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란 없다 - 상상 FLEX, 신앙 PLUS
곽상학 지음 / 두란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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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길이란 그 문제에서 도망갈 길이 아닌, 시험에 실패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낳지 않는 순종의

길이다. P37

내가 죽어야 할 그자리에 나부끼는 승리의 깃발, 그것이 복음이다. P207

이미 우리는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산다. 인간의 인생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는 인생이다. 삶의

매 순간 맞부딪치는 한계 속에 복음은 날마다 갈갈이 찢기고 상처를 입지만 여전히 복음이 살아

있음을 느끼며 오늘을 산다. 이럴때 '기본'이 중요하다. 위기를 버틸 수 있는 힘이고,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기본이다. 이 책은 신앙의 4가지 핵심인 십자가, 찬양, 복음, 믿음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인문학적 통찰에서 나온 삶에 대한 이해와 문학적 상상력은 읽는 내내

긴장과 흥미를 가져 온다.

저자는 글을 참 맛깔나게 쓴다. 우리의 삶의 노정을 이야기하면서 사용한 단어들을 보면 특히나

그렇다. '선택의 기로(岐路)에서 숨 막히는 결단을 내려야 하고, 비좁고 험한 애로(隘路)에서 한계를

경험 할 것이며, 빠져나오기 힘든 미로(迷盧)에서 갈팡질팡할 것이다. 그렇게 동분서주하다가 삶의

활로(活路)를 찾아내고, 마침내 내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通路)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이런 저자가 지상 최고의 역설인 '십자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꽃길과, 가시나와 수많은 시인들과,

K-POP을 소개한다. 꽃길은 결국 가시밭길이다. 인생은 꽃길이 아니라 솔직히 말하면 가시밭길이다.

해가 져 줘야 우리가 쉴수 있는 밤을 맞이 할 수 있고, 지구를 위해 매일 기꺼이 저주는 해처럼

반드시 져야만 승리하는 신비한 역설이 바로 '십자가'이다. 너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고 포기하고

싶은 그 길이지만 그 길을 걷고 십자가를 져야만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길 수 있고 온갖 조롱과

수치와 모욕으로 가득한 그 길을 걸어야만 죽음에서의 놓임을 얻을 수 있기에 묵묵히 가셨고 이제

그분은 우리를 그 길로 초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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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사랑 그 자체이다. 예수를 이야기하면서 사랑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성경에는 도처에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성경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놓은 책이다. 그런데

이 사랑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행위가 아닌 상호간의 행위여야 한다. 로버트

스텐버그(Robert Sternberg)가 1986년에 발표한 '사랑의 삼각형 이론'(triangular theory of love)에

따르면 사랑에는 반드시 수반하여 균형이 잡혀야 할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친밀감(intimacy),

열정(passion), 헌신(commitment)이 그것인데 이 세가지 요소가 균형을 잡고 서 있어야 온전하고

성숙한 사랑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상황을 보면 균형을 잃은지 오래고, 일그러지고

부서진 사랑이 범람하고 있다. 마치 홍수인데 먹을 물이 없는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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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 특이한 책이 한권 있다. 포도원지기인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사랑이야기는 신분과 국경을 초월한 가장 순전하고 순결한 사랑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의 사랑을 풍부한 은유와 다양한 상징으로

표현한다. 진정한 사랑에 목말라 하는 지금, 밀물처럼 밀려오는 사랑 타령들 속에서 썰물처럼 쓸려

나가지 않을 참사랑은 균형에서 온다. 사람은 사랑을 찾아야 산다. 진정한 사랑이신 그 분은 여전히

우리를 그리워 하신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을 읽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이다'(Homo

desiderium Dei)라는 라틴어 문장이 '인간은 하나님의 그리움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적이 있다. 하나님을 그리워 하는 인간, 그리고 그런 인간을 그리워하는 하나님, 가끔 예배 중에

혹은 기도 중에 '서로 그리워 하는 사무침'을 발견하게 되는데 사랑이 이런것 같다.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그립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아8:7) 이 사랑을 알고 경험했기에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말했다. (빌3:14) 일평생 바울이 완주 했던 믿음의 경주는 그냥

뜀박질이 아니라 복 그 자체이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은혜의 달음박질이다. 저자는 이것을 재미있게

'G(od) + race =Grace'라고 설명한다.

