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7가지 죄 -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할
한기채 지음 / 두란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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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전하는 자는 두렵고 떨림으로 강단에 서야 합니다. P36

설교는 설교자 자신이 자기 메세지를 삶으로 구현하고 호흡해야 합니다.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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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근심거리가 되어 버린 교회는 더 이상 존재 이유를 갖지 못한다. 지금의 교회가 그렇다.

사람들에게 교회 혹은 예수의 이야기를 할라치면 손사레를 치며 거절하며 '너나 잘 믿으세요'라고

한다. 예수의 권위와 명예는 이미 길거리에 버려져 아무에게나 짓밟힌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무너진 예수의 권위에 대해 염려하지 않고 여전히 복만 빈다. 철저히 잘못됐음에도 대충

넘어가려하고, 철저히 타락했음에도 은헤로 치부해 버린다. 이런 현실 앞에 저자는 칠죄종(七罪宗 ,

seven deadly sins )을 예로 들며 우리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 땅의 교회는 완전할 수 없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지만 완전한 존재는

아니다. 이 말은 우리는 얼마든지 죄를 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문제는 죄 이후다.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죄를 회개할 의지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회개'라는 엄청난 축복이 주어졌다. 문제는 그 축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말'하시겠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죄를 알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특별히

목회직을 맡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한다.

첫장부터 강렬하다. '영적 남용'. '남용'이란 '일정한 기준이나 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씀' 혹은 '권리나 권한

따위를 본래의 목적이나 범위를 벗어나 함부로 행사함'을 의미한다. 함부로라는 말은 자기 마음대로라는

뜻이다. 힘을 가진 자는 그에 걸맞는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목회자은 영적 능력을 가진 자다. 영적

능력이란 성령의 은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주님께 부여 받은 직분의 영광을 말하기도 한다.(작자주)

이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영적 남용'이며 이는 부모와 자식간에도, 부부사이에도, 인간관계

속에서도 일어난다. 비단 목회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평신도 리더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적

남용은 영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가 그 권위를 이용하여 신자들을 강압하고 조종하고 착취할 때 발생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목적이나 뜻을 합리화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영적 협박으로 신자

길들이기를 시도하며, 온전한 구원과 축복을 빌미로 온갖 규정들을 만들어 신자들을 죄책감과 의무감에

빠지게 하고, 정죄하고, 통제하며, 자신이나 자신의 교회만 특별하다는 영적 엘리트 주의에 빠져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가지게 하며, 무분별한 은사의 남발로 성도의 유익이 아닌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 앞에 '연자 맷돌'을 기억하게 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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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지적은 정확하다. 현재 한국 교회 성도 교제는 '친교'를 지나쳐 버린지 오래다. 주님 중심의 교제가

아닌 사람 중심의 교제가 되어 버렸다.(저자는 이를 '친목'이라 표현한다) 비단 교회 뿐만 아니라 교단이나

지방회(노회)등 목회자들의 영역에도 어마어마한 '친목'들이 도사리고 있다. 온갖 이름을 붙여 모이고

먹고 즐긴다. 물론 그 대부분의 경비는 성도들의 헌금이다. 참된 교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정작 예수는 여전히 문 밖애 서 계시며 여전히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우리끼리 가지는 친목에 취해

정작 주님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예수가 없는 사귐은 그냥 '친목'이다. 주님 안에서의

교제는 반드시 '흩어짐'이 있다. 모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 그 은혜를 가지고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속 시원한 소리를 한마디 한다. '청년들과 교사들을 교회 안에만 머무는 거룩한

백수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사역의 도구가 아니라 사역의 대상인데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일을

시킨다. 심지어 그래야 복받는다는 소릴 하면서. 그렇게 복 받는 일이면 자기 자녀나 자신이 하면

되는데도 말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고여 있는 물이 썩는 것 처럼 움직이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다. 교회는 이제 '구조선'이 되어야 한다. 구조선은 멈춰있지 않는다. 구조가 필요한

곳으로 신속하게 움직여서 생명을 구한다. 신자들이 교회의 현재라면 비신자들은 교회의 미래이며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구조해서 함께 나누는 것이 '교제'이다. 성도의 사귐으로 그치지

