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7가지 죄 -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할
한기채 지음 / 두란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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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전하는 자는 두렵고 떨림으로 강단에 서야 합니다. P36

설교는 설교자 자신이 자기 메세지를 삶으로 구현하고 호흡해야 합니다.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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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근심거리가 되어 버린 교회는 더 이상 존재 이유를 갖지 못한다. 지금의 교회가 그렇다.

사람들에게 교회 혹은 예수의 이야기를 할라치면 손사레를 치며 거절하며 '너나 잘 믿으세요'라고

한다. 예수의 권위와 명예는 이미 길거리에 버려져 아무에게나 짓밟힌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무너진 예수의 권위에 대해 염려하지 않고 여전히 복만 빈다. 철저히 잘못됐음에도 대충

넘어가려하고, 철저히 타락했음에도 은헤로 치부해 버린다. 이런 현실 앞에 저자는 칠죄종(七罪宗 ,

seven deadly sins )을 예로 들며 우리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 땅의 교회는 완전할 수 없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지만 완전한 존재는

아니다. 이 말은 우리는 얼마든지 죄를 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문제는 죄 이후다.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죄를 회개할 의지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회개'라는 엄청난 축복이 주어졌다. 문제는 그 축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말'하시겠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죄를 알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특별히

목회직을 맡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한다.

첫장부터 강렬하다. '영적 남용'. '남용'이란 '일정한 기준이나 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씀' 혹은 '권리나 권한

따위를 본래의 목적이나 범위를 벗어나 함부로 행사함'을 의미한다. 함부로라는 말은 자기 마음대로라는

뜻이다. 힘을 가진 자는 그에 걸맞는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목회자은 영적 능력을 가진 자다. 영적

능력이란 성령의 은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주님께 부여 받은 직분의 영광을 말하기도 한다.(작자주)

이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영적 남용'이며 이는 부모와 자식간에도, 부부사이에도, 인간관계

속에서도 일어난다. 비단 목회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평신도 리더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적

남용은 영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가 그 권위를 이용하여 신자들을 강압하고 조종하고 착취할 때 발생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목적이나 뜻을 합리화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영적 협박으로 신자

길들이기를 시도하며, 온전한 구원과 축복을 빌미로 온갖 규정들을 만들어 신자들을 죄책감과 의무감에

빠지게 하고, 정죄하고, 통제하며, 자신이나 자신의 교회만 특별하다는 영적 엘리트 주의에 빠져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가지게 하며, 무분별한 은사의 남발로 성도의 유익이 아닌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 앞에 '연자 맷돌'을 기억하게 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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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지적은 정확하다. 현재 한국 교회 성도 교제는 '친교'를 지나쳐 버린지 오래다. 주님 중심의 교제가

아닌 사람 중심의 교제가 되어 버렸다.(저자는 이를 '친목'이라 표현한다) 비단 교회 뿐만 아니라 교단이나

지방회(노회)등 목회자들의 영역에도 어마어마한 '친목'들이 도사리고 있다. 온갖 이름을 붙여 모이고

먹고 즐긴다. 물론 그 대부분의 경비는 성도들의 헌금이다. 참된 교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정작 예수는 여전히 문 밖애 서 계시며 여전히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우리끼리 가지는 친목에 취해

정작 주님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예수가 없는 사귐은 그냥 '친목'이다. 주님 안에서의

교제는 반드시 '흩어짐'이 있다. 모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 그 은혜를 가지고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속 시원한 소리를 한마디 한다. '청년들과 교사들을 교회 안에만 머무는 거룩한

백수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사역의 도구가 아니라 사역의 대상인데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일을

시킨다. 심지어 그래야 복받는다는 소릴 하면서. 그렇게 복 받는 일이면 자기 자녀나 자신이 하면

되는데도 말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고여 있는 물이 썩는 것 처럼 움직이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다. 교회는 이제 '구조선'이 되어야 한다. 구조선은 멈춰있지 않는다. 구조가 필요한

곳으로 신속하게 움직여서 생명을 구한다. 신자들이 교회의 현재라면 비신자들은 교회의 미래이며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구조해서 함께 나누는 것이 '교제'이다. 성도의 사귐으로 그치지

않고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사귐이 세상을 향하고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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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라는 영역처럼 그렇게 쉽게 결점을 감추고 겉모습을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는 다른 직업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는 유진 피터슨의 말에 뜨끔해진다.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께 충실했으며, 자기 양심에 비추어

얼마나 떳떳하며, 얼마나 신자들을 사랑하는지는 자신만이 안다. 내면이 부실하면 밖으로 꾸미게 되고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목회와 영성은 분리 될 수 없다. '목회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는

하나의 직업이 아닙니다'는 헨리 나우웬의 경고가 선명하다. 목회는 교역자 자신의 영성 생활 안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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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구별'되어야 함에도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윤리적 행동에 차이가 없기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채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우리의 무릎이 꿇려야 한다. 다른 사람의 무릎을 꿇리려는 오만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무릎이 먼저 꿇려야 한다. 너나 할것 없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스스로를 쳐서

복종케'하는 일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정 의지가 없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다. 이 책은 우리

목회자들이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저자도 아야기 했듯이 한국 교화의 7대 죄는 우리가 모르는 낯선

죄가 아니다. 이제 인지하고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죄와 실수를 깨닫고 회개와 돌이킴으로 나아가야

한다. 먼저 나부터 회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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