험난한 인생길에 주저앉은 우리, 멍하니 앉아 있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신다. 깜깜한 밤에 유일하게 의지 할 수 있는 등불같이, 우리의 인생의 어느 곳이든 밝혀 주는

그 빛만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이 책은 재미있다.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는 책이 아니라 신앙의 정도를 가르쳐 준다. 아직 신앙이

정립되지 않은 분들이나 흔들리는 분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것 같다. 우리 청년들에게도 권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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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고칸 메구미 지음,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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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잠시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이런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아쉬움과 깊은 회한이 남는 것 또한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죽음을 담담히 맞이하는 이들을 본다. 저자가 그렇다. 물론

처음부터는 아니겠지만 이제 죽음을 담담히 바라보며 생각하는 여유를 갖게 되었고 그렇게

살아내며 마주한 죽음들을 이야기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16년간 1000여번의 죽음을 맞이 한다는 것, 직업이라 할지라도 쉽지 않다. 이별은

서로에게 상처로 남는다. 남겨진 사람에게도 떠나는 사람에게도. 죽음이 다가 올 때 과연 우리는

후회없이 혹은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까? 찰라와 같이 지나가는 그 순간을 과연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그 순간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아마도 '그 때'라는 것을 감으로 알게 되는 것 같다. 오랜 경험에 의한 이 '감'은 생각 보다 적중률이

높다. 안색이 나쁘다거나, 식사를 할 수 없게 된다거나, 몸이 붓고 혈액 순환이 잘 안된다거나, 소변이

나오지 않는 등 증후가 있고 이럴 때 간호사들은 '그 때'를 예감한다고 한다. 환자의 상태를 오랫동안

지켜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고 이럴때 간호사들은 '오늘은 자고 가시지요'나 '함께 있어 주세요'라고

말한다. 좋은 일을 기대하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론 언제든지 일어 날 수 있는 일에도 대비 해야 한다.

누군가가 죽는다는 건 몇 번을 겪어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고 보내드릴 때 마다 아픔이 찾아 온다.

때로는 환자가 마지막까지 겪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공유하기도 하므로 '이제야 고통에서

해방됐군요'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물론 속으로)

무슨 일을 하든 중요한 건 '자신의 생각과 의지'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마지막까지 충실히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삶을 온전히 누린 뒤에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 죽음이 곧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된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은 환자가 '평온한 최후'를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조금 더 잘 살기 위해 죽음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글 말미에 있는 소제목이다.

그런것 같다. 지금을 더 잘 살기 위해 죽음을 배우고 알아야 한다.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하다. 특히나 죽음을 앞 둔 이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저자는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신이

경험한 죽음들을 꺼내 놓는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더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우리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주어진 '지금'이라는 시간을 죽을 힘을 다해 살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후회없이 간다면 잘 살았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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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in 쿠바 - 쿠바에서 한류를 찾다
홍지영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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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그 나라의 모든 것들이 오랜 시간 어우러지다가 버려지고, 합쳐지고, 새로운 것이 유입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되며 여기에는 길거리에 굴러 다니는 돌멩이와 이름 없는 들꽃들과 지리, 역사,

언어, 관습, 법, 음식, 종교, 계절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래서 문화는 고유성을 가진다. 유홍준

교수가 자신의 저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말한 것 처럼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 보인다.

개인의 경험치에 따라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도 다르고 그만큼 표현하는 것도 다르다. 이런

다름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문화는 그래서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이다.

2000년대 초반에 접했던 첫번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다큐멘터리는 쿠바의 역사와 음악,

쿠바의 토속 문화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음반과 함께 나온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쿠바 문화의

다양성과 뮤지션들의 삶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첫번째 다큐멘터리가 곡을 연주할 아티스트를

모으고 멤버들을 소개하고 공연을 보여주는데 집중했다면 2017년에 나온 두번째 다큐멘터리(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2 : 아디오스)는 쿠바의 역사와 근현대사적 의미를 접목하면서, 쿠바 흑인들의

이야기를 음악인들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 나갔다. 여기서는 1950년대 쿠바가 인종별 계층별로

나뉘어 있었던 근현대사를 음악과 함께 소개한다. '부에나 비스타'는 하바나의 가난한 흑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 중 한 곳이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과거에 가난한 흑인들이 모여 그들의 삶의