않고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사귐이 세상을 향하고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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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라는 영역처럼 그렇게 쉽게 결점을 감추고 겉모습을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는 다른 직업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는 유진 피터슨의 말에 뜨끔해진다.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께 충실했으며, 자기 양심에 비추어

얼마나 떳떳하며, 얼마나 신자들을 사랑하는지는 자신만이 안다. 내면이 부실하면 밖으로 꾸미게 되고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목회와 영성은 분리 될 수 없다. '목회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는

하나의 직업이 아닙니다'는 헨리 나우웬의 경고가 선명하다. 목회는 교역자 자신의 영성 생활 안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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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구별'되어야 함에도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윤리적 행동에 차이가 없기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채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우리의 무릎이 꿇려야 한다. 다른 사람의 무릎을 꿇리려는 오만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무릎이 먼저 꿇려야 한다. 너나 할것 없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스스로를 쳐서

복종케'하는 일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정 의지가 없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다. 이 책은 우리

목회자들이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저자도 아야기 했듯이 한국 교화의 7대 죄는 우리가 모르는 낯선

죄가 아니다. 이제 인지하고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죄와 실수를 깨닫고 회개와 돌이킴으로 나아가야

한다. 먼저 나부터 회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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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음악가들의 음악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세상 모든 이야기 시리즈
유미선 지음, 최상훈 그림 / 소담주니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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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요 일수도, 구애가 일수도, 혹은 충동적 움직임 일수도, 노래 일수도 있는 음악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해

주며 감정을 만져주는 것이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태고로부터 음악은 사람과는

뗄래야 뗄수 없는 생활이 되었다. 이 책은 그 음악 가운데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부르는 '고전 음악'의 역사와 배경, 작곡가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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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생겨나 밀라노와 로마에 전파되어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노래인 '그레고리오 성가'는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각 지방 예배 의식에서

사용하던 800여개의 성가를 수집하여 정리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단선율로 이루어진

'노래하는 기도'이다. 주된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찬미, 감사, 탄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틴어로 된 가사를 무반주 제창하고 성경의 시편을 주로 인용했다. 여기엔

화음도 없고, 반주도 없고, 강약의 변화도 없고, 음색의 변화도 없고. 악센트도 없고,

규칙적인 리듬도 없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그루브도 없다. 도무지 텅 빈 것 같은

이 음악이 물을 닮은 '없는 듯 있음'의 미학이며 예배에 봉사하는 기능적 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의 매력일수도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서로마제국이 쇠퇴하고

멸망한 4-5세기부터 서유럽이 온통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였던 8-9세기까지

체계적으로 전해지는 유일한 음악 유산이다.

 

우리가 흔히 'G 선상의 아리아'로 알고 있는 바흐(J. S. Bach)의 . BMV 1068(air)는

19세기 바이올니스트 빌헬미(August Daniel Ferdinand Victor Wilhelmj)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용도로 편곡하여 연주한 것에서 비롯되었고 원곡의

라장조를 다장조로 조를 바꾸면서 바이올린의 네 현 중 가장 낮은 음역대를 낼수 있는

G선 하나로만 연주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곡은 대학 신입생 시절 교양과목이던

'고전 음악의 시작'이라는 과목에서 바흐 음악의 거장인 독일의 지휘자 카를 리히터가

지휘하는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의 음반으로 처음 들었는데 바이올린의 우아하고

서정적이며 짜릿한 선율에 흠뻑 빠져 한동안 무교동에 있던 '음악감상실'을 집 삼아

다녔던 기억이 난다. 바흐는 '서양 음악은 바흐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할 만큼 많은

거작을 남긴 작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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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손가락을 빠르고 강하게 만들려다 손가락을 다쳐 작곡에만 전념 하게된

