여 하나의 순간이 되고 순간은

우리의 삶의 작은 조각으로 남는다. 우린 그렇게 살아 간다. 


'혼자 일때도 괜찮은 사람' 분명 좋은 사람이다. 자신 혼자의 시간에서도 괜찮은 사람은 타인과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자신과의 시간에 최선이기에 타인과의 시간에도 역시 최선이다. 자신

혼자만의 공간에서 괜찮은 사람은 타인과 함께하는 공간에서도 괜찮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함께하는 것에 대한 기쁨과 맛을 알기 때문이다. 종교적 질문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는 질문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는 순간 그리스도인일 있다면

사람은 누구와 함께 있어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의 질문이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은 어느누구와 함께 있어도 당당하기 때문이다. 


책은 진솔하다. 그만큼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아픔과 외로움과 안타까움이 그대로

들어 있다. 아픈 생채기를 드러내면서 자신보다 아파하고 힘들 사람들에게 던지는 작은

외침이다.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책은 투박하다. 만들어지고 짜여진 글처럼 세련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간다. 자신의 이야기인양 감정이입이 되고 같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무심코 '' 던지는 한마디가 아주 오랜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돌아오는 나를 상상하는' 저자처럼

옛날 어느곳으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나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자조 섞인 마디를 적어 본다.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지 않으면 누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 줄까' 그렇다 우린 괜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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