열정을 나누던 나이트 클럽이다. 이때가 산티아고 데 쿠바의 산자락에 잡혀 있던 흑인 노예들이

서아프리카의 전통 음악과 유럽의 음악을 적용해 만들어 낸 '쿠바 노손 뮤직'의 황금기다. 이때 춤을

출 수 있는 모든 라틴 음악의 기초가 탄생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쿠바엔 K-컬쳐가 넘쳐난다. 백범 선생이 말씀하셨던것 처럼 '한국이 가진 높은

문화의 힘'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고 쿠바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무도 그곳에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은 소도시에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K-컬쳐 그룹인 KCT를

들 수 있다. 행정수도인 하바나에서 버스로 8시간이 걸리는 쿠바의 중간 오른쪽 지점에 있는

카마구에마. 관광지여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 들일 기회가 많은 다른곳과는 달리 지방의 작은 도시에

불과한 이곳에 새로운 동양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 나가고 있다. 동네 아이들의 옷차림새, 머리

모양이 바뀌고, 듣도 보도 못한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춤을 추기 시작하고 드라마를 보며 밤을

세우기도 한다. 고립된 정치 탓에 해외 문화를 접해 보지 못한 어른들은 동양의 모든 것을 통틀어

그냥 '중국'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곳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분명 '한국 문화'이다. 또한 특이한

것은 여타의 다른 문화 컬쳐 그룹이 대부분 지원과 후원을 받고 있는 것에 반해 이들은 어떠한

지원도, 어디에서도, 아무것도 받지 못하지만 그저 한국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K-POP 아티스트들은 어려움과 고난을 포기하지 않고 극복할것을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었고 가르쳐주었다. 그로인해 내 마음가짐이 바꼈고, 태도가 달라졌고,

더 크고 아름다운 목표로 가득한 사람으로 바꼈다.' 문화의 힘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자의 마지막 말이 의미있고 다가온다. '세계인들이 한국 문화를 즐기고 있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 100년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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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말하다 - 이규현 목사의 설교론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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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는 철저히 숨겨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고후4:5a p79

설교에 모든것을 걸어야 한다 p113

설교는 목회자의 숙명과 같은 일이지만 강단에 서는 매 순간 떨린다. 어쩌면 철 모르던

교육 전도사 시절이 더 마음 편하게 설교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많이

알아서인지, 아니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 설교를 하기 전엔

떨리고 마치고 나면 아쉽다. 아이러니하게도 설교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면서 정작

자신의 설교에 대한 만족함을 늘 부족하다. 이러던 차에 이규현 목사의 '설교를 말하다'를

접하게 되어 저자의 깊이를 경험한 나에겐 기대감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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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는 철저히 섬겨야 한다'

이 문장 앞에 허리가 꺾이고 머리가 숙여진다. 사실 저자도 말하듯 한국 교회의 목회자 섬김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목사님은 화장실도 안가시고 목욕탕도 안 다니시는 줄

알았다. 이렇듯 받는 섬김에 익숙하다 보니 그것이 특권이고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주님은

분명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냥 섬김 받기에

익숙해졌고 주는 섬김에 인색해졌다. 섬김의 힘은 철저하게 종의 철학에서 나온다. 설교자를

위해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가 성도를 위해 존재해야 하며 섬겨야 한다. 설교도

섬김이다. 한 편의 설교를 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정성껏 다듬고, 최선을

다해 설교를 준비하고, 그 말씀을 통해 성도들을 섬기고 대우해야 한다. 설교는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고 성실함이다. 죽기까지 섬기시고 낮아지신 주님이 그러셨듯이 우리도 그래야

한다. 이 섬김은 설교를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설교자에게 있어 최고의 섬김은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것이다.

설교자에게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넘어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있어야 한다.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재주가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여야 한다.(저자는 이를 은혜의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고 표현한다) 사도 바울의 고백한 것 처럼 우리에게도 '약할 때 강함 되신다'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설교를 잘해서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는 늘 겸손해야 한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머리에서 나온

설교와 위로부터 기름부음이 임한 설교는 다르다. 이 은혜가, 이 기름부음이 설교자를 끌어 갈때

자신이 먼저 변화하고 말씀을 들은 성도들이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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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아주 오랜만에 '광야의 영성'을 만난다. 지금 우리는 기름지고 풍족함에 취해 한적한

곳을 찾으셨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 가셨던 주님을 잊어 버렸다. 영적 분별력도 기대감도 없다.