슈만(R. A. Schumann), 무대에서 신들린 듯 바이올린을 연주하여 '악마에게 스스로

영혼을 판 연주자'라는 소리를 듣던 파가니니(N. Paganini), 영원한 건반위의 라이벌

쇼팽(F. Chopin)과 리스트(F. Lisct), 어린시절 문제아였고 공부도 못했고 음악원

시험에는 번번히 떨어졌지만 그래도 피아노에 있어서 만큼은 재능을 보인

라흐마니노프(S. Rakhmaninov)에 설마했는데 마지막에 등장한 내가 좋아하는

'랩소디 인 블루'의 거쉬인(G. Gershwin)까지 다양한 음악가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성인들이 보아도 충분하다. 음악의 시작부터 시대순으로 나열되어 있어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음악사조나 흐름,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들에 대해 알 수

있고 친절한 설명을 통해 각 시대의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록된 내용 만

숙지해도 어디가서 잘난척(?)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잘 정리 된 좋은

음악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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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의 힘 -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웨스트포인트 리더십 훈련의 비밀
로버트 캐슬런 2세.마이클 매슈스 지음, 오수원 옮김 / 리더스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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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품격을 갖춘 인간은 역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볼 때 가장 잘 보인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구름이야말로 그의 탁월한 가치를 드러내는 그늘이다'는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말처럼 사람의 품격은 가장 어려운 그 때에 가장 잘 드러난다. 저자는 사망일과 출생일 사이에 들어간

'-'의 의미를 이력상의 덕목(resume virtues)과 추도사적 덕목(eulogy virtues) 즉, 인간이 인생을

살다 간 두 가지 방식 전체를 표상한다고 말한다. 그런것 같다. 인생을 살며 겪고 지나가는 모든

상황들이 그 안에 들어 있다. 그것이 어떠한 모습이던지.

'인성'이란 '인간이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그 세계에 유익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 그럼으로써

그 세계가 자신에게 유익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인성은 행동을 수반하고, 이 행동은

세계에 유익하며, 그 유익함은 결과적으로 그 이익을 제공하는 사럼에게도 유익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성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일관성 있게 나타나야 하며 인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 지는 성질을 지녔다. 그래서 인성은 자동적인 성품이 될 때까지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용기란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두려움의 극복임을 배웠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자가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자다'는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의 말처럼 우리는 늘

두려움이라는 장벽 앞에 우리를 세운다. 때로는 그 장벽을 붙잡고 울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주저 앉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 앞에 선다. 두려움의 극복은 용기다. 손해를 입더라도 올바른

편에 선다는 도덕적 용기와 자신이나 누군가를 방어하기 위한 물리적 용기등은 '쉬운 악행'보다

'어려운 선행'을 선택하게 한다. 특정한 행동을 용기 있다고 간주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결정에서 나오는 자유로운 선택과 사회가 가치있다고 여기는 목표를 가져야 하며 신체적이고

물리적이며 도덕적인 위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어야 한다. 용기는 만용이 아니다.

마음의 힘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하다. 마음의 힘은 신뢰 받는 리더, 친구, 부모, 팀원이 되도록

해준다. 애정과 친절과 용서와 감사라는 마음의 힘은 문화, 환경, 시간을 초월하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대표하는 가치이다. 유능한 리더는 마음의 힘을 잘 알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의 힘을

드러낸다. 마음의 힘은 역경이 닥치는 시기에 더욱 적절하고 영향력이 크다. 1413-1422년에

잉글랜드를 통치한 핸리 5세가 아쟁쿠르 전투에서 한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athers),

다시 말해 '나의 형제' 연설이라 불리는 아쟁쿠르 연설은 전쟁이라는 극박한 상황 앞에 리더의 품격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우리 소수, 우리 행복한 소수, 우리는 형제다. 오늘 나와 함께 피 흘리는 자는

나의 형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연설은 영국군을 강하게 붙들었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 전투에

임했고 결국 승리하였다. 물론 우리에게도 '생즉필사 사즉필생'이라는 장엄한 연설을 한 이순신 장군도

있다.

인성은 신뢰의 근간이며 신뢰는 리더십의 기반이다. 뛰어난 이들은 이러한 진실을 알았기에 특유의

배짱과 지성과 마음의 힘을 단련하여 자기 삶을 견고하게 구축했다. 이러한 강점들은 인생의 위기나

난관 앞에 그 힘을 발휘하며 결국은 극복하게 한다. 긍정적인 인성은 개인과 조직이 이기는데 필요한

힘, 무엇보다 옳바르게 이기는데 필요한 힘을 제공한다. 저자는 자신의 군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바른

인성이 가지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가길 주문한다. 묘비 명의 '-'은 결국 내가

살아 온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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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 인간의 잔혹함으로 지옥을 만든 소설
빅토르 위고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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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어떤 의도에서 글을 썼는지는 그 글의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고 그 흐름은 하나의 편견으로

자리하게 되기도 한다. 글에는 작가의 정신이 들어 있기에 글을 통해 작가를 만나기도 한다.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는 이 책을 쓰면서 '인간의 불행을 없애고 빈곤을 추방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라고 분명히 자신의 저작의도를 밝힌다. 당시 혼란과 팝절의 프랑스

평민들에겐 자유와 평등을 향한 갈망을, 호의호식에 넘쳐나는 것들을 주체 못하는 기득권 층의

아집과 오만에 경종을 울리는 이 책 오랜만에 다시 만난다.

고전 문학들이 길고 어렵기에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배려(?)로 압축하여 출간된 책들이 많이 있고

우리는 대부분 그 책을 읽었다. 그렇다 보니 안물들의 세세한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긴장감과 긴박감,

절실함, 애절함 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원작을 각색한 뮤지컬과 영화들은 더욱

우리를 원작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실제로 2012년 개봉한 영화에서는 당시 팡틴역을 연기한

앤 해서웨이의 매력과 노래가 엉망진창인(물론 그는 전문 뮤지컬 배우는 아니다)자베르 역의 러샐

크로우만 생각나지 정작 이야기의 흐름과 줄거리는 우주 저멀리 가 있었고, 뉴욕에서 보았던 뮤지컬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코제트 역을 맡았던 여 배우의 연기와 노래에 흠뻑 빠져 언제 나오나 하고

지켜보면서 합창 부분에서도 그 배우만 쳐다 봤던 기억이 난다.

낙인. 한번 짝힌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때의 프랑스가 그랬고 지금의 우리도 그렇다. 빵을

훔치다 붙잡힌 장발장, 그에게는 평생 전과자라는 낙인이 따라 붙는다. 결국 이름을 바꿔 한 도시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시장으로 살아가지만 그는 늘 불안하다. 그때 만나는 인물이 팡틴(우리 대부분이

앤 해서웨이로 기억하는)이고 팡틴은 자신의 딸 코제트를 장발장에게 맡기고 숨을 거둔다. 자베르의

눈을 피해 9년을 숨어 지내던 장발장은 우연한 기회에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편지를 읽게 되고

혁명가인 마리우스를 지키기 위해 '6월 항쟁'에 뛰어 들게 된다. 항쟁은 실패로 끝났고 목숨이 위험한

마리우스를 장발장이 구해주며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결혼을 한다. 이 즈음에 자베르는 자신에게

관용과 자비를 베푼 정발장을 보며 괴로워하다 결국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6월 항쟁은

계속 된다.

5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유독 가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항쟁군에게 붙잡힌

자베르와 장발장의 함께 있는 장면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자베르에게 단도를 꺼내들고 다가가는

장발장 그리고 그의 목으로 칼을 옮긴다. 이때 자베르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목으로 가져간 칼로 묶였던 동아줄을 끊고 손목의 밧줄을 자르고 허리를 굽혀 발을 묶었던 동아줄을

잘라내는 장발장. 어쩌면 장발장은 끊어내는 밧줄 하나하나에 자신이 가졌던 분노와 고통을 함께

잘라버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제 자유일세'라고 하는 순간 예술의 전당에서 뮤지컬을 보던 나는

혼자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난다. 좀처럼 놀라지 않는 자베르도 이 순간 만은 동요되었고 '어서 가게'라고

자신을 밀어 내는 장발장에게 처음으로 반말이 아닌 '당신은 나를 괴롭히고 있소.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라고 말을 한다. 감정의 변화다. 순간이지만 경의와 놀람이 담겨 있다. 사람은 그런것 같다.