신앙이 무의미해지고 점점 힘을 잃어 간다. 믿음이라는 커다란 폭탄을 주셨는데 이를 터트리지

못하고 그냥 던져 버린다. 어려움과 환란 앞에 당당하게 맞설 의지조차 없다. 이런 나약한 우리에게

'광야의 영성'이 필요하다. 죽음을 각오하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고, 사력을 다해 마주하는 신앙의

열심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그 시대의 소리가 아닌 전혀 다른 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의 음성이 들리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이 바로 광야이고 그곳에서 우리는

주님을 만난다.

묵상은 시간 싸움이다. 생각의 힘은 결국 묵상에서 나온다. 때문에 묵상은 어떤 짜여진 틀 안에서가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서 경험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어떤 생각과 말씀을 가지고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 내구력이 있어야 하며 어려움이 몰려와도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말씀이 내재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묵상이다. 일시적이고 의식적으로 하는 묵상이 아니라

삶 속을 통과하는 일상이어야 한다. 무언가 다른 것이 정신을 빼앗겨 정작 묵상은 잠깐 제껴 놓은

목회자들이 너무 많다. 묵상이 없는데 설교가 나오는 것이 신기 할 정도이다. '묵상'(meditation)은

반드시 '연구'(study)와 함께 가야 한다. 묵상만 하면 본문에 깊이 들어 가기 어렵다. 본문을

피상적으로 대하고 넘어가기에 깊이를 가지려면 반드시 연구가 필요하다. 성경을 깊이 들여다 보고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짚어 내야 한다. 깊이 내려진 뿌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뿌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기 쉬운데 결국 뿌리가 튼튼해야 제대로 설수 있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끝으로 저자의 이야기를 적어 본다. '설교자는 설교를 잘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 자신이 훌륭한 설교자로

드러나기를 바라지만, 청중은 설교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설교자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설교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을 뿐입니다.'

설교의 방향이 명확해졌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책은 신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많이 방황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신학을 시작한 제자에게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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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오늘을 살다 -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나를 지켜내는 심리학
가토 다이조 지음, 이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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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감 있게 살고 싶다고 원하지만 자신감은 늘 저 멀리에 있어 손을 내밀어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짐'을 가지고 산다. '짐'이라는 말이 부정적이고

부담으로 받아들일수 있으나 인생에서 주어지는 짐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짐을 기꺼이 짊어지는 태도가 그 사람에게 자신감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말한다. 사람이 자기 숙명, 즉 인생의 짐을 기꺼이 지려 할 때 비로소 '자아'가 드러나며

그 자아는 숙명을 짊어진 주체이다.

'고민은 어제 생긴 것이 아니다'는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베란 울프(W. Be ran Wolfe)의

말처럼 하루 하루의 행동이 쌓여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미 그때 해결할 방법이나 다른

길이 있었음에도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다 결국 막다른 곳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비극적인 결말이 아닌 현재의 지옥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거절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그러나

그 거절을 못해서 '이젠 죽음 밖에 방법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

보다는 지금 조금 힘듦을 택하는 편이 현명하다. 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 점점 더 커질 뿐이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아수라장을 겪은 후 고통의 순간을 돌이켜보며 하는 말이지 고민과

문제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아수라장을 피하지 않고 겪어내면 이후의 고통은 시간이

해결해 주지만 피하면 그순간 시간은 적이 된다. 지금 우리가 겪는 대부분은 누군가가,

무언가가, 운명이, 시간이,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미뤄온 결과다. 문제는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결국 내 몫이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감정이지 문제 자체가 아니다.

문제를 맞닥뜨린 상황은 두렵고 싫지만, 사실 문제를 만나야 진정한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문제가 벌어진 원인을 발견하고 돌아 보아야 한다. 여기에 두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는

문제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 원인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 첫번째부터

어려워한다. 피하고 싶고 마주하기 두려워 한다. 그러나 맞닥뜨리지 않으면 그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일단 마주하면 원인을 찾는 것은 쉽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원인을

찾았다면 그것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습관과 태생적 나약함은 여전히

옛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기웃기웃하며 시간을 버린다. 저자는 이에 대해 '문제에서 진정한

것이 보인다'고 말하며 이솝우화의 '나그네와 곰'이야기를 예로 들며 문제가 발생해야 비로소

상대의 본 모습이 보이며 지금 주어진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치길 권한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각자의 본성이 보인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산을 오르는 일은 삶의 낙이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고역이다.

인생의 짐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짐으로 여기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남의 평가나 시선에 주눅들지 말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때 훗날 '난

여기까지 견디며 살아왔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굉장하다'고

말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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