어떠한 계기와 상황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변화를 경험한다. 자베르가 그랬다. 그렇게 변화한

자베르에게 다시 '어서 가게'라고 말하는 장발장. 이 대목에서 예수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장발장은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손을 잡은채 죽는다. Les Miserables. 불쌍한 사람들

혹은 쫒겨난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제목은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보여준다. 35년간의

이야기 구상과 17년간의 작업을 통해 탄생한 이 책은 출간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한 빅토르

위고가 출판사에 '?'가 쓰인 편지를 보내고 출판사에서 답장으로 '!'가 쓰인 답장을 보내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로 기록되었다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위인 묘지인

'팡데옹(프랑스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의와 관용의 정신을 잘 구현한 사람들이 주로

묻혀있다)'에 묻힌 몇 안되는 문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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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 인간의 욕망이 갖는 부의 양면성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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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영화를 본적이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한 이 영화는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때아닌 전쟁 특수를 누린다. 전쟁의 포화를 비껴 있었기에 미국의

주말은 술과 재즈로 넘쳐났다. 당연히 여기에 남여간의 농밀한 사랑은 필연이다. 전쟁 후 상실감과

정서적 공허감에 더해진 넘쳐나는 돈으로 인해 혼란과 퇴폐 그 자체의 시기를 이 영화에서 엿볼 수

있었다.

영상으로 먼저 접한 후 읽게 되는 책이라 조금은 방심했다. 아뿔싸. 좀 난해하다. 참 책장이 안 넘어가는

책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이야기 임에도 그냥 막막하다. 읽으며 저자(스콧 피츠제랄드)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걸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경제적 부의 축적이 성공이 상징은 아닐텐데 인간의욕망은

끝없이 부를 쫒고 그것에 몰두한다. 물론 어릴적 가난했던 기억은 경제적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 집착이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들 고장난 폭주 기관차 마냥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런면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걸고 앞만 보고 달린 개츠비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할 만 하다.

이 책에는 '위대한 사랑'이라 표현해주길 바라는 개츠비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연인 데이지와 재회하기

위해 밀주를 만들어 팔면서 돈을 모았고, 그녀를 위해 주말마다 분에 넘치는 파티를 열었고, 오직 그녀를

위해 거대한 저택을 마련했고, 결국 그녀를 위해 살인 누명까지 쓰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개츠비.

그의 사랑은 적어도 순수했던것 같다. 다른 무엇보다 그녀의 행복이 최우선이었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 주는 그런 남자였다. 이렇게 데이지를 사랑하면서도 억지로 사랑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개츠비는 나름 멋있는 남자다. 작가는 자신의 글에서 자신을 표현한다고 한다. 피츠제럴드가

개츠비라는 인물을 묘사하면서 '나를 닮은 한 인물이서 출발하여 내 자신이 되어 버렸다'고 말한 것 처럼

사랑하던 부유한 집안의 딸 젤다와의 결혼을 위해 글쓰기를 수단으로 사회적 부와 명예를 거머쥔

피츠제랄드와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기 위해 탐욕과 불법으로 돈을 쓸어 담는 개츠비. 피츠제럴드는

젤다가 속한 계층을 보며 압도 당했던 순간을 개츠비가 데이지를 보며 '범접할 수 없는 부의 보호막

안에서 안전하게 세상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시선을 느꼈다'라고 표현한다. 개츠비와 피츠제럴드 둘은

자신들이 사는 그 세상이 '돈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돈이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둘은 분명 닮았다.

물질은 유한하다. 그리고 그 물질은 언제나 내것이 아니다. 피츠제럴드는 방탕하고 무질서한 당시의

시대상과 물질주의 앞에 파문을 던지길 원했다. 그리고 그 돌멩이로 개츠비를 사용한다. 마치 당신들이

꿈꾸는 그것은 '허상이요'라고 말하는 듯이 들뜬 기대감 속에 가려진 공허감과 절망을 표현한다.

그 절망의 끝은 결국 죽음이다. 이 죽음을 통해 미국 사회가 가진 허무한 낙관주의에 경고를 보낸다.

이 책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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